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시간, 돈과 체력을 소비하는 것에도 경제학적 법칙이 작용한다. 변호사들은 동종업자들끼리 술자리는 잘 가지지 않는다. 냉정히 말해, 한정된 자원과 에너지를 동종업자 간에 소진해봐야 영업적으로 큰 소득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술자리를 ‘자가발전(自家發電)’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필자도 평소 많은 술자리에 참석하지만 동료 변호사들끼리 소주잔을 기울이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가끔 변호사들끼리 술을 마시면, 구구히 배경을 설명하지 않고도 직업상 애로사항이나 고민거리를 쉽게 나눌 수 있다. 상담이나 수임단계에서 막히는 일, 비용을 책정하고 청구하는 일, 재판 진행과정에서의 난점, 재판을 마친 후의 클레임 등은 변호사가 아니라면 쉽게 알 수 없는 내용이라서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의 술자리는 꽤 유쾌하고 유익하기도 하다.

작년 연말에 집 근처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변호사들끼리 송년회를 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법정이나 법원 근처에서 ‘언제 소주 한잔 합시다’라는 공허한 인사말만 나누는 것이 서로에게 미안했고, 따지고 보면 좁은 지역사회에서 선후배인 것은 틀림없으니 술 한잔 나누면서 ‘호형호제’를 허락하는 화기애애한 자리가 되었다.

직장인들의 술자리에서 제일 좋은 안주는 직장상사이듯, 변호사들의 술자리에서 제일 좋은 안주는 판사들이 된다. 술자리가 무르익어 가면서 모두들 동의하였던 말은 ‘사람 보는 눈은 똑같다’라는 인생사의 명제(命題)였다. ‘저 재판장은 왜 저럴까?’라고 생각했던 것은 필자뿐만이 아니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불편함을 호소하는데 적지 않게 놀랐다. 또, 특정한 재판장은 매우 훌륭해서, ‘클래스(class)가 다르다’라고 보는 시각도 대부분 같았다.

이야기 끝에 요약된 좋은 법관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첫째, 친절한 사람이다. 훌륭한 법관은 억지스러운 주장마저도 모두 답답해서 하는 이야기임을 알고, 억울함이나 오해를 풀려는 당사자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소송관계인들은 근본적으로 자기가 적어내는 이야기를 법관이 모두 읽어보는지부터 의심한다. 신뢰를 받는 법관은 친절한 태도로 소송관계인이 말하는 것을 충분히 들어주어야 한다. 법관의 친절함은 당사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판단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게 되고, 나중에는 재판 결과에 대한 승복으로 이어진다.

둘째, 국민이 생각하는 막연한 법 감정과 실제의 법이 다를 수 있고, 그 차이를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소송관계인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법관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셋째, ‘경청’과 ‘설득’이 모자라지 않도록 하는 와중에도 재판은 지연되지 않아야 한다.

법관이 사건 하나하나마다 소송관계인의 뜻을 잘 헤아리면서도 재판이 지연되지 않아야 한다는 건 모순된 요구이다. 그런 법관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으나, 분명 그런 훌륭한 법관이 실재(實在)하고 있고, 주석(酒席)에 있었던 변호사들은 입을 모아 특정한 법관이 그에 걸맞는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변호사들이 ‘좋은 법관’ ‘나쁜 법관’을 가리는 것에 법원에서는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법원이 반감을 가지는 이유는 법관평가가 법관에 대한 인기투표가 될 수도 있고, 법관평가를 통하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법관의 독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 변호사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선고한 판사에게 보복적인 낮은 점수를 줄 수도 있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집단지성(集團知性)은 위대한 것이다. ‘사람들이 보는 눈은 비슷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법원을 드나드는 주요한 수요자인 변호사들이 상당한 기간 동안 특정 법관의 업무처리를 두고 내리는 공통된 평가는 의미가 있다. 내부적인 근무평정과 법원의 출입하는 수요자의 평가는 법관의 독립성의 관점에서는 동등하다고 보아야 한다. 즉, 변호사들의 법관평가가 법관의 독립성을 훼손할 소지가 있다면, 현재 행해지고 있는 법원 내부의 근무평정도 마찬가지로 법관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봐야 옳다.

과거 권위주위 정부에서 법관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였던 일에 대해, ‘법관의 독립’을 잊지 않고 역경을 극복하였던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법관평가는 법관에 대한 부당한 압력이라기보다는 사법 수요자로서의 국민이 어렵사리 사법부에 표명하는 의견이라고 보아야 한다. 법관 평가는 각각의 사건에서 특정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불만이 아니라, 법관이 재판에 임하는 태도에 관한 요청이기 때문이다.

법원이 법관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은 사법서비스의 품질을 개선하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할 수 있는 길이 된다. 법원 외부의 솔직한 평가에 대하여 ‘법관의 독립’이라는 도그마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귀 기울여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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