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자락은 철마다 야생화 천지다. 야생 들꽃은 ‘어디서 피냐’에 따라 생사가 갈렸다. 초등학교 때 점심급식으로 강냉이 죽을 주었다. 새끼 돼지들처럼 먹는다고 ‘꿀꿀이 죽’이라고 했는데 형편이 어려워 죽을 먹는 애들은 그 대신 방과 후 남아서 화단이나 운동장 주변의 풀 뽑는 일을 했다.

하루는 풀을 뽑고 있는데 수업을 마친 여자애들이 가까이 오더니 개망초 각시붓꽃 금붓꽃 같은 야생화를 보며 탄성을 질렀다. 우리는 뽑아야 할 잡초인데. “와! 예쁘네, 이거 무슨 꽃이야?” “잡초! 맘에 들면 다 뽑아가, 기집애야!” 처지가 다르면 같은 것도 다르게 볼 수 있나보다. 그때 내 기분은 풀을 뽑아야만 하는 우린 왠지 ‘잡초’같고 그냥 집에 갈 수 있는 애들은 ‘꽃’ 같다는 느낌이었다. 나도 태어날 땐 산파아줌마가 “왕자님이 태어났다!”고 했다는데, 어째 ‘왕자님’으로 산 기억은 없다. 어릴 적 잡초 대접을 받았던 야생화는 지금은 ‘어디서 피든’ 귀한 꽃 대우를 받는 신분으로 위상이 달라졌고 고향마을엔 야생화 기념관도 생겼다.

2013년 봄 협회 공보이사가 칼럼 ‘살며 생각하며’를 써 보라 했다. “형, 그동안 ‘살며 생각한 거’ 그거만 쓰면 되니 부담도 없고, 편하게 쓰면 돼요” 했다. 마지못해 대답했지만 살아온 게 그닥 안 편했는데 글이 편하게 써질 리 없었다. 글을 쓰다보면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는 용기가 필요한데, 쓰다보니 살아온 일을 죄다 ‘까 놓아야’ 해서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기도 했고, “이걸 써? 말어?” 망설임도 있었지만 에라 모르겠다고 ‘까’버렸다.

‘왕자’‘공주’급 대우를 받고 자란 아들, 딸은 그 칼럼 덕분에 내 젊은 시절과 변호사 일을 신문 활자를 통해 처음 알았다. 외판원으로 버스에 올라 ‘만능망치’라는 물건을 팔다가 시험 삼아 내리친 망치 대가리가 부러져 망신을 당하고 쪽팔린 얘기, 어머니 머리카락을 잘라 판 돈으로 학비를 댄 이야기 등 시린 추억과 변호사일로 ‘먹튀’스님에게 수임료 떼이고 속을 부글부글 끓던 일, 돈 물어내라고 생떼 쓰는 할머니에게 몇 달째 시달리고 잠 못 이루면서 끙끙대던 일, 차마 말 못한 얘기들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듯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칼럼 연재 후 나를 대하는 가족들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지난 해 에드바르트 뭉크의 그림 전시회가 있었다. 노르웨이 ‘국민화가’로 마음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표현주의 화가인 그는 왜곡된 형태와 강렬한 색채를 통해 두려움 고독 고뇌와 같은 내면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 ‘절규’‘자화상’‘태양’ 같은 그림 중 최고 걸작이라는 ‘절규’에 마음이 끌렸다. 뭉크는 그 작품에서 미래에 대한 극도의 불안함, 희망없는 삶, 절망적인 삶을 살아야하는 막막한 현실을 ‘절규’하는 모습으로 표현 했는데 그림 속의 사람이 머리를 감싸고 불안에 떨며 절규하는 표정이 내 젊은 날 자화상으로 오버랩 되었다.

얼마 전 지친 모습으로 퇴근하자 딸이 그림엽서를 슬며시 주었다. A4 크기 엽서의 그림은 뭉크의 ‘태양’이었다. 그가 불우한 젊은 시절을 극복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회복된 후 그린 후기 작품인데, 태양이 하늘에 떠 있고 강렬한 햇살을 뿌려 밝은 기운이 완연한 그림이었다. “아빠, 뭉크의 ‘절규’ 아시죠?” ‘요즘 내 모습이 뭉크의 그림 속 ‘절규’하는 사람처럼 보였는가?’ 속으로 뜨끔했다. “아빠는 우리 가족을 위해 그동안 무지 애를 쓰셨어요. 마치 뭉크의 ‘절규’처럼 힘드시게요. 그러니 아빠, 이젠 쉬시면서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어요. 저희들 가족 걱정 마시고 이제부턴 하고 싶은 일 맘껏 하시고 노셔도 돼요! 엄마도 오빠도 똑같은 생각이에요.” 엽서 뒷면에 딸의 글도 있었다.

‘사랑하고 지금도 사랑하는 아빠 / 매일 누구에게나 같은 해가 뜨는데 / 그 해를 보며 이만큼을 볼 수 있으면/ 깊이 행복할 것 같아요 / 아빠는 어떤 해가 보이시나요? / 아빠는 요즘 행복하시나요? / 일년 삼백육십오일 뜨는 해 / 사람들은 그 밑의 자그마한 삶에서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웃고 울고 / 그렇게 보내는 것 같아요 / 하지만 뭉크의 이 그림에서처럼 해 아래엔 빛나는 삶도 있고 꿈과 행복도 있어요 / 그리고 우리를 내려다보며 말하고 있어요 / 지금은 오직 ‘지금뿐’이니 / 작은 것들 안에 갇혀 살지 말고 나와서 춤을 추라고 /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고 / 있는 그 자리에서 늘 그대로.’

변호사로 ‘밥벌이’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지난 달엔 연휴에 노는 날이 많다보니 사무실 월 분담금도 부대낀다. 달마다 느끼는 삶의 무게는 바위처럼 무겁다. 이런 ‘힘듦’을 헤아려준 가족들이 고마웠다. 그래 맞아! 힘들다고 갇혀 ‘절규’만 할 수는 없지. 가족들도 나보고 하고 싶은 일 하고, 누리며 쉬라고 하지 않냐. 그러면서 ‘앞으로 뭐하며 누리고 쉴까?’ 행복한 고민도 해 보는데, 딩동! 문자메시지가 왔다. 아내다. “저기요, 곳간이 텅 비었는데 곳간(생활비) 좀 채워주면 좋겠는데…”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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