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초 프랑스 시사만평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본사에 무장한 지하드 전사들이 난입하여 저지른 끔찍한 테러사건이 전세계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미망(迷妄)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나는 샤를리다”라는 분노의 구호와 대대적인 동조 시위가 많은 문명권에 공명하고 있지만, 이에 맞서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는 외침 또한 점차 힘을 얻고 있다. 테러를 촉발하였던 만평들을 볼테르 이래 이어져온 톨레랑스의 정신이 포용하는 풍자 정도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악의적인 조롱과 모욕에 기댄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할 것인지 그 상대적 한계선상에서 시각이 갈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샤를리 에브도의 전신이 일본어로 할복자살을 의미하는 ‘하라키리(Hara-kiri; 腹切リ)’였다고 하니 그 씨니컬하고 매조키스트적이기까지 한 사명(社名)이 훗날의 비극적 사태를 이미 예견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풍자화가를 넘어서 현대 미술을 연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시인 보들레르가 찬사를 보냈던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1808∼1879). 그는 1831년 시사주간지 ‘라 카리카튀르(La Caricature)’의 만평가로서 당시 국왕 루이 필립(Louis Philippe)을 가르강튀아(Gargantua)에 빗대어 풍자화를 게재하였다. 가르강튀아는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소설가 라블레(Rabelais)가 창조한 거인 캐릭터로서, 도미에는 국왕을 백성에게서 쥐어짠 재화를 거침없이 빨아들여 뒤로는 온갖 훈장이나 이권 따위로 배설하는 거인 왕으로 묘사하였던 것이다(참고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행성계 중심의 거대한 블랙홀을 가르강튀아라고 칭한다).

루이 필립은 1830년 7월 혁명 이후 부르봉왕가의 반동을 극복하고 즉위해 언론·출판 자유를 대폭 완화하는 등 비권위적인 ‘시민의 왕’으로서 면모를 보였음에도 위 만평은 그의 인내를 넘어섰다. 주간지는 정간되고 도미에는 6개월의 징역을 살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도미에는 새로이 창간된 ‘르 샤리바리(Le Charivari)’지를 통해 신랄한 만평 게재를 멈추지 않았는데 이윽고 그 대상이 정치권에서 법조계 쪽으로 옮겨가게 된다.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계 신사들(Les Gens de Justice)’을 싸잡아서 부패하고 부도덕적이며 탐욕스런 부류로 매도하고 희화화한 일련의 ‘사법풍자화’가 그것이다.
도미에에게 있어서 판결을 선고하는 판사, 그는 “사람 잡아먹는 귀신이요 사람의 얼굴을 한 이리요 식인종”이고, 변호사들의 사회는 “우쭐함과 수다스러움과 직업적인 냉소주의로 충만”되어 있으며, “승려풍의 얼굴 표정, 하늘을 쳐다보는 눈, 가슴에 손을 얹고 확신에 찬 음흉한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있는 모습”은 검사의 상으로 비추어진다. 그리고 변호사끼리의 동료의식이라는 것은 “지극히 얄팍한, 부서지기 쉬운 지반에 세워진 따뜻한 우정의 모든 표시를 의미하는데, 그 지반 밑에는 적의에 찬 지옥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20세기 가장 뛰어난 법사상가로 꼽히는 구스타프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 1878∼1949)는 그의 저서 ‘사법풍자화: 오노레 도미에의 석판화(石版畵)’를 통해 도모에의 예술세계에 접근한 바 있다(최종고 교수의 번역으로 국내에도 소개되어 있다). “법은 예술을 이용할 수 있고, 예술은 법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다. 라드브루흐에 의하면 도미에는 프랑스 인상파(印象派)의 선구자로서 그의 그림은 대상에 대한 강렬한 관심으로 조형적인 입체로써 표현되어 있다. 도미에의 풍자화가 가진 초시대성(超時代性)은 그가 선택한 법조인들의 유형적 성격에 가해진 철저한 묘출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규범적 이념(Normalidee)의 평균적 형상화를 벗어남에 풍자의 본질에 있다는 칸트의 지적을 수용하다면, ‘유산계급의 부지런한 가정부’라는 법조인들에 대한 도미에의 조롱섞인 비판은 궁극적으로는 “법률 위에 자리하는 정의(正義), 아니 정의 위에 자리하는 사랑에의 절규”이다.

이제 내년이면 사거 500주년을 맞는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 ‘헨리 6세’를 통해 “우리가 제일 먼저 하여야 할 일은 모든 법률가들(Lawyers)을 죽여 없애는 것”이라고 일갈하였었다. 그 오랜 세월동안 법률가들은 왜 그토록이나 증오와 경멸, 그리고 경원의 대상이 되어 왔을까? 과연 법조인들을 향하여 사랑을 간구하는 절규를 외친다는 것은 풍자나 해학의 방도로 밖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일까?

새해 벽두에 몰아친 비극적 테러사건을 다시 돌아보면서 도미에가 오래전 법률가들의 세상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길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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