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서초동 법조기자실에 피자 여러 판이 배달됐다면?’

법조팀에 소속됐다가 며칠 전 다른 부서로 인사 발령이 난 기자가 보내왔을 가능성이 크다. 법조기자단에는 유래를 알 수 없는 전통이 있다. 서초동을 떠나면서 기자단에 간식을 사지 않으면 반드시 다시 서초동에 돌아온다는 것.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간식을 사고도 수년 뒤 다시 법조에 출입하는 기자도, 간식 없이 떠나고 돌아오지 않은 기자도 있다.

아마도 ‘간식 전통’은 법조계 이슈를 두고 치열한 취재 경쟁을 벌인 경쟁사 기자들에 대한 ‘격려’ 정도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이런 전통은 끊이지 않고 있다. 잔인한 업무강도와 잦은 술자리 등으로 심신을 축내기 십상인 서초동에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는 의지 덕분일 것이다.

2월에 접어들면서 많은 언론사에 인사철이 찾아왔다. 기자가 앉아 있는 서울고검 기자실에도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익숙한 얼굴이 하나 둘 떠나고 있다. 대개 신문사 인사는 편집국장 인사로 시작을 알린다. 이어 각 취재부서의 장이 정해진 이후에야 평기자들의 운명이 정해진다. 이 기간 동안 법조 출입 기자들의 술자리 대화도 뻔하다. 과연 누가 서초동을 ‘탈출’하느냐다. 물론 인사 발령은 각 회사에 ‘방’이 붙기 전까지 예측 불가다.

올해는 같은 시기 판·검사 정기 인사도 시작됐다. 2월 첫째주 법원과 검찰은 각각 차관급 대우를 받는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검사장 인사를 단행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지방법원 부장판사-평판사’, ‘검사장-고등검찰청 검사-평검사’ 순으로 이어지는 판·검사 인사는 기자 인사와 비슷한 프로세스다. 법조인을 대상으로 취재활동을 벌이는 서초동의 기자들은 판·검사 인사에 자신들 인사 못지 않게 관심이 많다. 매일같이 인사를 담당하는 법원행정처와 법무부 관계자에게 인사 발표 날짜를 묻는다. 또 어느 자리에 어떤 판·검사가 발령날지를 두고 나름의 ‘하마평’을 주고받기도 한다.

판·검사 인사는 기자들뿐 아니라 재야 변호사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인 모양이다. “조 기자, 이번 고등 부장 인사가 어찌 된다고들 하나?” “검사장은 몇 명이 승진한대?” 최근 취재를 위해 또는 개인적으로 통화를 한 변호사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들은 경우가 부쩍 많다. 실제 인사 관련 소문을 듣거나 인사 내역이 공표되면 곧바로 알려줄 것을 부탁하는 분들도 있다.

기자는 몇몇 변호사들에게 법원과 검찰 인사에 유독 관심을 갖는 이유가 뭔지 물었다. 친한 사람들의 인사이동이 궁금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판·검사들 가운데 사법연수원 동기, 고교·대학 동문, 동향 출신자가 어디로 발령났는지를 재빨리 확인하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승진자들에게 축하를 전하거나 새로운 임지로 첫 출근하는 날에 맞춰 화분을 선물하는 등을 인사치레를 제때 하기 위해 인사 동향을 남들보다 먼저 알아 나쁠 게 없다는 것이다. 특히 법원·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들은 옛 직장 동료들의 일인지라 관심도가 더 높았다.

다른 이유는 사건과 관련된 것이었다. 자신이 맡은 사건의 수사나 재판을 누가 맡게 될지 궁금해서라고 한다. 인사이동으로 수사를 맡은 검사, 재판을 맡은 재판부 변동에 따라 사건의 유·불리 등을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자신이 맡은 사건에 관심을 쏟는 변호사라면 법원과 검찰 인사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판·검사 인사철을 대하는 변호사들의 모습은 기자들과 상당히 닮아있다. 기자들도 취재 활동 과정에서 자신들이 알고 지낸 판·검사들이 어디에 자리잡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크다. 결국 판·검사 인사를 바라보는 변호사든 기자든 그 관심의 배경은 인지상정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건 추이와 관련해 법조 공무원 인사를 기다린다는 변호사들의 이야기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변호사가 자신이 맡은 사건의 절차나 결론에 있어서 우호적인 판단을 해줄 사람이 오길 바라는 건 당연한 기대감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사 결과가 기대에 맞춰 나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법원·검찰 인사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 것은 수사와 재판 과정의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뿌리깊은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의 인사시즌이다.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내는 게 마땅하다. 다만 법조 공무원의 인사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공정한 결론이 나온다는 믿음이 변호사들 마음에 자리잡을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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