“여섯시까지 모여라!”

2015년 2월 25일 오후, 세계일보 사회부장이 법조팀 기자들을 소집했다. 서초동 곳곳 기자실에 흩어져있던 기자들이 광화문 모처로 모여들었다. 이튿날은 헌법재판소가 역사적인 결정을 내리는 날이었다. 바로 간통죄에 대한 위헌 여부 선고다. 4차례 위헌 심판에서 합헌 결정…, 5번째 판단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법조계 분위기가 감지됐다.

“1면 기사에 추가로 2개면을 쓴다고 생각하자(사회부장).”

이렇게 채우려면 예닐곱 꼭지의 기사는 써야 한다. 기자 네댓명이 나눠쓴다고 생각하면 많은 양은 아니다. 하지만 헌재 선고는 오후 2시. 그 이전엔 헌재 결과를 예상하는 어떠한 보도도 금지된다. 여론에 예단을 줘선 안 된다는 기자단의 약속 때문이다. 헌법재판관들의 주문을 읽는 시간만도 보통 20여분은 걸릴 것이다. 조간신문의 초판 마감이 오후 4∼5시쯤인 것을 고려하면 시간 여유가 없다. 이 때문에 기사안을 짜놓고 일부 미리 작성해두지 않으면 자칫 마감시간이 임박해서도 기사를 넘기지 못하는 아찔한 장면이 나올 수 있다. 다음날 일어날 상황이라고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간통죄 위헌 결정이 나올 것을 전제로 지면을 구성하기 위한 기획회의가 열렸다.

‘바람을 피워도 처벌받지 않는다….’ 어마한 혼란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관광·숙박업계에서 환영하겠네요(기자 1).”
“피임기구 제조사 주가가 오르지 않을까(기자 2).”
이처럼 가벼운 얘기로부터 난상토론이 시작됐다.

“간통죄 폐지의 사회적 의미가 뭘까.”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를 인정한 헌재의 태도 변화를 반영한 결과라는 의견, 간통 행위자에게 도덕적 책임을 물을지언정 형벌로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는 취지일 거란 의견. 뻔하면서도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간통죄 폐지 이후 달라질 세태에 대해서도 서로 생각을 주고받았다.

저녁식사 자리에서부터 편집국에 모여서까지 1시간여 회의 끝에 우리들의 결론이 나왔다. 기자들은 간통죄 위헌 결정이 필요한 시기에 이르렀다는 데 다들 공감했다. 하지만 간통죄 폐지로 가정을 버리고 바람 피는 게 옳다고 여겨져선 안 된다는 데도 뜻을 모았다. 결국 우리 팀은 간통이 죄가 아니라고 해도 여전히 ‘가정의 가치’를 해치는 행위임은 분명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무게를 둬 기사를 쓰기로 했다. 이후 밤늦게까지 취재가 이어졌다. 이튿날 헌재 결정이 나오자 준비된 기사들은 무난히 2월 27일자 아침신문에 실려 안방에 배달됐다.

요즘은 일부 종합편성채널에서 정치부나 사회부 방송 기자들의 회의 모습을 시사프로그램으로 제작해 방송하기도 해 앞서 언급한 언론사 회의 장면이 낯설기만 한 장면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신문 지면이 매일같이 이렇게 꾸려지지는 않는다. 특히 일간지 법조 기자들은 그날그날 일어나는 일들에 쫓기고 마감에 치이다 하루를 마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간통죄 위헌 보도 과정에서 법조 기자들이 회의를 열었음을 강조한 것은 ‘고민’이 담긴 보도였음을 알리고자 함이다. 간통죄 위헌으로 예상되는 파장을 기자가 더 키워서도 안 되고, 숨겨서도 안 된다. 다만 ‘가정의 가치’를 무시해선 안 될 향후 우리 사회 방향을 두고 독자들과 대화해야겠기에 열띤 토론을 거쳐야만 했다.

대개 큰 이슈를 보도하는 신문기사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팩트(fact) 위주의 스트레이트 기사와 그 의미를 설명하는 해설 박스 기사는 기본적으로 누구나 보도한다. 여기에 추가로 의미를 부여한 기획성 기사들은 어떤 기자(들)의 고민이 남긴 흔적들이다.

다수의 법조인이 간통죄 폐지 이후에도 간통행위자의 민사상 책임 가중 등 보완책이 마련되면 장차 우리 사회가 ‘간통 공화국’이 되진 않을 것 같다고 하니 ‘산고(産苦)’ 끝에 나온 간통죄 위헌 관련 보도가 조금은 보람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고민’이 빛을 보진 못한다는 것이다. 2월 25일 세종시 한 편의점에서 난 총기 살인 사건 이후 각 언론은 당국의 부실한 총기관리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틀 뒤 경기도 화성에서 유사한 총기사고가, 3월 들어서도 또다시 민간에서 총기사고가 났다. 총기관리 부실에 대한 보도는 제도 개선이라는 ‘고민’ 끝에 나온 보도였겠지만, 달리 보면 나쁜 마음을 먹은 이들에겐 범죄에 총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정보성 보도로 읽혔을지 모를 일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등 여러 경험에서 기자들은 속보 경쟁 속에 ‘고민’이 부재하다는 질타를 받았다. 누구나 뼈저린 반성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은 멀다. 끊이지 않는 ‘고민’이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