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인문학의 출발이고, 책은 지식발전의 기초이다. 빨리빨리에만 익숙했던 우리에게 기초로 돌아가라는 인문학에의 열중은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필자의 경우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것이 언제적이던가 기억 못할 정도로 완독이 이례적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고전 역시 어린 시절 많이 읽은 명작동화 등으로 스토리를 아는 것에 안주하였을 뿐 대학생이 된 이후 접한 두툼한 원작을 제대로 독파한 경우가 적었다.

법대생으로서 사법시험 수험생으로서 법학 교과서와 수험서는 다독이 필연적이었지만, 법서 이외의 도서는 현재까지도 공부, 업무 등을 핑계로 중요한 부분 또는 발췌하여 여기저기 읽는(browse) 경우가 다반사다. 요즘 아이들은 많이 읽어 봤을 원서 역시 완독한 영어소설은 페이퍼백으로 열 손가락을 넘지 못한다.

예전에는 끝까지 다 읽지 못하더라도 서평을 스크랩하거나 리스트까지 작성해가며 많이 사 모으던 책을 이제는 구입마저 주저하게 되었고, 그나마 법원도서관에 추천하여 구입된 도서도 잘 안 찾는다. 어느덧 집의 책장은 아이가 읽거나 읽을 책이 점령하게 되었고, 사무실 서고에 꽂혀 있는 역사적인(?) 도서는 법원 전출입 시 천덕꾸러기 이삿짐 신세다. 최근에는 한술 더 떠 책 읽어 주는 오디오북이나 라디오를 통해 지식 보강의 위안을 삼는 경박함마저 생겼다.

법조인으로서 요구되는 교양과 간접경험으로써의 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건만, 일이라는 핑계거리에 손쉽게 숨어 왔음을 반성하게 된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는 두꺼운 소송기록을 집에 들고 가서 아빠도 이렇게 공부한다고 둘러댈 수 있지만, 좀만 크면 아빠가 보고 있던 것이 책도 아니고 공부는 더더욱 아니며, ‘일’일 뿐이라는 걸 금방 알게 된다.

한편, 책은 문자로 구체화된 정보를 시각적으로만 보여 주는데 그치지 않고 인간으로 하여금 두뇌를 통하여 판단을 가능케 하는 생각과 아이디어의 원천인 상상 등을 매개함으로써 읽는 효용과 함께 즐거움도 선사한다.

그런데 로봇혁명 시대에 책이 매개하는 인간 고유의 정신적, 지적 판단능력이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수 있을까? 변호사를 포함한 상당수의 정신노동 직업이 로봇공학기술의 발전이 만개하는 미래에 사라질 운명이라 예측되기도 하지만, 판단의 객체가 인간의 행위일 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판단의 주체가 대체되어서는 안 될 인간이기에 인간 본연에 대한 탐구가 르네상스 시대에 시작한 이래 인터넷지식이 횡행하는 지금 다시 주목 받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보다는 어쩌면 시대적 요청인 듯싶다.

인문학의 진화는 정보의 데이터베이스화에 따른 지식의 기계적인 추출이 아니라 가정과 학교 그리고 마을 곳곳에서 도서관의 지식생활 거점화에 따른 독창적이고 인간적인 사고(思考)의 진흥에 힘입는 바가 클 것이다.

정보의 대량집적과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책을 수동적으로 읽는 독자로서만이 아닌 디지털 편집과 재창조를 거쳐 책을 만드는 혁신적인 발행인(publisher)의 출현까지 가져왔다. 하지만, 종이책이 종이편지와 같이 급격히 쇠퇴하리라 보이지는 아니하며 또한 그러기를 희망한다. 또한 종이책이 2차 저작물인 영화 등의 형태로 소비되기 보다는 원작 그대로 읽혀지고 손때 묻은 채 대물림 되는 추억도 전통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부딪치고 풀어야 할 문제는 결국 인간의 문제이고, 인간 자체의 본성과 관계에서 비롯되는 각종 태양의 행위에 대한 탐구와 해석으로 귀결될진대, 정작 이를 통찰하는데 좋은 자료와 병장기가 되는 동서고금의 책을, 바로 적용하거나 응용할 수 있는 실용서적이 아니더라도 무엇보다 실무가 이전에 한 인격체로서의 정신적 건강과 정서 함양 그리고 행복에의 성찰을 위해서 자녀나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 먼저 읽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나 묻게 된다. 물론 주관적으로….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 책 읽는 풍속은 자취를 감추고 스마트폰만 끼고 있는 세태, 도서정가제로 온라인 도서판매를 규제할 정도의 혼탁한 도서 유통시장, 표절이 난무하는 창작의 세계, 곳곳에서 인간을 필요 없게 만드는 컴퓨터와 로봇에 대한 걱정이나 비판일랑 잠시 내려 놓고, 2015년 새해 삼일마다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종이책 읽기를 작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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