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적 성향의 사람은 대체로 미국을 싫어하고 우파적 성향의 사람은 대체적으로 미국에 호의적인 것 같다. 그러나, 좌파 정권이든, 우파 정권이든 미국 시스템 따라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 중에 미국 유학파가 많아서 그럴 것이다. 법률 분야에서는 로스쿨제와 배심제 도입이 미국 따라하기의 예 중 하나다.

로스쿨 방식이 왜 사법시험 방식보다 더 좋은 법률가를 배출할 수 있다는 것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대학에서 다양한 전공을 한 사람들이 법률가가 되었다고 하여 다양한 분야의 사건들에서 보다 정확한 심판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유전공학을 전공한 변호사가 유전공학 사건을 수임할 기회나 미생물학을 전공한 판사가 미생물 관련 재판을 하게 될 가능성이 1년에 몇건이나 있겠는가.

법률가는 고매한 인격이 수반되어야 하는 직업이므로 대학 4년을 정상적으로 마친 사람만이 법률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는 논리라면 그동안 대학4년 과정이 어떤 양아치라도 신사로 만들어 내 왔음이 입증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법률지식을 갖추게 한다는 점에서도 로스쿨제는 효과적이지 않다. 로스쿨의 커리큘럼을 보면 걱정될 때가 많다. 내가 예전에 법대에서 배웠던 법률과목과 사법연수원에서 배웠던 실무 과목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다.

아직 법률의 기본지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학생들에게 공소장을 쓰고 판결문을 작성케 하고 있다. 3년 안에 법률과 실무 양쪽을 다 공부해내야 하니 로스쿨생은 기진맥진 상태다. 허겁지겁하면서 따라다니기에 급급한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있겠는가. 많이 먹었다고 해도 결국은 소화해내는 것만이 몸에 영양분으로 가듯이 공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법학은 사람 몸을 가지고 실습을 해야 하는 의학과 달리 혼자 책만 가지고 공부할 수 있다. 법률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학을 졸업한 후 로스쿨을 다녀야 한다는 것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에서 소설 전공 학위를 취득해야만 소설가가 될 수 있다고 우기는 것과 비슷하다.

경험적으로 봐도 로스쿨제의 우수성은 입증되지 않는다. 사법시험 시절에 배출된 법률가들은 로스쿨 제도 하에서 배출된 법률가들과 비교할 때 법률지식이나 인격적인 면에서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사법시험 세대에 속해서 편파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법시험을 합격하여 법률가가 된 사람이 법률지식의 면에서나 인격적인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설사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만일 로스쿨을 졸업하였다면 그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나는 사법시험 합격자의 수를 예전처럼 적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 1인당 필요한 법률가 수가 몇명이 적정한지를 따져서 법률가 수를 조절하겠다는 발상은 국민 1인당 필요한 개그맨 수가 몇명인가를 따지는 것만큼 의미없는 일이다. 그것은 역사적 유물이 된 계획경제 시스템에서만 필요한 일이다.

사법시험은 자격시험이 되어야 하고 일정한 수준 이상만 되면 수와 상관없이 모두 합격시켜야 하고 그 수준에 미달하면 불합격시켜야 한다.

자동차 정비사 자격과 항공기 정비사 자격은 그 공부할 양에 있어서 분명히 차이가 있다. 법률가로서의 자격증을 받기 위한 최소한의 법률지식의 양도 측정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적정량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이 사법시험이 되어야 한다.

사법시험이라는 것이 그런 기능을 못 해왔으므로, 즉, 법조문만 달달 외는 암기력 좋은 사람을 뽑는 시험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로스쿨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사법시험을 한번도 공부하지 않은 문외한이거나 법학을 전공했으되 그런 무지한 방법으로 공부하여 끝내 사법시험에 불합격한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하곤 한다.

사법시험은 수도권 내의 9개 노선 전철역을 순서대로 빠짐없이 빠른 시간 내에 외우는 암기의 달인을 뽑는 시험이 아니다.

아무리 암기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 많은 법률과목 서적의 내용을 완전히 외울 수는 없다. 원숭이도 설거지 흉내는 내지만 설거지의 의미를 모르므로 제대로 된 설거지를 할 수는 없다. 완벽한 이해는 있을지 몰라도 완벽한 암기는 불가능한 법이다.

나의 주장은 지금까지 시행되어 왔던 사법시험 시스템도 수험생들이 법률지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테스트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사법시험 제도는 법률지식은 있되 인격이 부족한 사람은 거를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면 그것은 로스쿨 시스템에서도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답하고 싶다.

또 하나의 미국 따라하기인 배심제에 관한 나의 생각에 대해서는 지면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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