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김영란법의 통과를 바란 것은 이 법의 근본 취지와 원칙을 잘 유지하여 우리 사회에 높은 수준의 공직문화가 형성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는 국민의 요구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특히 여야는 여론을 의식해 법안을 제대로 심사도 하지 아니하고 졸속으로 처리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역할은 본회의 통과 전 법안의 체계·자구를 심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3일 김영란법을 처리하기 위해 열린 법사위는 법안에 대한 밀도 있는 심사는 포기한 채 법안 통과 후 있을지도 모르는 비난을 회피하기 위한 자리에 불과했다고 한다.

더 한심스러운 것은 국회가 김영란법의 입법과정에서 자신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데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령 부정청탁을 금지하는 김영란법 제5조에서는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들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개선, 정책 사업 제도 운영개선을 제안 건의하는 행위’에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부정 청탁 유형과 유사하더라도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이 공익 목적으로 한 행동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 예외 규정은 당초 정부의 원안에 들어있던 ‘공익적 목적으로 공직자에게 법령 등의 제정, 개정, 폐지 등을 요구하는 행위’로 되어 있던 원안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확대된 것이다.

국회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국회의원은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 여론이 김영란법의 통과를 바란다고 해서 건성건성 법안을 심의해서 통과시켜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번 국회가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과 그 가족 등 300만명 이상을 적용 대상으로 하는 김영란법의 위헌성이나 모호함, 그리고 이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알면서도 일단 비난은 피하자는 식으로 법을 통과시킨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

앞으로라도 국회가 김영란법의 위헌요소를 제거하는 일에 좀더 매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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