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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노동
최상운 주제네바대표부 고용노동관  |  upluck@mof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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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호] 승인 2014.12.05  16: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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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노동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언뜻 생각해보면 “노동은 신성하다”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지만 곰곰이 다시 되짚어보면 내가 하고 있는 노동을, 아버지가 하셨던 노동을 신성시 했던 적보다는 고생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노동(labor(영), travail(프))의 어원을 찾아보면 속박과 고문이라고 한다. 프랑스어 travail의 어원은 라틴어 tri-pilium(3개의 말뚝)이고, 이 "세 개의 말뚝(tripilium)"은 소나 말한테 편자를 박을 때, 이들을 묶어 놓는 기구, 즉 말뚝을 의미한다고 한다. travail란 체형집행인이 죄인의 팔다리를 고문하는 것을 뜻하며, 라틴어 labor는 프랑스어 peine와 마찬가지로 노동(travail)과 고통(souffrance)을 의미한다고 한다. 인류 역사는 한편으로는 이러한 고통스런 노동이 신성하게 인식되도록 발전시켜 온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심지어 하느님도 힘든 노동으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하나님은 엿새 동안 창조과업을 마치고 이레 되는 날 쉬시며 이날을 복되고 거룩한 날로 정하셨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로부터 안식일이 유래하였고 안식일 정신은 노동으로부터의 쉼에 있다. 알고 보면 구약성서는 가장 오래된 근로기준법이며, 국제 노동기준인 셈이다.

이렇듯 노동은 그 속성이 힘들고 고단한 것이지만 노동의 형태 중에 인류에게 가장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며,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노동이 바로 강제노동(forced labor)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강제노동을 “어떠한 자가 처벌의 위협 하에 강요되고 또한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은 모든 노동 또는 서비스”라고 정의한다. 여기에는 노동력에 대한 착취뿐만 아니라 성에 대한 착취도 포함된다. 강제노동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어 고대로부터 노예와 죄수들이 주로 하여 왔다. 노예와 죄수들의 강제노동 외에 부역(賦役)으로서 병역의무와 요역(徭役) 등을 이유로 국가에서 일반 시민들에게 일정기간 강제노동을 시키기도 하였는데, 오늘날 노예제도와 요역은 공식적으로 사라졌으나 교도소의 강제노동과 병역의무로서의 강제노동은 합법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인류는 고대부터 강제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부단히 추구해왔으나 여러 가지 형태의 불법적인 강제노동이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인신매매에 의한 성적착취 및 노동착취, 채무노예제도, 소년병 징집, 앵벌이, 여권압수․추방위협에 의한 외국인노동자 착취 등이 현대의 불법적 강제노동의 대표적 형태들이다. 2012년의 ILO추계를 보면, 강제노동의 피해자는 세계적으로 2,100만 명에 달하고, 이로 인해 연간 약 1,500억 달러의 불법이익이 창출되고 있다고 한다.

강제노동과 관련하여 특히 주목할 점은 인류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조직적이며 가장 끔찍한 형태의 강제노동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루어졌고,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수백만 명의 우리민족이 그 끔찍한 강제노동에 속절없이 내몰렸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 중심에 일본군 위안부(Comfort Women) 및 전시 강제징용(wartime industrial forced labor) 피해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 독일은 1950년 국적과 거주지에 관계없이 전쟁 희생자를 위한 “연방원호법”을 제정, 지금까지 세계 80개국에 살고 있는 나치 피해자 및 희생자들에게 1,300억 마르크(72조원) 이상을 지불했다. 기업의 강제노동 피해자 등에 대한 책임도 인정, 정부와 기업이 참여한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라는 이름의 재단을 만들어 기금 25억 마르크(1조4,000억원)를 조성했다. 이와 반대로 일본은 과거에 대한 명확한 반성이나 배상 없이 군국주의의 부활을 상징하는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있으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배상과 사죄를 거부하며 인류양심에 도전하고 있다.

ILO는 “강제노동 협약(1930년)”과 “강제노동 폐지 협약(1957년)”을 통해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는데, ILO 협약은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상의 국제조약으로서, 이를 비준한 국가에 대해서는 국제법상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는 점에서는 일반적인 국제조약과 마찬가지이다. 일본은 강제노동 협약을 1932년 11월 21일 비준하였으므로, 위안부와 전시 강제징용 문제는 ILO에서 조약 위반의 문제로 다루어질 수가 있다. 강제노동 협약은 제1조와 11조에서 여성에 대한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으며, 14조와 15조에서 강제노동에 대한 보상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또한 25조에서는 강제노동을 강행한 책임자를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실제로는 “성노예제(sexual slavery)”로 위안소에서의 그들의 생활은 자율성, 이동의 자유, 성 활동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결여된 상태로 군인들의 감시 속에서 성적착취를 당했으며, 적절한 보수도 지급되지 않았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그만둘 수도 없는 명백한 노예제의 한 전형이다. 전시 강제징용은 군수물자의 증산을 위해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했던 일본정부가 점령국 노동자들을 광산이나 조선소 등으로 강제로 연행해서 불법적으로 강제노동을 시킨 것이다. ILO에서 일본의 강제노동 협약 위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은 총회 기준적용위원회(CAS)에서 노사그룹 합의 의제로 다루는 방안과 우리나라 노사단체가 ILO 이사회에 진정을 제기하는 방안, 그리고 우리나라가 강제노동 협약을 비준하고 일본을 강제노동 협약 위반으로 ILO에 직접 제소하는 방안의 세 가지가 있다. 우리나라는 공익근무제도로 인해 강제노동 협약을 비준하지 못하고 있다. 강제노동 협약은 순수한 군사적 노동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으나, 공익근무제도를 순수한 군사적 목적의 노동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방안에 대해서는 1995년부터 우리나라, 일본, 네덜란드 노조가 CAS 의제化를 지속 시도해왔으나 일본 노사단체의 애매한 태도로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강제노동 협약 위반에 대한 ILO에서의 대응은 이제 두 가지 방안이 남아 있다. 20명의 노동법 전문가로 구성된 ILO內 전문가위원회(CEACR)는 정기 보고서를 통해 위안부의 강제동원과 성적착취는 명백한 강제노동 협약 위반이며, 강제징용에 대해서도 일본정부의 적법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일관되게 제기하고 있다.

역사와 진리는 우리 편에 서 있으되 희생자의 연령을 생각해 볼 때 시간은 우리 편에 서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시급한 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남아 있는 두 가지 방안에 대해 우리나라 노사정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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