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재산적 거래관계에 있어서 계약의 일방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계약의 효력에 영향을 미치거나 상대방의 권리 확보에 위험을 가져올 수 있는 구체적 사정을 고지하였다면 상대방이 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하거나 적어도 그와 같은 내용 또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하였을 것임이 경험칙상 명백한 경우 계약 당사자는 신의성실의원칙상 상대방에게 미리 그와 같은 사정을 고지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상대방이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거나 스스로 이를 확인할 의무가 있는 경우 또는 거래 관행상 상대방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등에는 상대방에게 위와 같은 사정을 알리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고지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볼 수 없다.

[인정된 사실관계]

(1) KT GLOBAL SUBIC, INC.(이하 ‘케이티글로벌수빅’이라고 한다)가 2006년 및 2007년경 BOTON LIGHT AND SCIENCE PARK, INC.(이하 ‘BLSP’라고 한다)로부터 BLSP가 SUBIC BAY METROPOLITAN AUTHORITY(이하 ‘SBMA’이라고한다)에 대하여 가지는 필리핀 수빅만 소재 Lots 9~13 및 15~18 각 토지에 관한 임차권(이하 ‘이 사건 임차권’이라고 한다)을 양도기간 2054. 8. 9. 까지로 정하여 양도받았다.

(2) 위 각 토지 OO아파트 및 상가를 건축·분양하는 이른바 ‘필리핀 수빅 암펠로스타워 프로젝트(이하 ‘이 사건 개발사업’이라고 한다)’와 관련하여 케이티글로벌수빅은 시행사 겸 차주 지위에서, 한일건설 주식회사(이하 ‘한일건설’이라고 한다)는 시공사 겸 채무인수인 지위에서, 그리고 피고(하나은행)는 대주 지위에서 2008. 4. 15. 대출 및 사업약정을 체결하였고, 피고는 위 약정에 따라 2008. 4. 23. 케이티글로벌수빅에 이른바 PF대출의 방법으로 이 사건 개발사업에 필요한 자금 292억 5000만원을 대출하여 주었다.

(3) 원고는 삼일회계법인 및 안진회계법인(이하 ‘이 사건 회계법인들’이라고 한다)의 실사를 거친 후 2011. 6. 29. 피고와의 사이에 피고의 케이티글로벌수빅에 대한 위 대출채권(미상환원금 292억4952만1914원, 이하 ‘이 사건 대출채권’이라고 한다), 가지급금 및 그에 대한 담보권 등의 자산을 65억3734만1413원에 매수하는 내용의 이 사건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

[원고의 청구]

이 사건 매매계약 당시 이 사건 개발사업의 시행자인 케이티글로벌수빅의 이 사건 임차권이 박탈될 위험이 있음에도 피고가 원고에게 이를 고지하지 아니함으로써 원고를 기망하였다는 이유로 이 사건 매매계약을 취소하고 그 매매대금의 반환을 구함.

[원심(서울고등법원 2013. 11. 7. 선고 2013나36776 판결)의 판단 : 원고 청구 인용]

(1) SBMA가 2011. 6. 9. 케이티글로벌수빅에 보낸 문서(갑 제32호증)에는 ‘케이티글로벌수빅이 이 사건 개발사업을 위하여 5년 내에 미화 1억3000만 달러를 투자한다는 사항 등 케이티글로벌수빅이 SBMA와 체결한 이행증서(Deed of Undertaking)에 정한 약정사항들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SBMA가 이 사건 임차권 양도를 승인한 것을 취소하고 위약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또한 피고가 2011. 6. 24. 한일건설에 보낸 문서(갑 제5호증)에는 ‘2010년 5월 이후 이 사건 개발사업의 공사가 중단됨으로 인하여 SBMA의 수빅만 개발계획이 지연됨에 따라 SBMA가 임차권 박탈 등 제재조치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최근 탐문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에 의하면, 피고는 이 사건 매매계약의 체결 전에 이미 이 사건 임차권이 박탈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원고나 위 각 회계법인은 이 사건 매매계약 체결 전에 피고로부터 위 각 문서를 제공받지 못하였다.

