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명문사립대 출신, 외국계 기업 근무, 11억원 상당의 서울 강남 아파트 거주.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서초 세 모녀 살인사건’의 피의자인 강모씨(48)의 스펙은 화려했다. 그만큼 사회에 주는 충격도 컸다. 투자 실패로 인한 약간의 금전적 어려움이 있었지만 당장 먹고 살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부인과 두딸의 목숨을 자신이 앗아버리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경찰에 붙잡힌 그는 자세한 해명을 하지 않은 채 “죽여달라”고 재차 말했다고 한다.

가부장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왜곡된 가치관이 부른 사고라는 전문가들의 해석이 많았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기존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해 두려움을 느낀 것 같다”며 “자신이 목숨을 끊을 경우 남은 가족들이 떠안게 될 부담이 걱정돼 함께 죽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가장으로서 책임지지 못 할 바에야 아예 함께 저세상에 가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 자식들의 목숨에 대한 결정권까지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가. 자식을 가장의 소유물로 보는 왜곡된 동양적 사고방식이 작용한 참사라고 볼 수밖에는 없었다.

문제는 우리 법에도 이같은 인식이 내재돼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부모를 죽이면 ‘존속살해죄’를 적용, 일반적인 살인죄보다 중하게 다스린다.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더라도 중벌을 피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몇년 전 ‘전국 1등’을 강요하며 체벌과 폭행을 이어온 자신의 모친을 살해하고 8개월 간 방치했다가 적발된 고등학생 지모군 사건 당시에도 선처를 바란다는 탄원이 잇따랐으나 재판에서는 실형을 면치 못했다.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에게 손을 대는 것은 심각한 패륜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탓이다.

2013년 헌법재판소는 존속살해죄를 가중처벌하는 것에 대해 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헌법에 위배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당시 헌재는 “행위자인 비속의 패륜성에 비추어 고도의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라고 합헌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다르다. 강씨처럼 자식 등 직계비속을 살해한 경우에는 가중처벌을 할 수 있는 조항이 없어 일반 살인죄가 적용된다. 세명을 한꺼번에 살해한 데 대한 가중 처벌 여부만 고려 대상일 뿐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부모에 대한 공경은 의무로 생각하면서 자녀 훈육에 대해서는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인식이 있다”며 “이같은 법 체계가 상식적 틀을 벗어난 자녀 대상 범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수년째 끔찍한 비속을 상대로 한 폭행·상해를 비롯해 살해 범죄가 줄지어 발생했지만 아직까지 법 개정 움직임은 크게 없는 상태다. 일각에서는 “아이들이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라는 비아냥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약자에 대해 불리한 법 체계는 다른 분야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동물을 상대로 한 범죄가 대표적이다. 동물을 하나의 생명체라기보다는 일종의 개인 소유물로 보는 시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민법에서도 동물의 지위는 일반적인 사물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인식 탓에 실제 동물에 대한 상해나 학대, 살해 범죄가 있더라도 처벌은 미약한 수준이다. 수사를 받더라도 기소유예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벌금형 이상을 받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최근 ‘포항 백구 폭행 사건’만 봐도 동물 상대 범죄의 폭력성은 인간을 상대로 한 범죄 못지 않게 심각하다. 한 50대 화물차 기사가 사는 곳 인근 사찰에 사는 진돗개가 짖는다는 이유로 사정없이 쇠파이프를 휘둘러 머리뼈를 골절시키고 한쪽 눈을 실명시키는 등 전치 12주의 상해를 입힌 사건이었다. 검찰은 이 학대 사범에게 동물보호법 위반뿐 아니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그나마 이례적으로 재판에 넘기긴 했지만, 이마저 재판에서 벌금형 이상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어쨌거나 동물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은 소외된 약자를 지켜주어야 하지, 약자를 더욱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 가까이 있는 아동과 동물을 상대로 한 잔혹한 범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아동과 동물을 ‘소유물’이 아닌 독립적인 ‘생명’으로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을 정착시키기 위해 법 개정을 비롯한 사회적 검토가 필요하다. ‘세 모녀 살해 사건’이나 ‘백구 폭행 사건’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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