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상반기 법조계 안팎의 많은 주목을 받으며 출범한 제도가 있다. 변호사가 없는 ‘무변촌(無辯村)’ 지역에 전담 변호사를 연결해 주는 ‘마을 변호사’ 제도다. 법률 상담을 받을 여건이 되지 않는 읍·면·동 지역의 주민들이 담당 변호사에게 손쉽게 무료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취지로 법무부·안전행정부·대한변협이 손을 잡고 만든 일종의 변호사 재능기부 서비스다. 좋은 뜻으로 첫발을 뗐던 만큼 당시 업계에서는 제도의 안착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시행 후 1년 반여가 지난 최근, 마을변호사 제도가 잘 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실제 마을변호사로 등록한 변호사들은 최근 몇년 내 개업을 한 고위 전관들부터 시작해 제법 이름을 알 만한 사람이 많았다. 모범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을 찾아 이야기라도 들을 요량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하지만 대부분 “이름은 걸어놨지만 특별히 자문 요청도 없었고 실제로 활동한 것이 아직까지 없다”며 인터뷰를 마다했다.

법조계에서 모범 마을 변호사로 추천했던 한 대형 로펌의 대표 변호사도 “아직 실제 상담을 한 것은 없고, 올 겨울에 내려가서 주민들을 만나 홍보를 하려고 한다”고 털어놨다. 현재 전국 633개 마을에 1000명 이상의 변호사가 등록돼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활동을 벌이는 법조인이 많지 않아 보였다.

어렵게 물어서 지난 1년간 한달에 한 차례 이상은 상담 활동을 했다는 한 젊은 변호사를 만나봤다. 이 변호사는 지난해 말부터 매달 자신의 부모님이 계신 시골 지역에 방문해 한 차례에 5~6명 정도씩 지금까지 50여명의 주민을 만나 법률 상담을 벌여왔다고 했다. “활동이 전반적으로 많지 않은 걸 보면 수요가 없는 건 아니냐”고 물었다. “수요는 많다. 오히려 잘 몰라서 못 받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변호사가 만나서 상담을 했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럴 법도 했다. “시골에는 농사 짓는 분들이 많잖아요. 땅값이 싸고 몇백평씩은 소유한 경우가 많으니까 주변 이웃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자기 땅도 쓰라고 선뜻 내주고 해요. 그런데 이게 법적으로 들어가면 복잡해지죠. 이게 임차에 해당하는 건지, 점유 취득 시효는 언제인지…. 이런 작은 일상에서 시작해 분쟁을 벌이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잘 모르고 사채를 썼다가 가족 모두가 사채업자로부터 매일 밤마다 협박을 받거나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법적으로는 채권 추심시 채무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독촉을 해서는 안 되고, 전화 독촉도 정해진 횟수 안에서 해야 하지만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보니 억울하게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변호사 상담을 받고서야 사채업자들의 발언을 녹취하고, 권리를 적극 주장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변호사는 “아직까지 사건 수임으로 연결된 적은 한번도 없지만, 주민들이 가끔 직접 지은 농산물을 감사의 표시로 보내 주기도 했다”며 “형식적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봉사를 하는 것 같아 매우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기본적인 법을 몰라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이 마을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있을 것이다. 마을 변호사들이 할 수 있는 역할도 그에 대한 기대도 여전히 큰 것은 그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취지의 제도가 왜 일년 반 동안 활성화되지 못했을까.

얘기를 들어보니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우선 제도 출범 초기부터 지적됐듯 이렇다 할 인센티브가 없었다. 지역 방문을 할 때마다 교통비 5만원을 지원하는 것이 전부였다. 한 변호사는 “KTX만 타도 5만원으로는 갈 수 있는 지역이 별로 없는데, 이 이상을 지원받으려면 영수증이나 증명 서류까지 추가로 보내야 한다”며 “번거롭게 생각하는 변호사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물론 봉사 활동 시간이 주어지지만, 이 역시 서울 수도권 소재 변호사들은 소재지에서 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자기 시간을 쪼개가며 지방으로 눈을 돌릴 유인은 많이 없는 셈이다.

홍보 방식도 한계가 있어 보였다. 현재 마을변호사는 인터넷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홍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법률 지식이 없는 지역 주민들의 경우 인터넷 접근성이 좋지 않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아 아예 볼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또 각 관공서별로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 마을변호사 제도 연결을 맡도록 하고 있으나 공무원들이 정작 제도를 잘 몰라 안내를 해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이다.

제도가 만들어질 당시 법무부 관계자는 “공익 활동에 관심 있는 변호사가 많아 금방 잘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업계 불황과 변호사 수 급증으로 인해 각자 ‘먹고 사는 일’부터가 팍팍한 요즘이다. 법률 사각 지대를 없애고 마을변호사 제도의 출범 취지를 달성하려면 지금이라도 실효성 있는 인센티브와 지역 현실에 맞는 홍보 정책 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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