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평론을 싣는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가 지난 7일(현지시간) 테러를 당했다. 이슬람교 상징인 무함마드를 희화화한 만평을 게재한 게 원인이었다. 이 테러로 만평가와 경찰관 등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계 각지에선 “내가 샤를리다”라고 외치고 있다. ‘테러 집단이 표현의 자유에 정면도전했다’는 것이다.

최근 ‘표현의 자유’가 뜨거운 감자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뿐 아니라 북한 김정은의 암살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 ‘인터뷰’의 상영을 두고 북한 측의 영화사 해킹 논란도 일었다. 전 세계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이 이보다 열띠게 나온 적이 있었나 싶다. 그간 서방 민주주의에서 표현의 자유가 무제한 보장되는 것은 상식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가 테러 집단 등 반인권 세력의 위협 앞에 놓이자 논란의 장 위에 놓인 것이다. ‘표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언론계 안팎에서도 이를 둘러싼 혼란이 한창이다.

우리 사회도 올해 들어 비슷한 논란이 불거졌다. 정부가 이 같은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게 조금 다른 양상이다. 새해 초부터 관심을 끈 한 재판 결과를 놓고 보면 그렇다. 바로 한 탈북자 단체 대표가 자신의 대북전단 살포 활동에 대한 일부 군·경찰 제재에 반발해 낸 민사소송이다. 원고는 군과 경찰의 제재로 헌법에 보장된 자신의 표현 자유가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심리한 의정부지방법원의 재판부는 원고의 활동으로 휴전선 부근 주민들의 생명과 신체에 명백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고, 이는 대북전단 활동을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그간 정부 당국(통일부)은 “민간단체의 자유로운 활동을 정부가 막을 근거가 없다”며 사실상 대북전단 살포를 허용해왔다. 이 때문에 법원이 정부가 보장하려는 ‘헌법상 권리’를 막은 모양새가 됐다. 법원 판결 이후 국회와 시민단체가 대북전단 제재를 권고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마치 어떠한 위협과 위험 부담에도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지키겠다며 나서는 모양새다.

표현을 업으로 삼는 기자들이라면 정부의 이런 입장을 반길 만도 하다. 하지만 막상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에 대한 정부 태도는 이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수년간 이런 보도에 대해 ‘전가의 보도’처럼 명예훼손 관련 각종 송사로 대응해 왔다. 특히 ‘국가기관은 명예훼손의 객체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의식해 정부가 아닌 기관장 등이 개인 자격으로 대리 고소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최근 기자가 속한 신문사에서 청와대 내부 작성 문건을 근거로 현 정부 비선실세와 일부 청와대 참모진의 ‘국정농단’ 의혹을 보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 인사들은 신문사 기자들과 임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겉으로는 본인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법적 대응으로 보이지만, 실은 비판 보도에 대한 ‘보복성 고소’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정부는 지난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관련 내용을 연속 보도한 방송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보도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도 했다.

이듬해 검찰은 보도진을 재판에 넘겼다. 당시 기소 여부를 두고 검찰 내분을 겪기도 한 이 사건의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그럼에도 당시 정부 측의 고소 이후 광우병 논란과 관련한 언론 보도는 급격히 위축됐다. 언론 ‘입막음’에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결국 정부의 비판 보도에 대한 법적 대응 추세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표현의 자유 옹호와는 모순이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등이 언론계에 던진 화두는 명확하다.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될까.”

언론 자유를 명시한 우리 헌법 제21조는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한 때’ 권리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자도 표현의 자유가 무한한 권리는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 특히 법조 출입기자들은 정·재계 거악을 고발하는 등 민감하고 첨예한 내용을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과정은 취재부터 보도까지 매우 신중하고 예민하게 이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헌법에 뿌리를 두고 법을 집행하는 정부가 대북전단에는 관대하고 비판보도에는 엄격한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면 합리적 의혹 제기와 권력 감시라는 언론 역할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성숙한 민주사회를 위해서라도 ‘표현의 자유’ 기준이 도대체 뭔지 언론·법조계의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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