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입춘이 지났다.

올해도 미국 동부는 폭설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필자가 있는 곳에는 두 차례 적은 양의 눈이 내렸을 뿐이다. 작년에 엄청난 한파로 고생하셨다는 주변 분들의 말이 무색하게 올해는 비교적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연수를 준비하는 분을 위한 조언을 하나 더 드리자면 연수지역의 날씨도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서부의 폭우, 중부의 토네이도, 남부의 허리케인, 동부의 폭설 등이 최근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극단적인 기상 사례이다. 여기 세인트루이스에서 최근 토네이도가 발생한 것이 2013년 5월 말이라고 하니 부디 오는 봄까지 안전하게 지낼 수 있기를 기도드릴 뿐이다. 이제 연수기를 쓸 수 있는 기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미국 내 주요 사건사고를 다루었다면 남은 연수기는 미국의 변호사와 대학 등에 관하여 이야기 드리고자 한다.

이번 연수기는 미국 변호사의 프로보노 활동에 관하여 다룬다. 프로보노란 라틴어 ‘프로 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의 줄임말로,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이는 법률뿐만 아니라 의료·교육·경영·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직업윤리 차원에서 행하는 공익활동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근래 한국의 법률시장의 급격한 변화와 관련하여 변호사의 공급과잉 문제를 중심으로 한 우려와 대책은 시급해 보이지만 부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법률시장의 개방에 따른 경쟁 심화 상황에서 변호사 직역의 공공성의 위기가 더 근본적인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에는 변호사 프로보노에 관하여 미국의 상황을 살펴보는 기회는 가져보았다.

미국 변호사협회(ABA)는 1983년 제정된 변호사윤리모범규칙에 모든 변호사는 법률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자를 위해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직업적 의무가 있고, 1년에 적어도 50시간 이상을 공익활동에 기여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여기서 공익활동의 범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빈곤층 또는 빈곤층을 위한 기관, 단체 등에 무료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고, 둘째는 빈곤층이 아닌 일반적인 의뢰인에게 저렴한 비용 또는 변호사의 보수 없이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다. 후자의 경우 공익활동의 개념과 범위가 불명확한 점이 있으므로 이에 포함되는 공익활동을 구체적으로 예시함과 아울러 각주 변호사협회 차원에서 개별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평가하는 프로보노 관련 위원회를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특히 1996년부터 프로보노 인스티튜트(PBI)를 통하여 50인 이상의 변호사들이 일하는 대형 로펌은 연간 비용 청구시간의 3~5%(연간 약 60~100시간)에 해당되는 시간을 공익활동에 할여할 것이 적극 독려되고 있다. 로펌은 개인변호사와는 달리 고객의 대부분이 기업이어서 사회적 약자를 만날 기회가 적다는 이유로 더욱 조직적인 공익활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ABA가 해마다 발표하는 프로보노 활동 순위(평가 및 수상 단위는 개인, 로펌, 공공기관, 기업 법무팀 등으로 세분되어 있다)는 로펌을 평가하는 중요한 평가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뉴욕 주(洲)의 경우 변호사 자격의 신규 부여 및 갱신 절차에 필요한 요건으로 일정한 공익활동 수행을 요구함으로써 법으로 이를 강제하는 것 이상의 구속력을 부여하고 있다. 변호사 등록을 위하여 일정한 공익활동 시수를 요구하는 조치는 변호사가 되기 전부터 공익활동에 익숙해지고 변호사가 된 후에도 공익활동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해 보인다.

미국은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법으로 이를 의무화하지 않았음에도 변호사단체와 전문기관이 엄격하게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관리·감독하여 프로보노 활동을 적극적으로 조성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2000년에 개정된 변호사법에 의하여 세계 최초(!)로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을 법적 의무로 규정하였으나, 제도를 시행함에 있어 각 지방변호사회 차원에서 이를 대체·완화하는 행보를 보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변호사의 공익활동은 사회적 소외계층의 권익 보호뿐만 아니라 변호사 직역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경우 지금까지 변호사의 공익활동에 있어 개별 변호사나 공익단체의 노력과 헌신이 강조되었다면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현 시점에는 변호사협회 차원의 보완책 마련과 로펌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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