(2) 원고로서는 피고가 제공하여 준 정보 내지 자료를 통하여서는 이 사건 임차권의 박탈가능성을 파악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러한 사정에 관하여 원고 스스로 확인할 의무가 있었다고 인정되지도 아니한다.

(3) 이 사건 대출채권의 상환자원은 케이티글로벌수빅이 이 사건 개발사업을 통하여 얻는 수익이므로 만약 케이티글로벌수빅이 이 사건 임차권을 박탈당하게 되면 이 사건 개발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게 되어 원고가 이 사건 대출채권을 회수할 가능성은 희박하여진다. 그러므로 이 사건 임차권이 박탈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이 사건 매매계약에 관한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 사건 매매계약 당시 위 각 회계법인은 이 사건개발사업이 계속 진행된다는 점을 전제로 이 사건 대출채권에 대한 가치평가를 하였고, 원고도 이를 전제로 이 사건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

(4) 위와 같은 제반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는 이 사건 매매계약 당시 신의칙상 부담하는 고지의무를 위반하여 이 사건 임차권 박탈의 위험을 고지하지 아니함으로써 원고를 기망하였다.

[대상판결(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3다97076 판결)의 판단 : 파기환송]

(1-1) ① 피고는 이 사건 매매계약 체결 전에 SBMA와 BLSP 사이의 임대차계약서(Master Lease Agreement) 및 BLSP의 케이티글로벌수빅에 대한 임차권양도계약서(Assignment Of Leasehold Right) 등 이 사건 임차권과 관련된 계약서 등의 자료를 원고 및 이 사건 회계법인들에 제공한 사실, ② BLSP와 SBMA 사이의 임대차계약서에는 ‘BLSP가계약 및 기타 임대인이 부과한 사항을 위반한 경우 SBMA는 계약을 언제든지 조기에 해지할 수 있고, BLSP가 일정한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 SBMA는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취지로 정하고 있는 사실, ③ 이 사건 매매계약 체결 전에 원고가 이 사건 회계법인들로부터 제공받은 각 실사보고서에는 (ⅰ) 시행사인 케이티글로벌수빅이 임차권 확보 후 공사를 진행하다가 시행사의 기한이익 상실 사유 발생 및 공사비 미지급 등으로 인하여 지하층 공사만 한 상태(공정률 26%)에서 2010년 5월경부터 장기간 공사가 중단된 상태이고, (ⅱ) 시행사의 채무불이행시 시공사인 한일건설이 사업권을 양수하는 데 대한 SBMA의 조건부 승인은 받은 상태이지만 시공사도 워크아웃 상태에 있어 사업권을 인수할 의향이 없으며, (ⅲ) 사업을 계속 진행하려면 500억원 내지 520억원의 추가 자금조달이 요구될 것으로 예상되고, (ⅳ) 케이티글로벌수빅은 현재 완전 자본잠식의 상황으로 채무변제능력은 회의적이라고 판단되며 자금 여력이 없어 추가 대출을 통한 자금지원 없이는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관계에 의하면, 원고는 이 사건 매매계약 당시 케이티글로벌수빅의 채무불이행과 공사 중단 등으로 인하여 이 사건 임차권이 박탈될 위험 및 그 경우 시공사의 사업권양수 등 예견되는 사태와 그에 따른 문제점을 비롯한 이 사건 개발사업의 위험성에 관하여 실사보고서 등을 통하여 이미 파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신규자금 투입 등에 의한 사업의 계속 진행으로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이 사건 대출채권에 대한 변제재원을 마련하게 할 의도를 가지고 이 사건 매매계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1-2) 원심은 이 사건 매매계약 당시 원고가 알지 못하였던 임차권 박탈의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한 상태였다는 근거로 앞서 본 SBMA가 2011. 6. 9. 케이티글로벌수빅에 보낸 문서(갑 제32호증)를 들고 있는 것으로 추단되나, 위 문서는 그 문언상으로도 케이티글로벌수빅이 이행증서(Deed of Undertaking)를 통하여 약정한 의무를 이행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그 불이행시의 불이익을 경고하는 내용에 지나지 아니하고, 이는 SBMA와 BLSP 사이의 임대차계약에서 임대인이 부과한 사항을 임차인이 위반한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등으로 정하고 있는 것을 구체적인 의무의 지적을 통하여 다시 강조하는 내용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 기록상 SBMA가 위 문서를 발송한 이후 현재까지 케이티글로벌수빅의 이 사건 임차권을 박탈하려고 하는 어떠한 조치를 취하였다고 볼 만한 자료를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케이티글로벌수빅의 이 사건 임차권은 현재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보태어 보면, 위 문서만을 가지고 이 사건 매매계약 당시 원고가 인식하고 있었던 것 이상으로 이 사건 임차권이 박탈될 새로운 위험이 발생한 상태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1-3) 원심은 피고가 이 사건 임차권이 박탈될 위험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원고에게 고지하지 아니하였다고 판단하였으나, 우선 기록을 살펴보아도 피고가 위 갑 제32호증 문서 및 거기에 언급된 이행증서의 각 존재에 관하여 알고 있었다고 볼 만한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위 이행증서는 증거로 제출되어 있지 아니하다).

