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해는 따뜻한 봄에 온 국민을 슬픔에 빠뜨린 뒤 추운 겨울까지 빠르게 내달렸고, 새해가 밝아 양의 해가 찾아왔다. 2015년은 을미년,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청양의 해’라고 하고, 특히 개인적으로는 6년간의 국선전담변호사업무를 마치고 개업변호사로서 첫발을 내딛는 해인 만큼 그 의미가 크다.

2009년에 연수원을 갓 수료하고 춘천지방법원에서 국선전담변호사로서 일을 시작한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쏘아 놓은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 벌써 6년이 되었다. 6년 동안의 국선변호사업무를 돌아보면 그야말로 ‘좌충우돌’ ‘우여곡절’ ‘감개무량’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2000건의 형사사건 변호를 하고, 2300명의 피고인을 만났고, 500통이 넘는 감사편지를 받았다. 업무적으로는 강원 지역에 여성 변호인이 많지 않은 덕분에 여러 기관의 다양한 위원회에서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지역신문에 오랫동안 칼럼도 쓰고, 본지에 이렇게 기고를 한 것도 벌써 2년이 넘었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형사법 전공으로 석사학위도 받았고, 틈틈이 많은 나라를 여행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내가 국선전담변호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여성 변호사로서 특별한 혜택도 많이 받았으니, 나름대로는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 변호인으로서 보람을 느꼈던 사건도 많고, 기억에 남는 피고인들도 많다. 아들이 아버지를 칼로 찔러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쳤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한 사건은 준비하는 과정도 무척 힘이 들고, 재판 당일 검사와 치열하게 법정공방을 벌이면서 기진맥진했지만, 배심원 전원일치 무죄 평결, 재판부 무죄 판결을 이끌어 냈다. 그 뒤로 그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아들과 화해를 하고 가정으로 돌아왔고, 아들은 자신도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또한, 흉기를 들고 사람에게 상해를 가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도 항소기각이 되었지만, ‘그동안 수도 없이 국선변호인의 변호를 받아보았는데, 이렇게 성실한 변호를 받은 적이 없다’며 수형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감사편지를 보내주었던 피고인도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변호를 하는 과정에서 변호사로서 자괴감도 느끼고, 당장 그만두고 싶은 충동에 빠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연탄집게로 찌르면서 피고인의 상의에 피해자의 혈흔이 튀었는데, 법정에서 피고인의 주장대로 “피고인의 상의에 묻은 붉은 자국은 피해자의 혈흔이 아니고, 피고인이 전날 먹다 흘린 김칫국물입니다”라고 변론을 하면서 재판부를 볼 낯이 없어 심한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고, 무죄를 주장하는 것보다는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자백을 권유해보았으나, ‘국선변호사라서 그런 것이냐’라는 냉담한 반응에 마음을 다치고 좌절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다시 일어설 힘을 준 것은 ‘변호사님 덕분에 저 이제 정신을 차렸습니다’라고 감사해 하며, ‘언제나 피고인들 편에 서서 우리에게 힘이 되는 변호사가 되어 달라’는 피고인들의 당부 덕분이었다.

등록변호사 2만명 시대에 불황에 허덕이는 변호사들도 많고, 문을 닫는 변호사 사무실도 수두룩하다고 하는데, 사선변호사로 개업을 한다고 하니, 주변에 있는 변호사들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들이 한 목소리로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변호사업계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고, 개업을 준비하면서 내심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 국선전담변호사로 선발되었을 때 가졌던 초심, ‘피고인의 말을 경청하고, 내 일을 처리할 때의 마음으로 변호를 하자’는 다짐을 기억하고, 이를 실천한다면, 결코 어렵고 힘든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용기를 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선전담변호사 업무를 마치며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요즈음 국선전담변호사를 법원에서 직접 선발·감독하고 그에 따라 재위촉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인해 국선전담변호사들이 법원에 종속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선전담변호사를 어디에서 선발하고, 누가 관리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대표되는 사법불신을 해소하고, 피고인들을 위한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형사변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국선전담변호사제도를 개선하더라도 이러한 가치가 제일 중요한 지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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