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법원이 추진 중인 상고법원 이원화 방안의 요지는, 국민은 대법원이 최고법원으로서 법령해석 통일을 통해 사회의 가치기준을 제시할 것과 개별적 사건에서의 권리구제를 요구하고 있는데, 연 3만6000건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대법원은 두 기능이 혼재되어 국민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를 양분하여 법령해석 통일과 관련된 사건은 전원합의체에서 심판하도록 하고 그 외의 사건들은 상고법원이 심판하도록 함으로써, 상고심 심리의 충실과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이라는 과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고 이로써 ‘사법서비스의 획기적 개선’이 기대된다는 것이다(2014. 9. 24. 상고제도 개선 공청회 보도자료).

한편, 적지 않은 변호사들의 지속적인 대법관 증원요구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우리 사법체계를 과거 대륙법 체계에서 영미식 사법체계로 전환하는 장기적 발전 방향을 정하고 이에 맞추어 법조일원화, 평생법관제, 법학전문대학원 및 재판연구원제도 등을 입법으로 도입하였(으므로)’, 대법관 증원방식은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사법체계의 발전방향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한다.

위 보도자료가 근거하고 있는 국민적 합의란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으나, 일단 이러한 전제에서 대법원이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 연방대법원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미국 연방대법원은 연방국가의 최고법원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대법원과는 그 위상이 전혀 다르다.

미국은 각 주마다 독자적인 헌법과 사법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연방대법원은 본질적으로 연방국가를 구성하는 국가기관 상호간의 권한과 한계를 설정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미 건국의 아버지들은 미연방합중국이라는 나라의 틀을 다지는 과정에서 각 주를 연방정부의 일개 부서에 그치는 것이 아닌 독립적 주권을 가진 주체로 인정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들 관계를 명시한 수정헌법 제10조는 ‘연방정부에 위임되지 않은 권한은 주정부가 보유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New York v. United States, 505 U. S. 156 (1992)).

이에 따라 연방정부는 헌법이 위임한 제한적인 권능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고, 연방의회가 주정부에게 연방정부 정책을 수행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이러한 원리에 어긋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Congress may not commandeer the legislative processes of the States by directly compelling them to enact a federal program).

연방제도에서 중앙정부는 헌법이 부여한 제한된 권한만을 갖기 때문에 의회가 어떤 법을 제정하는 것이 헌법에서 허용하는 권한 범위를 넘어서는 것일 때에는, 당해 법령이 추구하는 목적이 권리장전의 명시적인 내용과 어긋나는 것인지 가려볼 필요도 없이, 그러한 법은 시행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미연방대법원의 주된 임무는 연방정부 권한의 범위와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미 연방대법원은 각 주 법원에서 이루어진 재판을 최종심으로써 다시 재판하는 것이 아니고, 헌법 3조에서 규정하는 관할권의 범위 내에서 제한적인 재심사 권한을 행사할 뿐이다(28 U.S.C. 1251~1260).

이에 비해, 우리 헌법 및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의 심판권 범위를 항소법원의 판결, 결정·명령에 대한 상고사건 내지 재항고사건에 미치는 것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대법원의 주된 임무가 하급법원 재판의 당부를 전반적으로 재심사하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우리 대법원은 개별적 사건에서 구체적인 법령해석 적용을 통하여 국민의 권리구제기관으로서 기능하는 점에서, 법령해석의 통일과 권리구제가 상호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심리불속행이 재판청구권의 침해가 아니라는 헌법재판소의 주된 논거는 ‘한정된 법 발견 자원의 합리적인 배분’의 요청상 모든 사건에서 반드시 대법원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도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법원의 조직을 대법원과 상고법원으로 이원화하기만 하면 인적자원의 합리적 배분이 가능하게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까? 생각건대, 100명 넘는 판사들을 재판연구관이라는 이름으로 거느리고 있는 대법원이 먼저 인적구성을 간소화하지 않으면 합리적인 자원배분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대법원은 과연 상고이유서를 읽기나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라거나 “현재 대법원 상고제도는 순 엉터리입니다. 뭔가 대대적인 개혁을 해야 합니다”라는 변호사들의 자조 섞인 설문조사 결과는 대법원의 업무처리 방식을 반영하는 것인 동시에 상고심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이유모순과 판단유탈의 하급심 재판을 심리불속행으로 종결짓는 것이 아니라, 이를 파기하여 재심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조삼모사식의 상고심 구조개편이 아니라 상고심이 파기원으로 기능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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