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에 기대 혼자서 영문 모를 춤을 추던 헌 플라스틱 봉지에 바람 빠지듯 해가 바뀌었다. 이 해에는 좀 더 알차고 의미 있는 동작으로 우리 주변이 채워졌으면 한다. 기대는 배반하기 마련이나 그래도 새해를 향한 소망은 언제나 복스럽다.

이 한해 법조계에도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법조인 양성의 얼개이다. 조금 쉽게 말하자면, 사법시험이 끊어지는 2017년의 시점에서 현재의 법학전문대학원 즉 로스쿨 체제를 유일한 법조인 양성의 통로로 설정해둘 것이냐에 관한 것이다.

지금 상반되는 이해관계 세력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난마처럼 얽혀 있으나 그 대강을 살피면 이러하다. 로스쿨 도입이 노무현 정부에서 이루어진 탓인지 민주당 즉 야당 측은 현재의 로스쿨 체제를 안정화시키려고 즉 사법시험을 완전히 폐지하는 쪽에 방점을 둔다. 로스쿨 교수들은 당연히 대부분 이 편을 든다.

반면에 아이러니컬하게도 보수여당인 새누리당 측에서 다수의 인사들이 ‘기회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한다.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신음하는 청년변호사들이 여기에 가담하며 나아가 로스쿨 정원의 감축을 내건다. 워낙 호각의 기세로 서로 물러서지 않으므로, 이건 어쩌면 그 껍질이 이미 딱딱하게 이데올로기화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내 의견을 여기에서 간단히 제시해보자. 첫째 사법시험 존치의 주장은 잘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유난히 평등의식이 강한 곳이다. 세계사에서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생긴 곳이 바로 한국이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배경을 가지고 험한 역정을 거쳤어도 열심히 공부하여 인생역전을 시킬 수 있는 사법시험에 대한 선호도는 결코 없앨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반 국민의 바람과는 별개로 사법부는 사법시험 존치에 따른 사법연수원 지속의 부담을 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인적, 물적 지출이 따라야 하는데 그만큼의 명분이 사법부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로스쿨 정원의 문제이다. 우리와 법문화, 법률시장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일본과 비교해보면, 현재 우리 로스쿨에서 과다한 법조인을 배출하는 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이렇게 법조인이 한꺼번에 많이 배출되며 안타깝게도 법조계 위상의 급속한 저하와 변호사의 공익성 퇴조가 눈앞에 바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로스쿨 정원을 시장의 원리에 따라 무한대로 확대하고, 그 로스쿨 졸업자들에게 간단한 시험을 거쳐 원칙적으로 모두 변호사자격을 부여하자는 로스쿨 지상주의자들이 여론전의 선두에 서서 열심히 활약하고 있다. 이들의 강경함을 숙지게 하고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원로들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로스쿨을 가지고 있고-전 세계 다른 모든 나라의 로스쿨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이-그에 따라 변호사 수도 가장 많은 브라질, 가히 ‘로스쿨의 천국’인 이 나라에서 사법제도의 효율은 극단적으로 나쁘다. 어느 하나의 재판부가 무려 166만건의 미제사건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로스쿨 지상주의자들이여, 이런 것에도 눈을 한번 돌려보라!

셋째 로스쿨 교과과정과 관련된 것이 있다. 실무와 강단에서 오래 종사해온 내 입장에서 단언컨대, 한국의 로스쿨에서 현재의 교육체계로써는 3년의 기간 안에 법학 전반에 걸친 기본적 이론 습득과 변호사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실무능력을 함께 구비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미국과 다르다. 한국의 법체계는 선례를 중시하며 이를 따라가는 영미법계가 아니라 대륙법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법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광범한 암기의 영역에 함몰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요건사실과 항변사실의 개념적 분할을 숙지하는 교육을 받지 않으면 실무에 첫발을 내딛기 힘이 드는데, 이 역시 암기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로스쿨생들의 과중한 부담과 고통을 덜기 위해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하였으면 한다. 변호사시험에 자신이 공부한 책을 갖고 가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암기에서 해방시키는 것인데, 그렇게 해도 법률가로서 꼭 필요한 논증능력의 테스트로 충분히 우열을 가릴 수 있다. 하지만 과장된 원칙론에 밀려 이 방법이 실현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본다. 이게 되지 않으면 적어도, 변시 수험자가 컴퓨터로 답안을 작성할 수 있게 했으면 한다. 필기보다는 사고의 자유로운 서술이 훨씬 용이한 까닭이다.

무용한 대립을 거듭하기보단 하나씩 실마리를 찾아보자. 올 한해가 지나갈 땐 작년처럼 헌 비닐봉지가 속절없이 독무(獨舞)를 추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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