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법률용어 비교
지난 가을학기에 ‘비교법’, ‘일본법’, ‘EU법’, ‘국제민사소송법’ 등을 수강하면서 세계 속에서 한국법이 갖는 의미라던가 향후 한국 법조의 세계화를 생각하였습니다.

사법연수원 시절 중국법을 공부하고 입사 이후에도 중국회사와 계약 협상을 위해 수차례 중국을 다녀오면서 한국과 중국은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법률용어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계약(契約)을 허통(合同)으로, 회사(會社)를 꽁쓰(公司)로, 주식(株式)을 꾸펀(股份)으로 하는 등 다른 부분도 상당히 존재하지만, 다른 문자를 사용하는 영미나 유럽보다는 쉽게 친숙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와서 원문으로 일본 법률을 읽으니 일본법이 중국법보다 훨씬 더 한국법과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하였고, 같은 한자 문화권인 한중일 법률 용어를 비교하거나 통일화하면 매우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단 한중일의 단순한 비교법 공부를 넘어서 한중일 경제 공동체 형성이나 한반도 통일을 예상한 한중일 통일법규 등을 만들 수 있다면 한중일 간에 상호 교류가 보다 활발해지고 동아시아 중심의 세계화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한중일 법률용어의 통일과 통일 계약법
2년 전 제가 속해 있던 회사와 일본기업이 계약을 체결할 때, 서울과 동경을 오가며 협상에 참여하고 영어로 계약서를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준거법을 한국법으로 할지 일본법으로 할지를 논의하다가 일본 민법을 공부하게 되었고, 한국과 일본의 민법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협상 결과 일본법을 준거법으로 하고 영어로 계약서를 작성하였는데, 통상적인 영문계약서 샘플로 계약서 협상을 하다 보니 영문 용어가 일본법 용어에 확실히 맞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실제 한국과 일본의 법률은 매우 유사하므로 같은 한자 법률용어로 쓰면 간단히 이해될 수 있을 텐데, 이를 영미법에서 주로 사용하는 법률용어로 계약서를 작성하다 보니 오히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다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5년 전 중국 회사를 인수할 때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마도 아직까지 한중일 상호간에 통일된 영문 법률용어가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한일 민법 모두 취소(取消), 철회(撤回), 해제(解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를 영문으로 표기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한국 법제처 영문법령정보에 따르면 민법상 ‘취소’는 ‘voidance’ 또는 ‘cancellation’이라고 혼용하고 있는데 반해, 일본 법무성의 영문법령사이트인 ‘Japanese Law Translation’에서는 ‘rescission’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철회’를 한국에서는 ‘withdrawal’, 일본에서는 ‘revocation’이라고 달리 표현합니다. 또한 한국 민법에서는 해제(解除)를 ‘rescission’으로, 해지(解止)는 ‘rescission for future’라고 표현하는데, 일본 민법에서는 해제만 존재하고 해지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으면서 해제를 ‘cancellation’이라고 표현하므로 우리 민법상 취소로 혼동될 수 있습니다. 중국 계약법(合同法)에서도 해제(解除)라는 용어만 사용하는데 한국, 일본과 다르게 이를 ‘termination’이라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위 법률 용어 이외에 같은 한자 용어라 할지라도 한중일 3국이 영문 용어를 다르게 사용하여 혼동을 주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중일 사이에 영어나 한자로 합의된 법률용어와 표준화된 영문 계약서가 존재하고, 한중일 통일 계약법 등과 같은 통일된 법률이 있다면 한중일 무역 거래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중일 상호간의 무역 규모나 상호 의존성을 고려할 때 한중일 통일법이나 법률용어의 통일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영준 변호사님께서 추진하시는 아시아 통일 계약법에 대한 논의도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언젠가 한중일 무역 장벽이 사라지고 경제 통합이 현실화되면, 반드시 법률이나 법률용어의 통일 논의도 수반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 법조인들의 역할도 커지고 중국이나 일본과 관련된 업무도 늘어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 법조의 세계화는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을 시발점으로 해서 점차 아세안, 중동, 유럽까지 확대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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