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해두자. ‘서민을 위한 법률 서비스 문턱을 낮추자’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도입취지는 옳다. 소수의 사법시험 출신들의 자각과 봉사정신만으로는 ‘법에 의한 해결’을 간절히 바라는 절대 다수의 서민들의 마음에 다가가기 어렵다. 사시라는, 최고 난이도 시험의 문턱을 넘어선 법조인들이 합격까지의 기회비용을 생각하기 때문에 엉덩이가 무거운지는 각자 자문해 볼 일이지만, 현실에 기반한 반성적 성찰로 도입된 로스쿨의 취지까지 전면적으로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 또한 있다. 좋은 취지에도 불과하고, 로스쿨 시행을 둘러싼 정치권의 질 낮은 고민과 성급한 시행은 한국 법조시장의 특성과 현실을 간과했다. 순수학문으로서의 법학을 무시했고, 예비시험 제도 등을 통해 최소한의 ‘계층 이동의 사다리’마저 걷어 차 버렸다. 제도의 흥행을 위해 시장의 수급 상황을 기형적으로 만든 과오도 지적 받아 마땅하다. 퇴로도 없이 진격만을 외친 로스쿨 제도는 현 시점에선 사법시험의 장점만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대한변호사협회 선거 시즌이 끝났다. 후보 모두 충분한 자격과 덕망을 갖추신 분들이었고, 당선된 분들, 아쉽게 다음을 기약하는 분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당선자들이 산적한 난제를 무난히 해결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또 다시 분명한 아쉬움 하나. 당선이 모든 미덕을 덮는 선거의 속성을 고려하더라도, 대부분의 후보들이 ‘사시존치’라는 당선에 용이한 공약을 내세우면서도, 현실의 로스쿨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선거전의 국면들 속에 기자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시점에서 로스쿨을 보듬었는지 알 수 없지만, 선거의 큰 틀에서 로스쿨이 소비된 방식은 ‘소외’ 내지는 ‘무시’였다.

변협의 어엿한 회원인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 그리고 현재의 로스쿨생이자 잠재적 변협의 회원들인 그들 중엔 사시를 통한 법조인을 꿈꿨던 자들도 많다. 그러나 성급한 로스쿨 제도의 물살 속에 사시라는 선택지를 반강제적으로 접은 이들이 홀대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수의 기사들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의무 연수가 형식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졌음에도, ‘사시존치’ 주장과 함께 변호사 연수 실효성 강화라는 방안은 왜 작게 다뤄졌을까.

로스쿨 제도의 잘못된 시행과 운영을 로스쿨 출신들의 전체 실패로 바라보려는 안이하고 무성의한 문제 의식. ‘사시존치’를 주장하려면 로스쿨 문제는 의도적으로 깎아내려야 한다는 무언의 선민의식. 아직은 법조시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시 출신의 선배 법조인들의 내면에 로스쿨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반문을 해봐야 한다. 법조인 구성과 선발 방식과 별개로, 현실에 존재하는 동업자로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처우와 그들의 발전은 현재 법조계의 위상과 닿아있다. ‘사시존치’라는 대명제에 함몰돼 주변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당선자들과 선배 법조인들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지난 2년 동안, 위철환 협회장과 집행부들은 사시존치를 위해 수많은 토론회와 공론화 작업을 거쳤다. 물론 반작용으로 로스쿨협의회와 로스쿨생들의 반발 성명과 단체 행동이 이어졌지만, 어느 때보다 내실 있는 변화와 고민이 이어졌다고 평가한다. 법률가 출신의 국회의원 및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과의 소통 노력도 이제 가속의 단계로 넘어가는 듯 보인다. 미적하고 비효율적인 여의도 정치를 고려할 때, 당장 사시존치의 결과물을 얻어내긴 힘들겠지만,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측면에서 사시존치는 분명 성과를 이룰 것이다.

그 성과의 시점에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제도의 틀 속에서 법조인이 된 그들은 서민들 가까이에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며 웃고 있을까, 시절을 한탄하며 분노하고 있을까.

유치원 운동회에서 줄다리기를 하다 발목이 부러진 어머니의 부족한 지갑을 생각해 “교통비 정도만 벌어도 어디야…”라고 말하는 변호사. 생전 가보지 않았던 경찰서 문턱에서 전화로 법률적 도움을 요청한 아저씨를 위해, 쉬는 날 슬리퍼를 신고 달려가는 변호사. 그 고마움을 돈으로 받지 않고 허름한 지갑 하나 바꾸는 것에 만족하는 변호사. 일산의 고급진 연수원 출신이 아닌 지방의 로스쿨 출신이라도, 어쩌면 이라서, 그들은 서민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제도는 제도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새 변협 집행부의 현명한 접근으로, 법조계의 미래와 현재를 모두 보듬는 날들이 되길 바란다. 로스쿨 출신들은 죄가 없다. 현실의 동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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