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변화의 시대이다. 변화가 일상화되어 있다. 그 속에서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 것은 오직 속도 그리고 새로움뿐이다. 이것은 물론 소비사회의 심화와 정보기술의 혁명이라는 현대 사회의 특징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무한한 행복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그 욕망은 타인 또는 타영역에의 침범으로 달성된다. 그 때문에 각 영역의 경계는 불분명해지고 그에 따라 인간의 라이프 스타일은 변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타자(환경)와의 관계에 있어 정체성을 지키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처럼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살아남는 길 그리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나 자신도 변화하는 것 즉 그 변화의 물결에 따라 나 자신을 맞추는 것이다. 오직 그 길밖에 달리 길이 없다. 그러나 그 변화는 지극히 어렵다.

변호사는 어떤가. 변화의 물결에 따라가고 있는가. 아니다. 변화를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변호사는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아직도 시대에 뒤떨어진 독점의 논리에 매달려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그 독점의 논리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우월감과 특권의식이라는 환상이다. 우리는 아직도 지난 날의 환상만을 좇고 있을 뿐이다. 이 환상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미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도저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 아니 우리만 모른다. 세상은 다 알고 있는데.

현대 사회는 타영역의 침범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이른바 유사 법률직에 의한 변호사 업무영역의 침범도 벌써 오래 전부터 예견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닌가. 이 업무영역의 침범만 하더라도 우리는 다만 자존심, 즉 우월감과 특권의식이라는 환상을 둘러쳐 놓고 그 환상이 그 침범을 방어해 줄 방어막이 되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얘기다.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막을 수 없다. 또 우리가 변화하여 우리의 영역을 굳게 지키지 못하면 아무도 우리의 영역을 지켜주지 않는다.

오래 전에 읽은 것이어서 책 이름은 잊었지만 이런 흥미있는 얘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헤브라이 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애급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자기 민족을 이끌고 애급에서 탈출한다. 그러나 여호와가 약속한 땅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대신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한다. 구약성서의 얘기다. 그 책의 저자는 이런 풀이를 소개하고 있다.

모세는 그의 민족을 노예로부터 해방시켜 자유인으로 만들고 싶었다. 자유인으로의 변화에는 우선 다른 땅으로의 이주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유인으로서의 재탄생 의식이 필요했다. 다시 말하면 근본적인 자기의식의 변화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모세의 민족에게는 이러한 자기의식의 변화가 없었다. 모세는 이주, 즉 출 애급만으로는 노예를 자유인으로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알았다. 게다가 이주과정에서의 어떤 드라마도, 어떤 스펙터클도, 어떤 기적도, 어떤 신화도 결국 노예를 자유인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노예를 자유인으로 만드는 것은 자유인을 노예로 만드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려웠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근본적 변화를 추구했다. 노예를 데리고 사막으로 들어간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노예의 세대가 다 죽고 사막에서 태어나서 자란 새로운 세대가 여호와가 약속한 땅에 들어갈 준비가 될 때까지 사십년을 기다렸다.

이것이 그 책의 저자가 말하는 ‘모세의 사십년’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 변화가 요구되는 이유를 그리고 그 변화가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것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쉽게 변화하려 들지 않는다. 제 자리를 떠나려 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많은 혁명의 지도자들이 열렬히 변화를 부르짖다가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을 알고는 변화를 인위적으로 강제하는 폭력적 방법에 매달리는 일이 종종 있는 것을 본다. 변화에 순응하지 않는 성인세대의 추방이 그것이다. 그 지도자들에게는 적당한 사막도 없으려니와 모세처럼 사십년을 기다릴 인내심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변호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남에 의하여 변화가 강제되고 만다. 타자에 의한 영역침범이다. 우리는 이미 법조인 양성제도의 변경이라는 남에 의한 변화의 강제를 경험했다. 그것은 변화라는 물결에 빠져 죽은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변화라는 보이지 않는 대세에 휩쓸려 우리의 정체성은 사라졌다는 것을 말한다.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지 못한 자의 종말이 바로 이것이다.

더 이상 독점의 논리에 안주할 수는 없다. 먼저 우월감과 특권의식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재탄생에 비할 수 있는 자기의식의 변화를 사십년 동안이나 기다려 줄 모세가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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