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로 늦춰진 등교시간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법 쌀쌀한 새벽 6시에 일어나 너를 감시하기 위해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고 너와 같은 교복을 입는다. 오직 너를 만나기 위해 사람대신 한기로 가득 찬 버스에 올라탄다. 학교 앞 정류장에 도착해서는 언덕 중턱에 위치한 학교에 흔한 말동무도 없이 홀로 길을 오른다.

나는 학생인권교육부에 들어가서는 너의 이름을 받아 적을 몇 장의 종이와 함께 샛노란 파일을 손에 쥐고는 문을 닫고 나온다. 그렇게 날카로운 종이와 샛노란 파일을 무기삼아 학교 정문 앞에서 너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개나리처럼 노란 머리를 염색한 너, 모델처럼 통이 좁은 바지를 입은 너, 너의 몸에 어울리게 치마를 줄인 너. 수많은 너의 학번을 묻고, 이름을 묻는다.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너에게 나와는 약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벌점을 부과한다. 하지만, 다음 날에도 다음 달에도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등교할 너를 안다. 예쁘게 줄인 교복을 입은 ‘너’를 보며 나는 오늘도 무릎을 덮어오는 긴 치마에,품이 큰 카디건 안에 나를 가둔 채 너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둔다.

나의 마음속에 있는 ‘나’는 한없이 싱그럽고 그저 남학생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철없는 여고생인데, 선도 활동을 마치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본 거울 속 나는 잔머리 하나 남기지 않고 머리를 올려 묶고는 렌즈가 아닌 안경을 낀 칙칙한 여고생이다. 수많은 너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담은 파일을 제출하기 위해 올라간 2층 교실에 걸린‘학생인권교육부’라 적힌 팻말 앞에서 다리가 멈추어 버렸다. 나와는 다른 너의 모습이 굳이 교육을 받을 정도로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학생이기 전에 한명의 사람이 아닌가? 나는 팻말을 뚫어지게 바라보고는 너의 이름이 적혀있는 종이를 교복주머니에 꾸겨 넣은 후, 텅 빈 파일을 인권교육부에 제출한다. 법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이루어져야한다.

학생인권조례를 만든 것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이 도구로 쓰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도구가 주체가 되어 도리어 학생들을 비정상적인 평등에 억매이게 하는 것은 학생들 스스로 익혀야할 의무와 질서를 알지 못하게 된다. 모든 학생들이 평등의 틀 안에서 자라게 됨으로써 비판과 표현의 자유의 경계선을 혼동하고 사회에 대한 배타적인 사고로 무장하여 그들만의 성안에 머무르고 있다.

학생인 사람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우리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을까? 학생인권조례가 생기기전에 우리는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더 많은 규제 속에 눌려 지냈다. 그 규제의 울타리가 사전교육이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버렸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권리에 따른 책임감 없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책임감 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나와 수많은 너는 익혀본 적이 없어 아직은 서툴고 미숙하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선생님들과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학생인권침해라는 사건이 더 이상 뉴스에 오르지 않을 것이다.

교실에 들어가 나를 모범생이라고 칭찬하시는 선생들의 수업을 듣는다. 수업을 모두 마친 뒤, 외롭던 등교시간과 달리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학교를 나선다.

집에 도착해서 공부를 하고난 후, 침대에 누워 “꾸뻬 씨의 행복여행”책을 읽고 8시에 맞춘 핸드폰 알람을 확인하고 ‘너’와 같은 모습을 한 나를 꿈꾸며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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