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두18964판결

1. 사안의 개요
가. 한국전력공사는 2010. 2. 12. 대한전선 주식회사가 ‘1999. 3. 15.부터 2006. 10. 31.까지 한국전력공사가 실시한 광섬유복합가공지선 구매입찰에서 주식회사 LS 등 3개 업체와 담합행위를 하였다(이하 ‘1차 위반행위’라 한다)’는 이유로 공기업·준정부기관 계약사무규칙 제15조 제1항 등 관련 법령에 따라 2010. 2. 16.부터 2010. 8. 15.까지 6개월의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이하 ‘제1차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나. 한국전력공사는 2012. 11. 30. 대한전선 주식회사가 제1차 처분이 있기 이전인 ‘1998. 8. 18.부터 2008. 9. 1.까지 피고가 실시한 전력선 구매입찰에서 LS 등 33개 업체와 담합행위를 하였다(이하 ‘2차 위반행위’라 한다)’는 이유로 공기업·준정부기관 계약사무규칙 제15조 제1항 등 관련 법령에 따라 2012. 12. 11.부터 2013. 6. 10. 까지 다시 6개월의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이하 ‘제2차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2. 원고의 주장 요지
관련 법령에서 수개의 위반행위에 대하여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할 때에는 그 중 무거운 제한기준에 의하도록 하고 있는바, 2차 위반행위는 제1차 처분이 있기 전에 행하여진 것이어서 1차 위반행위와 2차 위반행위에 대하여 하나의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취급되어야 하고, 1차 위반행위와 2차 위반행위는 같은 유형의 위반행위로서 제한기준이 같으므로 위와 같은 법령상 2차 위반행위에 대하여는 따로 입찰참가제한처분을 할 수 없다.

3. 원심 판결의 요지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이 있은 이후 그 처분이 있기 이전에 또 다른 위반행위가 있었음이 새롭게 밝혀진 경우 공기업·준정부기관이 그 처분 당시에 그러한 사정을 알거나 알았을 수 있었는지에 관계없이 그 위반 행위 전부에 대하여 하나의 입찰참가제한처분을 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이라 한다) 시행규칙 제76조 제1항과 제3항을 적용하여 그 중 가장 무거운 제한기준에 의하여야 한다고 봄이 옳다. 따라서 종전 위반행위와 새롭게 밝혀진 위반행위에 대한 제한기준을 비교하여 새롭게 밝혀진 위반행위에 대한 제한기준이 종전 위반행위에 대하여 행하여진 입찰참가자격제한의 기간보다 길다면 그 초과된 기간에 한하여 새롭게 밝혀진 위반행위에 대하여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할 수 있을 것이나, 이와 반대로 새롭게 밝혀진 위반행위에 대한 제한기준이 종전 위반행위에 대한 입찰참가자격제한의 기간보다 짧거나 같은 경우에는 여러 위반행위 중 가장 무거운 제한기준에 의하여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그에 대하여는 다시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4. 대법원 판결의 요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39조 제2항, 제3항에 따라 입찰참가자격 제한기준을 정하고 있는 구 계약사무규칙 제15조 제2항,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6조 제1항 [별표 2], 제3항 등은 비록 부령의 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그 규정의 성질과 내용이 공기업·준정부기관(이하 ‘행정청’이라 한다)이 행하는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에 관한 행정청 내부의 재량준칙을 정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여 대외적으로 국민이나 법원을 기속하는 효력이 없으므로,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이 적법한지 여부는 이러한 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적합한지 여부만에 따라 판단할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상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에 관한 규정과 그 취지에 적합한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다만 그 재량준칙이 정한 바에 따라 되풀이 시행되어 행정관행이 이루어지게 되면 평등의 원칙이나 신뢰보호의 원칙에 따라 행정청은 상대방에 대한 관계에서 그 규칙에 따라야 할 자기구속을 받게 되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에 반하는 처분은 평등의 원칙이나 신뢰보호의 원칙에 어긋나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한 처분이 된다.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6조 제3항은 수 개의 위반행위에 대하여 그 중 가장 무거운 제한기준에 의하여 제재처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는 가장 중한 위반행위에 대한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만으로도 입법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취지로 보이며, 또한 행정청이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할 때 그 전에 발생한 수개의 위반행위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 여부를 구별하여 적용기준을 달리 정하고 있지도 아니하다. 나아가 수개의 위반행위에 대하여 한번에 제재처분을 받을 경우와의 형평성 등을 아울러 고려하면, 위 제76조 제3항은 행정청이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한 후 그 처분 전의 위반행위를 알게 되어 다시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하는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제2차 처분에 관하여도 이 사건 규칙조항이 적용된다고 보아야 하고, 제1차 처분의 사유인 1차 위반행위와 이 사건 처분의 사유인 2차 위반행위의 제한기준이 동일할 뿐더러, 행정청은 1차 처분에서 입찰참가자격 제한기준상 제재기간을 감경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처분함으로써 추가로 제재할 여지가 없는 상황이므로, 행정청 내부의 사무처리기준상 제1차 처분 전의 위반행위인 2차 위반행위에 대하여는 더 이상 제재할수 없다고 할 것이고, 기록을 살펴보아도 이와 달리 추가적 제재를 정당화할 특별한 사정도 보이지 아니한다. 결국 이 사건 처분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서 위법하다.

