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1도15258

Ⅰ. 사실관계
원심은 피고인이 2011. 3. 5. 23:45경 오토바이를 운전하여 가다가 선행 차량의 뒷부분을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야기한 후 의식을 잃은 채 119 구급차량에 의하여 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었고, 사고 시각으로부터 약 1시간 후인 2011. 3. 6. 00:50경 사고신고를 받고 병원 응급실로 출동한 경찰관은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또는 검증 영장을 발부받지 아니한 채 피고인의 아들로부터 동의를 받아 간호사로 하여금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누워 있는 피고인으로부터 채혈을 하도록 한 사실 등을 인정한 다음 이 사건 채혈은 법관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졌고 사후에 영장을 발부받지도 아니하였으므로 피고인의 혈중알코올농도에 대한 감정의뢰회보 및 이에 기초한 주취운전자 적발보고서, 주취운전자 정황보고서 등의 증거는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으므로, 피고인의 자백 외에 달리 이를 보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자 검사가 이건 상고에 이르렀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수사기관이 범죄 증거를 수집할 목적으로 피의자의 동의 없이 피의자의 혈액을 취득·보관하는 행위는 법원으로부터 감정처분허가장을 받아 형사소송법 제221조의4 제1항, 제173조 제1항에 의한 ‘감정에 필요한 처분’으로도 할 수 있지만, 형사소송법 제219조, 제106조 제1항에 정한 압수의 방법으로도 할 수 있고, 압수의 방법에 의하는 경우 혈액의 취득을 위하여 피의자의 신체로부터 혈액을 채취하는 행위는 혈액의 압수를 위한 것으로서 형사소송법 제219조, 제120조 제1항에 정한 ‘압수영장의 집행에 있어 필요한 처분’에 해당한다.

피의자의 신체 내지 의복류에 주취로 인한 냄새가 강하게 나는 등 형사소송법 제211조 제2항 제3호가 정하는 범죄의 증적이 현저한 준현행범인의 요건이 갖추어져 있고 교통사고 발생 시각으로부터 사회통념상 범행 직후라고 볼 수 있는 시간 내라면, 피의자의 생명·신체를 구조하기 위하여 사고현장으로부터 곧바로 후송된 병원 응급실 등의 장소는 형사소송법 제216조 제3항의 범죄 장소에 준한다 할 것이므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의 혈중알코올농도 등 증거의 수집을 위하여 의료법상 의료인의 자격이 있는 자로 하여금 의료용 기구로 의학적인 방법에 따라 필요최소한의 한도 내에서 피의자의 혈액을 채취하게 한 후 그 혈액을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다. 다만 사후에 지체 없이 강제채혈에 의한 압수의 사유 등을 기재한 영장청구서에 의하여 법원으로부터 압수영장을 받아야 한다.

Ⅲ. 대상 판결의 평석
1. 대상 판결의 취지

본 판결은 영장에 의한 강제채혈의 필요성과 허용성을 긍정하면서 혈액의 채취, 보관에 대해 감정처분허가장을 발부받아 ‘감정’에 필요한 처분으로 할 수 있지만 ‘압수영장’을 발부받아 압수에 ‘필요한 처분’으로도 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나아가 본건과 같이 음주운전 중 교통사고를 야기한 후 피의자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있는 등으로 도로교통법상 제1차적 수사방법으로 규정된 호흡조사에 의한 음주측정이 불가능하고 혈액 채취에 대한 동의를 받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법원으로부터 혈액 채취에 대한 감정처분허가장이나 사전 압수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도 없는 긴급한 상황을 전제로 형사소송법 제216조 제3항의 ‘범죄현장’에서의 압수에 준하여 영장주의 예외를 인정한 첫 번째 판결이다.

2. 강제채혈의 허용성과 영장의 성격에 관하여
교통사고의 가해자에 대해 과실의 유무를 특정함에 있어서 음주가능성이 있다면 피의자의 실제음주량이나 주취정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피의자가 의식이 있는 경우에는 도로교통법상 일차적으로 호흡에 의한 음주측정을 할 수 있고, 피의자의 동의를 받아 혈액을 채취하여 음주량을 조사할 수도 있다.

