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또는 고객의 심사를 그르치지 않는 초스피드 서비스를 너무나 당연시하게 된 우리는 여기저기서 그야말로 왕노릇을 하곤 한다. 절대로 새로운 현상은 아니었으나 땅콩회항 사건에서 사회의 수면 위로 급부상하여 폭발한 ‘갑질’ 행태를 오늘도 누군가 어느 음식점 종업원에게 어느 금융기관 창구 직원에게 저지르고 있을터이다.

필자에게도 통신서비스 관련하여 대기업이니 일응 즉각적인 최상의 서비스를 추정하여 이에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직원 면전이나 전화 너머로 질책했던 감추고 싶은 기억이 있다. 재판하면서 판결 등 사건의 해결과 법정언행 등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또 다른 정신노동자의 감정을 철저하게 건드림으로써 해소하거나 보상받으려던 무의식을 가장한 부끄러운 행동인 걸 바로 그때는 깨닫기 힘들었다. 고객이라면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거니까?

책임자나 대표자에게 직접 짜증을 내고 욕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게 아니라면, 현장 최전선에 있는 직원에게 화를 내거나 트집을 잡거나 떼를 쓴들 서비스의 궁국적인 개선에 얼마나 의미가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서비스 수혜자 일방의 나르시스적인 오만이나 착각에 다름 아님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릴 일도 아니다.

을 또는 제3자가 갑을 비판한답시고 헐뜯고 공격하면서도 막상 갑이 되면, 이상하리만큼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하고 아무런 학습효과나 배려와 같은 예의 없이 무자비한 갑으로 탈바꿈하여 을에게 과잉서비스를 거리낌 없이 요구하는 이중잣대는 결코 낯설지 않다.

우리는 빛의 속도로 설치, 운영, 보수되는 ICT를 필두로 당연시하는 과잉서비스에 너무나 익숙하여 급기야 공공서비스에까지 ‘국민의 이름으로’ 표준적이고 객관적인 것을 넘어 우호적이고 후견적인 서비스를 무상 또는 헐값에 요구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 밖에 나가서 민간이든 국가기관이든 복창 터지게 느린 서비스를 경험해봐야 급한 성미를 누르고 적정한 서비스에 관하여 진지한 고민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무원이 공복이라 하여 국민과 갑을관계라 칭할 수도 없건만, 재판을 위해 청송(聽訟)하다보면 법원 구성원은 당사자인 국민과 주종관계임을 애써 일깨워주는 목소리가 법정에서도 간혹 들리곤 한다. 재판장의 소송지휘가 당사자의 예상이나 계획대로 안 맞는 경우에 일차적으로 나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을과 같이 열후하고 위축되기 마련인 위치에서는 창의적인 서비스가 나오기 어렵고 갑마저 기대하지 않았던 과잉서비스를 낳기 마련이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전례 없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불만을 불식시키고 편견이나 오해를 풀기 위해 법원이 최근 몇년간 종래의 수세적인 입장을 버리고 수요자인 국민에게 다가가 눈높이나 입맛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 제공하려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제도 내용과 도입 시점 등에 비추어 그 연속상에 있는 것인지 속단하기 어려우나, 금년부터 법정녹음에 의한 변론기록방안의 전격적인 실시로 법원 일선 재판부에서는 몸살끼가 좀 느껴진다. 법정녹음의 필요성으로 주창되었던 증인신문조서 작성의 부담 경감은 변론조서의 일부로 삼을 수 없어 증거도 아닌 속기사의 말한 그대로를 적는 녹취서 작성으로 퇴색된 나머지 진술의 주요한 사항만을 정서하는 방식으로 후퇴한 상태이고, 투명화를 통한 민원 등에 대한 사전 억지력 역시 미지수이다.

필자는 벌써 7년 전인 2008년 미국에서 연수하던 로스쿨의 학외연수(externship, 로스쿨생 인턴과 유사) 과정의 일환으로 봄학기 뉴욕남부 연방파산법원에서 재판기일마다 판사 아래 로클럭과 나란히 앉아 전자소송에 해당하는 e-파일링은 물론 법정에서의 모든 구술이 녹음되어 자동으로 문자 변환되는 시스템이 작동되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당사자의 신청이 있으면, 조서와 심지어 판사의 구두 결정까지 해당 스크립트 출력으로써 충분하였다.

사투리나 높임말이 발달한 한국말조차도 구글, 에버노트 등에서의 정확률이 70%를 상회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우리 법원 역시 계속적인 연구검토로 상당한 기술적 수준에 도달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예와 같이 기술적 지원이 미처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법정녹음이 도입된 아쉬움이 크지만 결국 돌아갈지언정 지향점은 같을 것이다.

입춘도 지나가고, 겨울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펼 때 즈음하여 우리는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고 새로 맞아들이며 진정한 2015년 새 시즌의 본 경기에 들어간다. 인간이기에 가능한, 사람 중심의 소통과 배려가 넘쳐나지만 과잉은 아닌 법조가 국민 가슴에 자리매김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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