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신문의 편집인이 되어 본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이제 그 끝이 보인다. 하창우 변호사가 제48대 대한변협 협회장으로 당선되었으니, 새로운 집행부가 꾸려질 것이고, 당연히 새로운 공보이사 겸 신문편집인이 정해질 것이다. 따라서 나의 이 편지가 편집인으로서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솔직히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 마지막 편지를 무엇으로 채울까 하다가 편집인으로 있으면서 가슴 한켠에 숨겨두었던 나의 작은 소망을 적어본다.

어느 임원들이나 시행착오가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뭔가 좀 알겠다는 느낌이 드니 1년이 후딱 지났다. 그때쯤 내가 생각한 것은 다른 사람들은 신경을 쓰지 않지만 한 발짝 물러나서 보면 중요한 협회의 회무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1952년에 창립된 변협의 역사, 그 역사를 만든 선배 변호사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그런 사명감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니다. 협회와 법조의 역사에 관한 많은 글을 남긴 김이조 변호사(1927년생, 고등고시 3회) 덕분이다. 이유가 하나 더 있다면 변호사단체는 역사와 자료를 소중히 여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협회에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이조 변호사님은 지금까지 20권이 넘는 변협의 역사, 법조인에 대한 글을 썼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간혹 나를 채근하고, 자료를 요구하신다. 그런데 솔직히 그분을 제외하고는 별로 변호사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약간의 오기도 생겼다.

그래서 나름대로 조금은 신경을 썼다. 그렇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재미난 것은 원로 변호사님들은 자기 시대를 기억하는 나의 글을 읽고, 전화를 주신다는 것이다.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기억이다. 막상 임기의 끝에 서니 관심만 가졌을 뿐이지 별로 한 일이 없다는 후회도 든다.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협회의 숨은 역사’ 연재이다. 오랫동안 자료를 찾아 연재하고 싶은데 앞날을 어찌 알겠는가.

이러한 관심과 아쉬움에서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본 꿈이 대한변협이 100년이 되는 해인 2052년경에 발행될 ‘대한변협100년사’의 준비위원장이 되는 것이다. 한참 후의 일이다. 대한변협은 1952년 8월에 창립되어 법무부 인가를 받았고, 2002년 8월 50주년을 기념하였다. 그때 기념 책자가 발간되었고, 그 준비를 위하여 ‘변협50년사발간위원회’가 발족했다. 그 조직의 위원장이 바로 내가 부러워하는 최광률 변호사님(1936년생, 고등고시 10회)이다. 아직 찾아뵙지 못했다. 이 위원회는 그 2년 전인 2000년 8월에 구성되어 총 26차례의 회의를 가졌고, 그 회의와 집필의 결과가 바로 ‘대한변협50년사’이다.

위 전례에 따른다면 ‘대한변협100년사’의 편찬은 아마 그 2년 전인 2050년경에 준비를 할 것이다. 앞으로 35년 남았고, 그때 내 나이 여든이 훌쩍 넘는다. 그 나이에 김이조 변호사님처럼 건강하고, 전문가로 인정을 받아 최광률 변호사님의 자리를 물려받는다면 무슨 홍복이겠는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꿈이다.

이런 엉뚱한 소원을 편집인의 마지막 편지에 공개적으로 밝히는 이유는 우선, 협회에 남아있는 역사자료가 너무 부족하고, 많이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협회가 조직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보존하지 않으면 많은 소중한 역사가 잊혀질 것 같은 절박함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협회의 사정은 솔직히 한가롭게 ‘협회의 역사’ 운운하면서 우아한 협회활동을 할 상황은 아니다. 젊은 변호사들은 죽겠다고 협회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고, 다른 직역들은 틈만 나면 변호사의 직역을 침범하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쉽게 말해 변호사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그래도 누군가는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소망을 밝히는 좀 더 본질적인 이유는 변협의 역사를 소중히 하는 것은 변호사의 자긍심과 관련이 되기 때문이다. 원래 자존심과 자긍심은 가난한 선비들의 필수품이다. 부자들은 자존심이 없어도 된다. 품안에 돈이 많으니 말이다. 이제 부자가 되기 쉽지 않은 변호사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우리는 나름 자랑스러운 변호사’라는 자존감이다. 이것마저 우리가 잃어버린다면 정말로 변호사의 미래는 서글퍼진다. 그래서 나는 변협의 역사가 100년이 되는 그날까지 ‘협회 역사의 산증인’이 되고 싶다.

그리고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설 때마다 변호사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글자체 즉, 변호사폰트를 만들어 소속감을 높이자고 주장하고, 당주동 정의의 여신상을 대체하는 21세기의 변호사상을 멋있게 만들어 협회의 정문 앞에 세우자고 외치고, 존경스러운 변호사선배들이 돌아가시면 그분의 자료를 찾아 추모사를 써서 신문에 기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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