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선배 변호사와 식사를 하면서, 요즘 적자가 커져서 내년에는 소속 변호사에게 안식휴가를 줄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배가 대표로 있는 H법무법인은 변호사가 30명이 되지 않는 규모인데도 해마다 한명의 변호사에게 1년의 유급휴가를 주었었다. 해당 변호사에게 월 500만원씩을 주니 매년 세후 6000만원 정도를 추가로 지출하는 셈이다.

큰 법무법인이야 변호사들의 연수비용으로 수십억원씩 쓸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 규모의 법무법인이 소속 변호사에게 1년의 유급휴가를 주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 법무법인은 그다지 ‘돈’이 되지 않는 공익소송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전에는 잘 몰랐지만, 작은 법무법인을 운영하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복지제도 한 가지를 십수년 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하고 있다. 한두해 정도 해 볼 수는 있지만,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10여 년 이상 이런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확고한 경영철학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경영자는 자신의 기업이 직원들에게 ‘훌륭한 일터, 일하고 싶은 직장’이기를 소망한다. 그런 경영자에게 기업목표 달성과 직원의 행복증진은 동시에 달성하기에는 늘 버거운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매일매일 크고 작은 전투가 연속되는 송무변호사의 일상에서 법무법인을 ‘출근하고 싶어 안달하는’ 직장으로 만든다는 것은 꿈속 이야기에 가깝다. 인간존중의 경영을 해야겠다고 하면서도 막상 생각일 뿐이지, 현실에서 인간은 늘 ‘비용’으로 환산된다.

‘훌륭한 일터(GWP, Great Work Place)’의 핵심요소는 신뢰와 자부심, 재미이다. 신뢰는 믿음, 존중, 공정으로 나누어지니, 결국 이 다섯 가지 요소가 ‘훌륭한 일터’의 구성요소이다.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불리는 일본 미라이 공업에서는 잔업과 휴일근무가 없고, 1일 근무시간이 정확하게 7시간 15분임에도 동종업계 최고의 연봉을 준다. 연 140일 이상을 쉬면서도 창업 이래 40년 이상 흑자를 내고 있다. 직원들에게 매년 국내여행을 보내주고, 5년에 한번은 해외여행을 보내주는데, 그 비용은 모두 직원들이 아낀 전기세, 소모품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1000명 가까운 직원들이 복사기 1대만을 이용하면서도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 이름 적힌 쪽지를 선풍기에 날려 가장 멀리 날아간 쪽지에 적힌 직원을 과장을 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차피 조직은 일 잘하는 20%와 평균인 60%, 일을 못하거나 안 하는 20%로 구성되게 마련이니, 효율과 경쟁, 목표를 강조하는 것보다는 직원들을 믿고 맡기고, 회사가 직원들을 감동시키면 직원들은 남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노력하게 되고, 이는 회사의 성장으로 귀결된다는 철학의 소산이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7년 연속 대한민국 훌륭한 일터상(2009년에는 대상)을 수상한 김종훈 대표의 한미글로벌은 ‘회사가 직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무자비한 훈련과 교육’임을 강조한다. 이와 동시에 2개월의 파격적인 Apple Vacation을 주고, CEO를 내부 직원 중에서 선발함으로써 모든 직원에게 ‘나도 열심히 하면 사장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주었다. 애플 베케이션은 뉴턴이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하다가 사과나무 아래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데서 따온 이름인데, 직원들의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파격이다. 직원이 주인인 회사, 그 주인을 귀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직장의 재미, 신바람 나는 일터일 것이다. 즐거운 기업문화가 중요한 경쟁력의 하나로 인식되면서 재미는 점점 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엘지마이크론은 2009년경 팀별로 직원 한 명을 ‘비타민 씨(氏)’로 임명해서 이벤트를 기획, 추진하는 역할을 하게 하였다. 이런 행사를 통해 추구하는 것은 이벤트 자체의 즐거움도 있지만, 동료들과 함께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이다. 훌륭한 일터의 재미는 서로 배려하고, 감사, 인정, 칭찬 등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동료 사이의 우호적인 인간관계에서 찾아진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 보자. 나의 법무법인은 단지 일만 하고 월급을 받아가는 곳인가? 아니면 일도 하지만 그 안에서 공부하고, 쉬고, 먹고, 마시고, 놀고, 사귀는 삶의 공간인가? 변호사들에게 부부 동반 해외여행을 보내준다고 했던 약속을 얼마 안 되는 수당 지급으로 때운 것이 벌써 후회된다. 확고한 경영철학은 없더라도 흉내라도 내보고 싶은 올 한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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