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의 역사에 대해 지대한 관심과 열정을 가진 김이조 변호사으로부터 책 한권을 빌렸다. 바로 옆의 사진에 있는 1969년 회원명부이다. 책의 표지를 넘기면 목차가 나온다.

서울변호사회- 303명, 서울제1변호사회- 165명, 부산변호사회- 56명, 대구변호사회- 35명, 광주변호사회- 23명, 수도변호사회- 21명, 대전변호사회- 19명, 전주변호사회- 18명, 춘천변호사회- 10명, 서울제2변호사회- 9명, 제주변호사회- 6명, 청주변호사회- 4명.

인원수는 우리가 집계하여 추가한 것이다. 전체 인원을 세어보니 699명이다. 그런데 변호사 백서를 보니 1969년 12월 31일 기준으로 변호사 수는 702명이다. 위 명부는 `1969년 4월 30일자로 만들어진 것이니, 결국 그날부터 연말까지 3명의 변호사만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목차를 살펴보니 1969년은 서울회가 4개의 변호사회로 분리되어 있을 때이다. 분열의 시대였고, 다양성의 시대였다. 하지만 10년 후 통합의 시대가 도래하여 지금의 서울회만 남아있다.

그냥 평범한 명부같지만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표지사진을 다시 보자. 협회의 주소가 서대문구 서소문동 37이다. 네이버 지도로 검색을 해보니, 지금의 서울시립미술관, 예전의 법원자리이다. 결국 그때 협회가 법원 안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전화번호가 두개다. 구관과 신관 전화번호가 별도로 있다. 결국 법원 내에 두개의 건물에 협회가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명부 중의 서울회편을 보자. 사진은 올리지 않는다. 서울회 전화번호가 나온다. 어! 그런데 협회의 전화번호와 똑같다. 구관 신관이 있는 것도 똑같다. 결국 그 당시는 서울회와 협회가 제대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미분화 상태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다시 목차로 가자. 처음에 는 참 이상했다. 왜 제주가 아닌 청주가 제일 마지막에 나올까 하는 의구심이다. 그런데 변호사 수를 세어보니,1969년에는 제주도가 청주보다 변호사 수가 2명 더 많았다.

솔직히 김이조 변호사님에게 1969년도 명부 원본을 협회에 기증하여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그런데 참았다. 1927년생이지만 아직 정정하시기 때문이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 기증을 부탁하련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선배님들! 집에 잘 보관되었거나 널부러져 있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역사적인 자료가 있으면 변협 홍보과에 기증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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