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공부를 하던 시절에는 자전거를 타고 독서실을 다녔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목에는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버스정류장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버스정류장에는 막 출발하려는 버스가 있었다. 그날따라 넥타이에 양복을 입은 젊은 직장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언제 넥타이에 양복을 입어볼까’하는 부러움에 한참을 쳐다보았다. 순간 서로의 눈길이 마주쳤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초라한 내 마음이 들킨 것 같았다. 떠나는 버스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던 당시의 모습이 지금껏 잊혀지지 않는다.

운이 좋게도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시험에 합격하고 난 후, 직장 다니던 친구들은 날 부러워했다. 내 스스로의 초라함도 한순간에 사라진 것 같았다. 초라함과 부러움의 감정이 이렇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개인변호사로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경험이 부족하니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법정에 들어가면 위축감을 느꼈다. 위축감은 초라함의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경험이 많은 선배변호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3~4년이 흐른 어느 날, 화상을 입은 의뢰인의 손해배상사건을 맡게 되었다. 얼굴의 반쪽은 정상인데, 나머지 반쪽은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허물어져 있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 의뢰인이 말했다. “화상병동에 있을 때예요. 정신을 차려 눈을 떴어요. 주위를 둘러보았지요. 그 병동에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저 혼자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일었어요. 남들에게는 흉칙스러운 모습이겠지만, 저는 제 모습을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면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 일인지를 느끼지는 못했을 거예요.”

사람은 늘 비교하며 산다. 비교를 통하여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본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본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초라함을 느껴왔던 것 같다. 그 의뢰인은 그 상황에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해했다.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때 받았던 충격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지만, 만약 비교를 하게 되더라도 나만의 장점을 먼저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야 내 스스로 행복할 수 있고, 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니까.

시간이 흘렀다. 변호사로서 경험도 많이 늘었다. 경험이 쌓일수록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겉만 보면 ‘저 분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의뢰인이 있다. 막상 사연을 듣게 되면 ‘그런 일이 있었구나!’하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는데도 매번 겉만 보고 판단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만다. 모든 사람은 2가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돈문제와 사람문제가 아닌가 싶다. 소송도 결국에는 돈에 관한 것과 사람에 관한 것으로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모든 집안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있거나 속을 썩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변호사로서 이런 저런 간접경험을 해보면서 ‘나에게만 왜 이런 일이 오는 걸까!’라고 생각할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대학시절부터 도움을 주었던 사돈이 있다. 최근 좋지 않은 일로 경찰조사를 받게 되었다. 제법 큰 액수였다. 유독 나를 이뻐해 주었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사돈에게는 외동딸이 있다. 그 외동딸이 갑자기 가장역할을 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날 삼촌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친조카나 다름이 없다.

조카가 말했다. “삼촌, 이 나이에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대요.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요.”

무어라고 말해줄 만한 것이 없었다. 어릴 적 생각이 났다. 당시 어머님이 낙찰계를 운영하였다는 사실은 후에 알게 되었다. 낙찰계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에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다. 그런 저런 일로 고생했던 어린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말했다. “순서만 달라지는 게 아닐까. 힘든 일이 먼저 생기느냐, 나중에 생기느냐만 다를 뿐, 모두가 다 한번씩은 거쳐야 하는 걸거야.”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 인생은 문제해결과정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던 것 같다. 유달리 우울한 요즘, 초라함을 느끼게 해 준 그 젊은 직장인은 지금 잘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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