5. 대상판결의 평석
가.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6조 제3항의 법적성격 : 공기업·준정부기관과 계약상대자에게 입찰참가제한처분을 부과할 때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6조 제3항을 근거규정으로 제시한다. 국가계약법 시행규칙(기획재정부령)과 같은 행정규칙은 행정조직 내부에서 행정의 사무처리기준으로 제정된 일반적 추상적 규범을 말한다.

이러한 행정규칙이 행정조직 외부에서도 구속력을 갖는지에 대하여 판례는 이른바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행정규칙의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재량준칙은 일정한 경우에 대외적 구속력이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재량준칙은 재량권 행사의 기준을 정하는 행정규칙이다. 재량준칙은 국민에게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고 행정의 일관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이용되며 국민에게 재량권행사의 기준을 미리 알려주는 기능도 갖고 있다.

재량준칙은 법규명령과는 달리 행정권 행사의 일반적 기준 내지 방침을 정할 뿐이며 그 자체로는 국민에게 직접적인 법률효과를 미치지 아니한다. 다만 헌법상 평등의 원칙(제10조), 자기구속의 원리을 매개로 하여 간접적으로 대외적인 구속력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 다수의 견해이다. 재량준칙은 그 자체가 직접 대외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재량준칙에 따라 동일한 내용의 처분이 반복된 경우에 특별한 사유 없이 특정한 자이게 재량준칙을 적용하지 아니하고 재량준칙의 내용과 다른 처분을 한다면 이는 평등의 원칙에 반하여 위법한 처분이 된다.

판례도 일정한 경우에 한하여 재량준칙이 대외적 구속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대상판결에서도 인용하고 있는 대법원 2013. 11. 14. 선고 2011두28783 판결도 “‘구 부당한 공동행위 자진신고자 등에 대한 시정조치 등 감면제도 운영고시’ 제16조 제1항, 제2항은 그 형식 및 내용에 비추어 재량권 행사의 기준으로 마련된 행정청 내부의 사무처리준칙 즉 재량준칙이라 할 것이고, 이러한 재량준칙은 일반적으로 행정조직 내부에서만 효력을 가질 뿐 대외적인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므로 행정처분이 이를 위반하였다고 하여 그러한 사정만으로 곧바로 위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고, 다만 그 재량준칙이 정한 바에 따라 되풀이 시행되어 행정관행이 이루어지게 되면 평등의 원칙이나 신뢰보호의 원칙에 따라 행정기관은 상대방에 대한 관계에서 그 규칙에 따라야 할 자기구속을 받게 되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에 반하는 처분은 평등의 원칙이나 신뢰보호의 원칙에 어긋나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한 처분이 된다”고 판시하였다.

대상판결에서도 역시 기존의 법리에 따라 행정규칙인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6조 제3항은 재량준칙으로 원칙적으로 처분의 상대방에 대하여 구속력을 미치지 아니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재량준칙이라 할지라도 상당기간 되풀이 시행되어 일정한 행정관행이 형성되면 평등의 원칙, 신뢰보호의 원칙상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행정청은 처분의 상대방에 대한 관계에서 규칙을 따라야 한다. 상대방도 재량준칙에 따른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신뢰는 법적으로 보호받을만한 가치를 지닌다 할 것이다.

나. 대상판결의 의의 :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소정의 위반행위가 적발되어 이미 일정기간의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이 부과된 상태에서 이후 그 처분이 있기 이전에 또 다른 위반행위가 새롭게 밝혀진 경우, 이를 이유로 새로운 처분을 부과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관하여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과거 기획재정부는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6조 제3항은 중앙관서의 장이 부정당업자의 수개 위반행위가 2 이상의 입찰참가자격 제한사유에 해당함을 인지한 경우라면 그 중 제한기간이 긴 하나의 제한처분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각각의 제한사유에 대하여 개별적 또는 순차적으로 제한처분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다만, 중앙관서의 장이 2 이상의 제한사유가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같은 시기에 발생한 위반행위에 대하여 각각 제재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며, 이러한 경우 제한사유에 해당함을 인지하는 즉시 제한처분을 하여야 할 것”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려 제한사유에 대한 처분청의 ‘인지시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처분 유무가 대외적으로 명확히 알기 어려운 행정청의 주관적 인식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어서 행정법관계의 법적 안정성이 현저히 침해될 위험이 있고, 종전 처분 당시에 행정청이 다른 위반행위의 존재를 밝혀내지 못하였던 책임을 부정당업자에게 전가시키는 셈이 되어 부당하다고 할 것이다.

대상판결에서도 단순히 행정청이 종전 처분 이전에 위반행위를 인지하고 있는지 여부에 새로운 처분을 부과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기존의 기획재정부 유권해석도 판결의 취지에 따라 변경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처분 이후 새롭게 밝혀진 위반행위에 대한 제한기준 상의 제한기간이 종전 처분에 의한 제한기간보다 길다면 그 초과된 부분에 한하여 다시 제한처분을 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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