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라고? 아니 이것이 무슨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리여? 아니, 너희들이 달팽이여? 자웅동체도 아니고 이것이 뭔 지랄이여! 아이고,하느님! 세상 말세다. 말세.”

진학실 밖 복도까지 들려오는 우렁찬 헐크 선생님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이 찔끔 감겼다. 사실 나는 특별하게 잘못한 일도 없는데 심장이 콩닥거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범인이 아닌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반장으로서 사건에 대해 증언하도록 소환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다혈질인 헐크 선생님은 생물을 가르치면서 학생 생활지도를 담당하고 있다. 덩치도 엄청나고 한 번 화가 나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기 때문에 언제부터인지 헐크가 별명이 되었다. 그는 아침마다 선도 부원들과 함께 교문을 지키며 두발불량,복장불량을 잡아내는 매서운 눈초리를 가진 자칭 사탄이다. 그래서 자기는 늘 교회에 다니며 죄를 빌고 있는 열렬 신자라고 자랑한다. 헐크 선생님의 신앙심은 하늘도 감동할 정도이다. 생물시간에 진화론을 설명할 때였다.그는 교탁을 탁! 치며 한숨을 쉬었다.

“너희들도 한 번 생각해 봐라. 내가 비록 생물 선생이어서 다윈이라는 사악한 인간의 진화론을 가르치고 있지만 말이다. 너희들은 원숭이의 자손이 되고 싶으냐? 아니면 하느님을 닮은 하느님의 후손이 되고 싶으냐? 진화론을 믿으면 우리는 혹성탈출에 나오는 원숭이가 되는 것이야.창조론이 마땅히 진리이자 빛이란 말씀이야.”

그런 헐크선생님을 경악하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도 신성한 학교에서 목자의 인도를 받는 착한 어린 양들 사이에서 말이다. 헐크선생님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잡아내는 십자군의 기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사건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승연이와 시연이가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근처 영어 학원에서였다. 성격이 쾌활하고 선머슴같은 승연이가 수줍은 새색시같은 시연이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같은 학교 학생이었고, 같은 수강반에서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서로 친하게 되었다.

문제는 2학년이 되면서부터였다. 2학년이 되면서 같은 반이 된 승연이는 시연이와 짝을 하겠다고 우겼다.남녀공학이었기 때문에 여학생끼리 짝을 하고 화장실 가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다른 학생들도 둘 사이를 ‘베프’, 그러니까 베스트 프렌드 정도로 생각했다. 급식 시간에도 둘이 머리를 맞대고 소곤거리고, 학원도 함께 다니고 둘이는 단짝이었다. 친구들은 둘 사이를 ‘금실 좋은 부부’라고 놀렸다. 성격시원한 승연이는 그런 놀림을 호탕하게 웃어 넘겼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더니 농담이 진담이 되었다. 둘은 학교친구에서 어느덧 더 발전된 단계까지 나아갔던 것이다. 2학년 가을 어느 날 둘 사이의 관계를 눈치 챈 어떤 여학생이 카카오톡에 글을 올렸고 소문은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른 척 그저 곁눈질로 둘 사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의외의 곳에서 폭탄이 터졌다.딸의 성적이 점점 추락하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시연이의 엄마가 핸드폰을 압수했다. 밤늦게까지 카카오톡만 하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뺏은 핸드폰을 본 시연이 엄마는 경악을 했다. 승연이와의 카카오톡이 온통 ‘자기 사랑해’라는 글자 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시연이 엄마는 그것이 승연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교에 찾아와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들 사이에 서로 폭탄을 떠넘기다가 마침내 헐크선생님의 손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선생님,저는 시연이를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한다니까요.”

“그러니까 그것이 말이여 막걸리여.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면 신의 섭리가 아니제. 잔말 말고 둘이 서로 헤어져.”

“왜요? 학생은 사랑하면 안되나요? 꼭 서로 다른 성(性)끼리만 좋아해야 하나뇨? 여자끼리는 왜 좋아하면 안돼요?”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지, 너희들 연애질 하는 곳이 아니여. 너희들은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들이여!”

“선생님은 왜 저희를 벌레처럼 그렇게 말씀하세요? 저희도 인권이 있는데!” 

진학실 밖으로 들린 승연이의 목소리는 격렬하게 따지고 있었다.

“인권은 개뿔! 너희같은 레즈비언들이 무슨 인권같은 소리여! 동성애는 천벌을 받는다고 하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지.”

갑자기 진학실문이 쾅! 열리더니 승연이가 뛰어나갔다. 곧이어 헐크선생님과 시연이가 당황한 듯 모습을 나타냈다. 시연이는 복도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린 채 흐느끼고 있었다.

학교 교정의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승연이는 일주일 째 학교에 오지 않았다. 시연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환자처럼 땅만 보고 다녔다. 승연이랑 시연이는 나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래서 내 마음도 조금은 답답했다.학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문자가 왔다. 뜻밖에도 승연이에게서 온 것이었다.

‘ㅋㅋㅋ.드디어 찾았다. 시연이 핸드폰이 없어서 대신 반장이 좀 알려줘라.

학생인권조례 제4조 (평등한 처우를 받을 권리) 학생은 성별,종교,나이,사회적 신분,출신지역,출신국가,출신민족,언어,장애,용모 등 신체조건,임신 또는 출산,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인종,피부색,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성적(性的) 지향,병력,징계,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할 권리를 가진다.

내가 밑줄 친 부분 보이지? 우리도 성적(性的)지향 때문에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대.내일 교육청에 가서 따질 거야.그리고 안되면 피켓이라도 들고 크게 외칠 거야.학생에게도 사랑할 권리를 달라!’

버스 창문 너머로 야곱의 사다리가 보였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리비치는 그곳으로 천사가 내려와 착한 영혼을 천국으로 데려간다는 사다리. 그 사다리로 올라가는 승연이의 밝은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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