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법정영화 중에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라는 일본영화가 있다. 주인공 ‘카네코 텟페이’는 지하철 전동차에서 여학생의 엉덩이를 만진 성추행범으로 몰려 구속수사와 재판을 받고 ‘징역 3월 집행유예 3년’의 억울한 처벌을 받는다. 영화는 피고인의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는 외면하는 유죄추정의 타성에 젖어있는 관료주의적인 경찰과 검찰, 법원의 모습을 잘 묘사한다. 영화를 보면서 지하철 성추행범 사건을 우리나라의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했다면 주인공이 정당하게 무죄판결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 10월 15일 국선변호사로 폭행치사사건의 참여재판에서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무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술에 취한 피해자가 피고인과 박아무개에게 시비를 걸면서 손바닥으로 피고인의 얼굴을 수회 때리고, 계속하여 박아무개의 얼굴을 수회 때리자, 피고인이 피해자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한손으로 피해자의 어깨 부위를 밀쳤는데 이로 인해 피해자가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부딪혀 사망한 사건이었다. 배심원은 만장일치로 무죄평결을 내렸고 판사도 평결에 따라 무죄판결을 선고했다. 만약 위 폭행치사사건을 국민참여재판이 아닌 일반 형사재판으로 진행했다면 무죄판결이 나올 수 있었을까.

변호인이 제1회 공판기일 전에 피고인과 접견하고 변론방향을 정하고 의견서를 작성할 때에 반드시 검토해보아야 하는 것이 국민참여재판이다. 심리의 중립성과 판결의 공정성 보장, 주장과 증거신청에서의 충분한 변론기회 부여, 직업법관의 타성에 젖은 판단이 아닌 일반 국민의 건전한 법상식에 기초한 판단 등의 측면에서 통상의 형사재판보다 참여재판이 피고인에게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에 관한 법률(2007. 6. 1. 제정, 2008. 1. 1. 시행, 약칭 국민참여재판법)’에 근거한 참여재판은 영미의 배심제와 독일의 참심제를 혼용한 제도로 일반 국민의 건전한 법상식과는 동떨어진 직업법관의 판결에 대한 불신, 전관예우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사법불신에서 비롯된 제도이다. 일반 국민 중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이 형사재판에 직접 참여해서 사실인정과 양형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고 법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배심원의 의견을 존중해 판결을 선고하도록 함으로써 형사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2012년 한 차례 개정을 거친 현행 국민참여재판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참여재판의 대상은 형사 제1심 합의부관할사건 및 이와 관련된 병합사건, 공범사건 등이다(법 제5조 제1항). 공소사실의 인정여부와는 무관하다. 단독관할사건이라도 ‘합의부에서 심판할 것으로 합의부가 결정하면 합의부사건이 되므로’ 참여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재정합의사건, 법원조직법제32조 제1항 제1호). 2007년 법 제정 시에는 살인죄,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결과적가중범, 강도강간 등 일부 중범죄 사건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참여재판의 대상이라도 피고인이 원하지 않으면 참여재판을 진행하지 않는다(법 제5조 제2항). 따라서 법원은 반드시 피고인의 의사를 확인하여야 한다. 피고인은 공소장부본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참여재판을 원하는지 여부에 관한 의사확인서를 제출하여야 하고, 피고인이 그 기간 내에 의사확인서를 제출하지 아니한 때에는 참여재판을 원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본다(법 제8조제1~3항). 법원이 피고인의 의사확인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피고인이 참여재판을 신청하였음에도 법원이 이에 대한 배제결정을 하지 않은 채 통상의 공판절차로 재판을 진행한 경우에는 절차적 위법으로 무효이다. 다만, 항소심에서 피고인이 1심의 절차적 위법을 문제 삼지 아니할 의사를 명백히 표시한 경우에는 하자가 치유될 수 있다(2012도1225, 2011도7106). 피고인이 참여재판의사를 밝혀 공판준비기일절차가 진행되어 종결된 경우 또는 피고인이 참여재판의사를 밝히지 않아 통상절차로 진행되어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린 경우에는 종전 의사를 번복할 수 없다(법 제8조 제4항). 위 규정의 취지상 “공소장 부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의사확인서를 제출하지 아니한 피고인도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리기 전까지는 참여재판 신청을 할 수 있고 법원은 그 의사를 확인하여 참여재판으로 진행할 수 있다(2009모1032).”

참여재판의 대상이 되고 피고인이 원하더라도 법원의 배제결정이 있으면 참여재판을 하지 않는다(법5조 제2항). 법원은, 공소제기 후부터 공판준비기일이 종결된 다음날까지, 배심원 등의 생명·신체·재산에 대한 침해의 우려가 있는 경우, 공범 중 일부 또는 성폭력범죄의 피해자가 참여재판을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 기타 참여재판이 부적절한 경우 검사 또는 변호인의 의견을 들어서 참여재판의 배제결정을 할 수 있다. 법원의 배제결정에 대해서는 즉시항고가 가능하다(법 제9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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