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네치아위원회
지난 1월1일 JTBC 방송에서 신년토론이 있었다. 우파에서는 이혜훈 전 의원과 내가, 좌파에서는 한때 통진당에 몸담았던 유시민, 노회찬 전 의원이 나왔다.

통진당 해산이 당연히 거론됐다. 노회찬 전 의원이 헌재의 해산결정이 국제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로 ‘베니스위원회’를 언급했다. 좌파인 그가 미국식으로 베니스라고 하는 게 엉뚱해 보였다. 그래서 내가 ‘베네치아위원회’라고 정정하자 내 옆의 이혜훈 전 의원이 곧장 받았다. “베니스와 베네치아는 같은 거예요!” 덕분에 나는 베니스와 베네치아가 같은 곳인 줄 모르는 바보가 됐다. 초등학교 아이들도 아는 걸 모르는 논객이 된 것이다.

그런데 정말 같을까? 베네치아를 베니스라 하는 사람은 영어권 사람들일 뿐이다. 지구상에 베네치아는 있지만 베니스는 없다. 우리가 피렌체를 플로렌스라고 부르고 빈을 비엔나라고 부르는 것은 난센스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탈리아를 이틀리라고 하지 않고 로마를 롬, 모스크바를 모스코, 파리를 패리스라고 하지 않으면서 베네치아나 피렌체를 영어식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미국영화를 보면 카이사르가 아니라 시저라고 하면서 롬이라 하지 않고 로마라고 친절하게 자막처리하는 건 또 무엇인가? 습관인 것인가?

그날 나는 이혜훈 전 의원이 끼어든 데 대해 ‘로마선언을 롬선언으로 하지는 않지 않습니까?’라고 쏘아주지 못했다. 이런 명칭에 대한 혼란은 언론이 조장한다. 이러다보니 백과사전에도 베네치아위원회는 없고 베니스위원회만 등재됐다. 언제 우리가 미국의 속국이 되었나? 그래도 아테네를 에쓴즈, 네덜란드를 홀랜드라고 부르는 언론이 없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 독일, 도이칠란트
우리는 아메리카합중국(U.S.A.)을 미국(美國)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나라이다. 일제 강점기 때 부르던 미국(米國)을 한자만 바꿔 계승한 셈이다. 이런 이상한 계승은 많다. 독일이라는 나라 이름이 대표적이다. 구한말 우리가 덕국(德國)이라고 하던 도이칠란드를 일본이 줄여 도이찌라고 하면서 그 소리를 한자로 ‘獨逸’이라고 표기한 것을 우리가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프랑스를 불란서, 스위스를 서서, 잉글랜드를 영국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예다.

우리는 친일파를 미워하면서 왜 일제를 청산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혼인을 결혼이라고 하고 층계를 계단이라고 부르고 아직도 ‘간발(間髮)의 차이’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일까? 고수부지 대신 둔치를, 와사비 대신 고추냉이를 써야 한다는 걸 강조하면서 말이다. 이제 서반아니 비율빈이라고 쓰는 신문이나 말레이시아를 말련이라고 하는 방송이 없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까?

# 모택동, 마오쩌둥
서울을 중국인들은 한성(漢城)이라고 하고 일본인들은 경성(京城)이라고 부르곤 한다. 우리가 서우얼이라는 중국식 발음대로 표기한 수이(首爾)라는 괴이한 한자까지 써서 서울이라고 불러주기를 기대하지만 중국인들은 아직도 한성을 더 많이 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모택동을 마오쩌둥으로 등소평을 덩샤오핑으로 부른다. 젊은 기자들은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은 알아도 장택민, 호금도, 습근평은 모른다. 기가 막힌 건 파리의 개선문은 개선문이라고 하면서 천안문은 톈안먼이라고 하는 것이다. 북경을 베이징으로, 산동반도를 산둥반도로 부르다 보니, ‘산시’라고 똑같이 발음하는 섬서(陝西)와 산서(山西)는 한글로는 구별할 길이 없다.

신해혁명 이전은 우리 발음대로 하면서 굳이 중국 발음대로 고친 것이 세계화라면 이건 소가 웃을 일이다. 일본에 대해서도 이런 과공(過恭)은 계속된다. 언제부턴가 풍신수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등박문은 이토 히로부미로 바뀌었다.

우리는 한자(漢子)문화권이다. 한자가 중국 문자라고 우기는 말은 하지 말라. 한자 문화권이니만큼 한자어로 된 인명이나 지명은 당연히 우리 식으로 발음해야 한다. 미국이 파리를 패리스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베네치아를 영어식으로 베니스라고 하는 것은 코미디다.

하긴 영어를 숭배한 지 오래 됐다. 한자문화권에서 우리의 자존심을 버린 지도 오래 됐다. 안배(安倍晋三)라고 쓰는 신문이 하나도 없으니 아베 신조가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게 아닐까? 중국 연변에 있는 동포들이 만든 방송인 연변방송이 ‘옌벤방송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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