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을 만나거나 모임에 나가면 매번 받는 질문이 있다. 이혼사건 전문이냐는 것이다. 여성변호사에 대한 선입견 혹은 지레짐작일 터인데, 대답을 머뭇거리게 된다. ‘전문’을 자처할 정도로 이혼사건의 비율이 높지 않은 까닭이다. 다만 이혼사건의 의뢰인이 대부분 여성인지라 공감하는 부분이 많고, 속상한 사연을 듣다가 감정이입이 되는 경우도 잦은 것은 사실이다. 맞장구를 쳐주다 의기투합하는 것인데, 이는 분명 의뢰인의 남편과 변호사의 남편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수험생일 때 만난 남편은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시간도, 돈도 넉넉하지 못했으나 대화는 풍요로웠다. 쉬는 시간 잠깐의 대화가 아쉬워 휴일에는 온종일 수다를 떨었다. 따뜻한 말과 말 사이에서 고단함을 위로받았고, 시험의 압박감을 견뎠다. 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결혼 후 사정은 달라졌다. 남편은 아내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함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웹서핑으로 보내고, 말을 붙여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응, 응…” 건성으로 대답한다. “아까 내가 뭐랬지?”라고 기습적으로 물어보면 마지막 말은 기막히게 기억하는데, 이는 분명 생존본능일 것이다.

대화에 소극적이니 갈등을 해결하기도 어려웠다. 태생적으로 고집 세고 간섭받기 싫어하는 남편은 오랜 자취생활로 획득형질을 더했다. 남편은 합리적인 충고와 부당한 간섭을 구별하지 못했으며, 유용한 제안도 불필요한 개입으로 받아들였다. 성숙한 인격이라 여겼던 남편은 다섯살짜리 계집애처럼 틈틈이 토라졌고, 사소한 다툼은 종종 감정싸움으로 변했다. 속마음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데 지극정성이 필요했다.

의뢰인들의 사연도 비슷하다. 소소한 일로 상한 기분이 메울 수 없는 골을 만든다. 작은 양보와 다정한 말 한마디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지속적인 냉전 상태로 변질되기도 한다. 특히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진심을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대화의 기술’이 부족해 생기는 결과라 더욱 안타깝다.

이러한 직업적 관찰과 스스로의 경험으로 터득한 깨달음이 있다.

첫째, 서로의 단점을 인정하자. 단점을 장 점으로 바꾸기는 어려울 뿐더러, 대개는 불가능하다. 단점은 장점의 다른 측면이라 여기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다. 자취생활을 오래한 남편은 사소한 간섭에도 민감하나, 집들이를 혼자서 준비할 정도로 요리를 잘한다. 청소를 싫어할 뿐 아니라 청소 구경도 달갑게 여기지 않지만, 청소에 무관심하니 잔소리가 없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 대화에 소극적이나,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둘째,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자. 남자와 여자의 의사소통 방식은 다르다.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면 갈등이 커질 뿐이며, 진심을 전달하기도 어렵다. 남편에게 불만을 이야기할 때 부드럽게 전달한다고 에둘러 말했더니, 오히려 잔소리로 받아들였다. 원하는 결과만 짧게 전달하는 방식이 효과적이었다.

셋째, 다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부부간의 갈등은 대부분 사소한 일이다. 그런데 다툼 자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마음이 다치기 쉽고, 2차적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순간적으로 울컥해도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넘겼는데, 하루만 지나면 무슨 일인지도 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넷째, 인내심을 가지고 진심을 전달하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라면 반드시 말하되, 최대한 솔직하게 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자주 명정상태에 빠지는 남편은 술을 줄이라는 요청을 간섭으로 받아들였으나 방어능력 없는 남편의 안전을 염려하는 진심이 전달된 이후에는 음주 횟수와 양에 대해 타협할 수 있었다(그 과정에서 소송에 증거로나 제출하던 ‘각서’를 실제로 받아보기도 했는데,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결혼의 필요조건은 사랑이나, 사랑만으로 좋은 배우자가 될 수는 없다.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이 증오로 얼룩지고, 소송을 통해 관계를 정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배우자의 소중함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에는 매순간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고,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갈등을 부드럽게 처리하는 기술도 요구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우리가 경력을 쌓고, 돈을 벌고, 아파트를 장만하기 위해 들이는 강박적 노력의 절반만 있어도 아마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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