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아침 요르단의 국왕 압둘라 2세(53세)의 기사를 다시 읽었습니다. 압둘라 국왕은 2월 초 전투복 차림으로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공습을 지휘하였습니다. 한때는 직접 전투기를 몰고 IS를 공습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위 기사와 함께 내 기억의 표면에는 총리후보자 인사청문회의 장면들이 떠오르고 댓글판사의 사표수리 소식이 남아있습니다.

총리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보면 국민의 대표자들이 바라는 지도자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윤리적으로 깨끗하고 능력도 출중한 사람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중에게 인기 있는 사람 중에서 그런 조건을 갖춘 사람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한마디로 슈퍼스타를 원하고 있습니다.

만약 젊은 시절 자신이 앞날의 지도자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면 그는 개인적인 욕망을 버리고 오직 이타적인 삶을 살면서 자신의 능력을 펼쳐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인정한다면 보통사람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삶의 모습입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정작 자신들도 해내지 못하는 조건들을 내세워 지도자를 검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입니다.

나는 이 글을 통하여 특정인물을 지지하거나 누구를 비난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나는 우리가 “누구에게 지도자의 삶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만약 지도자의 덕목이 있다면 우리 자신은 그런 덕목에서 자유롭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도자를 검증하는 안목이 아니라 지도자를 따를 수 있는 마음(followership)인 것 같습니다. 현재는 만인의 평등을 말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 만인평등사상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행복이 보장되어야 할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리더십에 관하여 말할 때에는 자신이 리더의 자리에 설 자격이나 용기도 없으면서 왜 비난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지도자에 대하여 특별한 상처들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상처들이 누적되어 있다가 지도자에 대한 비하로 표현되거나 분노로 표출되곤 합니다.

우리 사회가 고도성장을 이루는 동안 약자들의 희생은 강요된 반면 지도자들의 헌신은 작아보였고 지도자의 출현과정에 관하여 정립된 절차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이제 새로운 관점에서 리더십을 바라볼 것을 제안합니다.

세상의 유행은 대부분 상류층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패션에 민감한 사람은 패션리더를 주목하고 경제흐름에 민감한 사람은 재벌의 움직임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멋쟁이들은 누가 멋쟁이들을 선도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가설입니다.

현재 한국의 법률시장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위 변화의 첨단에는 누가 서 있습니까? 그 변화를 따르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까? 그 변화의 흐름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은 변화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변화의 흐름을 리더십이라고 본다면 변화를 따르지 싶지 않은 사람은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좌절입니다.

뒤늦게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하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유머를 찾는다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한국의 재계, 패션업계 및 체육계 리더들의 청춘시절을 재미있게 묘사하였다는 점입니다. 위 영화주인공과 우리의 공통점은 미래의 지도자를 잘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제안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지도자가 될 것인가? 지도자를 세우고 이를 따를 마음을 가질 것인가?

현재의 법률시장에서는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예측하기 쉽지 않습니다. 리더십의 부재도 관측되고 있습니다. 로스쿨은 이대로 두어도 되는지 어느 누구도 책임있게 답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법시험은 존치하여야 하는지 그 결정은 누가 해야 합니까?

많은 변호사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도 바쁩니다. 마치 국회의원들과 장차관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에 바쁜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의 삶이나 재벌총수의 삶도 결코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힘든 삶을 살아갈 때 매우 정상적인 방법으로 천천히 걸어서 정상에 오른 사람이 지도자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매우 공정한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온 사람이 공동체의 앞에서 걷기 시작하였다면 이제 그를 지도자로 세우고 싶습니다. 그는 이제 공동체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뛰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가 우리의 지도자입니다.

이때 날고뛰는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확장해온 사람은 빠져주셔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힘을 다 쓴 사람은 공동체를 위하여 헌신할 힘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영역에서 변화를 선도하는 상류층의 출현이 있기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