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시장 개척의 필요성은 인정
최근 변호사의 수가 급속히 늘어나고 송무를 중심으로 한 법률시장의 포화가 문제로 제기되면서, 변호사의 다양한 직역 진출이나 새로운 법률시장 개척이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변호사업계의 어려움을 이유로 변호사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하자, 변호사의 수의 증원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송무 영역의 수요가 정체되는 상황에서 현재 변호사의 업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직역과 시장의 창출을 모색해야 한다” 는 취지로 변호사들의 다른 직역 진출을 대안으로 내세워 반박하고 있다.

새로운 직역으로 진출하여 법률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며 궁극적으로 변호사들이 추구해 나아가야 할 방향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 적정 변호사의 수 논의와 관련하여 나오고 있는 다양한 직역 진출의 주장은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의 제시는 없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참 변호사들의 호소에 대응한 임시방편적 성격이 강하고, 다른 영역으로 진출하지 않고 소송을 주로 하는 변호사는 마치 시대적 추세를 거스르는 전근대적인 존재처럼 간주하고 있어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법조인접 직역 등으로 인한 다른 분야 진출의 어려움
우리나라의 경우 기본적으로 정신적 노동이나 무체재산에 대한 가치를 크게 보지 않는 경향이 있어, 법률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급함에 있어 매우 인색한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고 법원에 의해 인정되는 손해배상의 액수도 약한 편이어서, 기업들이 법적 리스크의 사전예방을 위해 법률가를 고용할 유인도 약하며 사건이 터진 후에 외부 법률가에게 사건을 위임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급증하는 변호사들에게 새로운 직역으로 각광받아 온 사내변호사의 수나 역할에도 한계가 있으며, 변호사 수의 증원을 주장하는 측의 이상과 달리 대부분의 우리 기업들은 변호사를 고용함에 있어 매우 소극적인 자세를 유지해 왔다. 또한 한국에는 외국에 없는 법조인접 직역의 전문가들이 매우 많기 때문에, 법률가들이 진출하고자 하는 다른 직역 중 상당한 전문분야는 이미 기존의 변리사, 세무사, 회계사 등에 의해 선점된 상태이다. 다양한 직역으로의 진출을 강조하는 분들이 정작 간과하고 있는 전제 중의 하나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고객을 확보한 변리사 등 전문가들에게 위협이 되는 변호사란 그 직역에 대한 특수한 시장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변호사가 아니라 오히려 송무 능력을 인정받아 고객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변호사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아무리 열심히 특성화된 분야를 공부한다 하더라도, 그에 앞서 변호사로서의 기본인 송무 능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한 이미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법조인접 직역의 전문가들과 경쟁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신참 변호사의 다른 직역 진출은 신중해야
다양한 직역으로의 진출, 그리고 시장 확대의 취지는 분명히 바람직하며, 그러한 관점에서 스포츠 분야로의 변호사 진출 관련 세미나 등 변호사협회 차원에서의 다른 분야에 대한 연구 노력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도 최소한 자기 영역에서 어느 정도 전문화가 가능하여 자립한 상태에 있는 기존 변호사들에게 타당한 지적이며, 이제 막 시험에 합격하여 실무연수교육을 받아야 하는 신참 변호사에게 송무 외의 다른 분야로 진출하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존의 송무시장이 포화상태이니 신참 변호사에게 다른 직역으로 나가라고 하는 주장이야말로,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여하여 취득한 변호사 자격증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또 한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할 수도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당사자인 신참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① 보장되지 않는 소득의 압박과 위험 하에 ② 기존에 자신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취득한 법률지식을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채 ③ 다른 분야에서 이미 전문성을 쌓아 온 사람들과 ④ 특별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여 열세인 상황에서 자신의 인생을 건 모험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특수직역에 진출하여 성공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어린 나이에 바로 그 직역에 가서 실무를 익히는 것이 타당하며,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법을 공부하고 사회에 발을 들인 신참 변호사에게 다른 직역 진출을 강조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신참 변호사에게는 다른 직역으로의 진출을 강조하기에 앞서 양질의 실무연수교육의 기회를 부여하고 그들의 취업기회를 늘릴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차후에도 변호사 증원론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다양한 직역이라는 추상적 구호에 그칠 것이 아니라 법률 현실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제도적 개선과 구체적인 대안을 함께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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