(1-4) 결국, 이 사건 매매계약 당시 계약 당사자들이 파악하고 있었던 것 이상으로 이 사건 임차권이 박탈될 새로운 위험성이 발생한 상태였다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가사 그러한 위험성이 실제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그에 관하여 알고 있었다고 볼 수도 없는 이상, 원심이 인정한 것처럼 피고가 원고를 기망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2) 피고가 이 사건 매매계약 체결에 앞서 SBMA와 BLSP 사이의 임대차계약서 등 이 사건 임차권에 관한 자료들을 원고측에 전달함으로써 이 사건 임차권과 관련된 위험요소를 파악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 나아가 SBMA와 케이티글로벌수빅 사이에 이 사건 임차권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의무이행약정이 체결되었는지 여부와 그 내용 및 이행가능성 등을 직접 조사하여 원고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미리 탐지하고 이를 원고에게 고지하여야 할 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매매계약체결 과정에서 피고가 신의성실의 원칙상 요구되는 고지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의 의의]

계약체결 과정에서의 정보제공·설명의무는 종래 부동산매매(분양계약), 프랜차이즈계약, 투자거래, 의료계약 등과 같이 정보력과 전문성이 당사자 일방에 편중된 계약 형태에서 주로 문제되었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재산적 거래관계’ 일반에 통용되는 신의칙상 고지의무의 발생 요건을 설시하면서도, 당해 사건에서의 결론에 있어서는 고지의무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 대상판결 이전에 선고된 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59247 판결에서도, 라이선스사업을 영위하는 회사의 주식을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라이선스계약상의 해약조항의 존재를 알려주어야 할 신의칙상 의무가 있는지가 문제되었는데, 그러한 의무의 존재를 인정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원고가 이 사건 라이선스계약서를 피고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이 사건 주식양도 계약 체결에 앞서 라이선스권과 관련한 위험 요소를 파악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 외에 나아가 씨넥스트미디어와 미국 씨넷 사이에 체결된 이 사건 라이선스계약의 내용과 법률적 의미 등을 직접 조사하여 피고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미리 탐지하고 이를 피고들에게 알려야 할 의무까지 당연히 부담한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씨넥스트미디어 측이 피고들에게 이미 이 사건 라이선스계약서 사본을 제공한 이상 원고가 이와 별도로 피고들에게 이 사건 해약조항의 존재를 알리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원고가 신의성실의 원칙상 요구되는 고지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향후 대등한 당사자들 사이의 재산적 거래관계에 있어서 어떤 경우에 고지의무가 인정될지 지켜볼 일이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