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로 임관되어 초임검사 시절에 6개월간 공판업무를 담당한 일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주요 사건에 직접 관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정에 출석할 기회가 없었다. 국민참여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여 방청한 일이 있기는 하고, 송무를 담당할 때 행정법원에 출석한 일은 있었으나 검사로 근무하면서도 형사법정에 출석한 일이 최근에는 없었다. 오히려 사법연수원 시절에 다양한 재판을 방청하였던 기억이 있다. 제3자의 재판을 방청할 때 사실관계를 상세하게 알지 못하면 그렇게 흥미를 갖기는 어렵다. 영화에서 상영되는 것처럼 멋진 공방을 볼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인사이동이 있고, 20년 만에 다시 공판업무를 맡게 되었다. 항소심 공판이라 검사 항소, 피고인 항소, 그리고 쌍방 항소 사건이 있게 마련이다. 우선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되는 것은 국선대리인의 철저한 준비였다. 국선대리인은 대부분의 사건에 대하여 PPT를 만들어와서 화면에 현출시킨 후 일목요연하게 사실관계, 법률관계 및 양형의 문제에 대하여 쟁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피고인을 위한 국선대리인의 역할이 상당히 변화하였음을 느끼게 되었다.

검사가 앉아 있는 좌석에는 컴퓨터 모니터가 있었는데, 법정에서 발언되는 내용이 실시간으로 녹취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재판장의 부드러우면서도 친절한 태도 및 목소리도 참으로 재판 진행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고인에게 잘 듣고 할 말을 하라는 친절한 안내는 불안에 떨고 있는 피고인에게 상당한 심리적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느껴졌다. 기록을 완전히 파악한 재판부에서 한 마디씩 하는 질문은 재판의 쟁점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오래 전에 필자가 기소한 후 공판을 담당하게 되면서 법정에서 피고인의 태도 변화를 본 일이 있었다. 검사실에서는 오만방자한 태도로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지위가 높은 사람과의 관계를 내세우면서 검사에게 위세를 과시하던 피고인이 있었다. 그런데 법정에서는 순한 양처럼 그렇게 공손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결국 징역형을 구형한 검사의 의도와는 달리 벌금형이 선고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피고인은 의도하였던 결과를 달성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처음부터 반성하고 피해를 회복하는 일을 하였다면 재판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부인하다가 자백을 하면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하여 양형사유로 참작이 된다면, 처음부터 자백을 하고 반성하는 피고인은 오히려 훨씬 경한 형으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한 후에 작량감경을 받기 위하여 사소한 내용에 집착하여 여러 가지 주장을 하는 변호인이 있었다. 이러한 경우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선거법위반 사건에 대하여는 변호인이 마치 정치인과 같이 연설조의 변론을 하는 분도 계셨다. 담당하고 있는 사건이 많지 않았다면 더 적극적으로 다툴 수도 있었겠지만, 선택과 집중을 하여야 하므로 모든 사건에 동일한 시간을 투여할 수는 없었다.

가끔 공소를 유지하는 책임을 가진 소추관인 검사가 업무의 과중으로 인하여 오히려 법정에서 수세적 입장에 서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때로는 수사검사가 직접 관여하기도 하지만, 국외훈련을 떠났거나 인사이동으로 타청으로 가버린 경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 헌법에는 다른 나라 헌법과는 달리 형사절차에 관한 내용을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인권보장이 철저하지 못하였던 역사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 의하여 헌법제정권자의 결단으로 사실상 형사소송법에 규정하면 충분한 내용인 인권보장적 내용을 헌법에 규정한 것이라고 설명하신 은사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공정한 재판이란 피고인에게 억울함이 없도록 하라는 주권자의 준엄한 명령이다. 피고인의 행위에 대한 적절한 사법적 판단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한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형벌권 행사란 필연적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침해를 수반하게 된다. 법치주의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바다 위에 건설된 다리와 같은 것이라면, 공정한 재판이란 그 다리를 튼튼히 받쳐주는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관직 및 보직이란 국민의 위임에 의하여 빌려입은 옷과 같은 것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주권자인 국민에게 반납하여야 한다. 잠시 대신 관리하여 운영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형사재판 공판과정에서 원하는 것은 적절한 형사절차의 운영으로 죄질에 상응한 형벌이 선고되고, 억울함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판에 임하는 모든 법조인들의 혜안, 성찰 및 배려를 통하여 역사와 사회에 큰 울림이 있는 적정한 판결이 선고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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