재판실무는 음주측정과정에서 호흡측정기에 의한 측정에 불응하는 운전자에게 혈액에 의한 측정방법이 있음을 고지하고 선택여부를 확인할 의무는 없으나 호흡에 의한 측정방법을 불신하고 혈액 측정에 의한 방법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바로 혈액측정으로 나아가야 하고 이를 두고 호흡측정기에 의한 측정에 불응하였다고 할 수 없다(대판 2002. 10. 25. 선고 2002도4220)고 한다.

혈액을 채취하는 방법으로 피의자가 병원에서 치료중인 경우 치료목적으로 채취하여 보관 중인 혈액의 일부를 의사로부터 임의제출 받거나(대판 1999. 9. 3. 선고 98도968), 상처로 출혈이 된 것을 주사기가 아닌 거즈 등으로 수거하여 감정 의뢰하는 것은 임의수사의 방법으로 가능하다.

그렇다면 피의자가 음주측정을 거부하거나 본건과 같이 사고 후 의식을 잃은 경우에 과연 피의자의 체내에 있는 혈액을 강제로 채혈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강제채혈에 필요한 영장은 어떤 것일까?

각성제의 경우에는 48시간 이내 약 70~90%가 체외로 배출되지만 미량이나마 약 2주 가량 체내에 잔류하기 때문에 각성제 사용 여부에 관한 확인방법으로는 소변검사가 제일 간이하고 확실하다고 한다. 반면 체내에 들어온 알코올은 혈액 중에 체류하는 시간이 매우 짧고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급속히 장기에 흡수돼 버리므로 혈액을 긴급히 보전할 필요성이 크다.

비록 혈액이 각종의 병력이나 질환 등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고, 임의제출을 거부하는 자에 대한 강제적인 채혈은 어느 정도 신체침해, 굴욕감을 주는 행위이라고 하지만 법관의 영장에 의해 의사 등 의료종사자가 적절한 방법으로 채혈하는 것이라면 절대 허용될 수 없는 수사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강제채혈에 대해서 본 판결은 이를 허용하면서, 영장의 법적 성격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감정처분허가장 또는 압수영장을 발부받아 감정이나 압수에 ‘필요한 처분’으로서 혈액을 채취,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학설은 검증영장으로서 신체검사의 성질을 갖는다는 입장, 검증과 감정의 성격을 가진다는 입장, 증거물의 확보를 위한 압수·수색영장과 감정처분허가장이 필요하다는 입장 등이 대립하고 있다.

수사실무에서는, 감정처분허가장은 위촉을 받은 감정인이 하지만(형사소송법 제221조의4), 압수영장의 집행은 수사기관이 한다는 점에서 ‘압수영장’을 발부받아 수사기관 주도하에 ‘필요한 처분’의 하나로서 의사로 하여금 채혈하게 해 왔다.

그러나 신체의 일부는 성질상 ‘압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다수설이고, 일부라도 신체의 장애를 야기하는 처분은 역시 ‘검증 또는 감정’의 필요한 처분으로서 하여야 한다.

이에 대해 일본의 재판실무는, 감정처분허가장에는 압수영장이나 신체검사영장과 달리 ‘필요한 처분’에 대한 준용규정이 없어서 ‘신체검사영장과 감정처분허가장’ 병용설을 채택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소이에서이다.

다만 혈액의 채취방법을 의사 등 의료관계인으로 한정하고, 의료기기를 사용하여 필요, 최소한의 상당한 방법으로 시행한다는 엄격한 전제를 단다면 ‘압수’영장에 의한 ‘필요한 처분’으로서 채혈을 하더라도 무방하다고 생각되고, 본 판결은 이러한 기존의 수사실무를 재확인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긴급 강제채혈의 요건에 대해서
피의자가 음주측정을 거부하는 경우 도로교통법위반(음주측정거부)으로 처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최근 도로교통법의 개정으로 알코올농도에 따라 적용법조나 법정형을 달리 하고 있는데다가(동법 제148조의2 제1항, 제2항) 과실의 유무·정도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결국 알코올농도를 측정해야 할 당위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본건과 같이 교통사고를 야기한 피의자가 혼수상태에 있고, 사건 현장이나 후송된 병원이 원거리에 있어서 법관으로부터 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에까지 일률적으로 사전영장을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 해석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본 판결이 1)피의자의 신체 내지 의복류에 주취로 인한 냄새가 강하게 나는 등 준 현행범인의 요건이 갖추어져 있고(준 현행범성), 2) 교통사고 발생 시각으로부터 사회통념상 범행 직후라고 볼 수 있는 시간 내에서 사고 현장으로부터 곧바로 후송된 병원 응급실 등의 장소는 범죄 장소에 준한다 할 것이어서(준 범죄현장성), 3)의료인의 자격이 있는 자로 하여금 의학적인 방법에 따라 필요최소한의 한도 내에서(방법의 상당성, 최소성), 피의자의 혈액을 채취하게 한 후 그 혈액을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정당하고 수사현실의 어려움과 혈액에 대한 긴급보전의 필요성을 고려하여 영장주의의 예외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면서도 4) 반드시 사후영장을 요구하였다는 점에서는 너무 엄격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현행범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누구든지 체포할 수 있다고 하면서 시간적, 장소적 근접성을 이유로 준현행범의 경우에 이를 확장하고 있다(제211조 제2항). 한편 준현행범 체포과정에서 영장 없이 압수한 것은 ‘계속’ 압수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 한해 사후영장을 요하고 있다(제217조 제2항).

판례가 이러한 준현행범임을 전제로 시간적, 장소적 근접성을 요건으로 하면서도 ‘범죄현장’의 압수에 준해서(제216조 제3항) 일률적으로 사후영장을 요구하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감정 후 바로 폐기처분하여 더 이상 ‘계속’ 압수할 필요성이 없는 혈액에 대해서까지 반드시 사후영장을 요하는 것은 법 제217조 제2항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피의자의 의식이 돌아오면 바로 도주할 수 있으므로 체포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체포현장’에서의 압수에 준해서(제216조 제1항 제2호) ‘계속’ 압수의 필요성에 따라 사후영장의 필요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좀 더 논리적이라고 생각된다.

Ⅳ. 대상판결의 평가
본 대상판결은, 강제채혈의 허용성을 긍정하면서 법원으로부터 감정처분허가장 또는 압수영장을 발부받아 감정이나 압수에 ‘필요한 처분’으로서 가능하다고 한다. 이러한 판례의 입장은, 신체의 일부를 압수할 수 없다는 학설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점도 있지만 수사기관의 주도 하에 의료인에게 ‘압수’에 필요한 처분으로서 채혈하게 해 온 기존의 수사실무를 재확인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나아가, 범인의 명백성, 긴급성, 필요성과 상당성이라는 엄격한 요건 하에서 강제채혈에 대한 영장주의의 예외를 처음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본 판결은 수사실무상 매우 획기적인 판결이다. 그러면서도 감정 후 바로 폐기처분하여 ‘계속’ 압수할 필요성이 없는 혈액에 대해서까지 일률적으로 사후영장을 요구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본건 이유에서와 같이 피고인의 아들에 의한 강제채혈 동의나 법정대리인, 동서의 동의를 일관되게 부정하고, 의식불명인 피의자 본인의 동의만을 고집하고 있는 기존 판례의 입장(대법원 2009. 11. 19. 선고 2009도6058 전원합의체 판결; 동 2014.11.13. 선고 2013도1228 판결)을 감안할 때 이를 포함하여 널리 긴급대물처분의 하나로서 강제채혈을 형사소송법상 명문으로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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