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접속(1997년)’은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당시로선 알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 즉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의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주인공이었던 한석규와 전도연의 앳된 모습보다 지금 들으면 그리워지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통신 연결음이 훨씬 기억에 남는다. 전화선을 이용한 모뎀으로 낯선 누군가에게 닿을 수도 있었던 그 시기를 우리는 PC통신의 시대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불과 2, 3년 후 한국땅을 뒤덮기 시작한 초고속통신망이 그것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기 전까지 PC통신의 열기는 현재의 한국 정보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보다 앞서 전자 단말기를 통한 소통의 세상을 체험한 나라는 프랑스였다. 1977년 아직 정보화라는 말이 잘 쓰이지도 않았던 시기에 대통령 지스카르 데스탱은 ‘사회정보화 보고서’가 제안한 비디오텍스 기반의 텔레마티크를 국가적 사업으로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정부보고서로서는 매우 드물게도 베스트셀러가 된 이 문건은 IT에 대한 사회적 주의를 환기시켰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회가 본격적인 정보사회로 전환한다는 사실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1982년 본격적으로 미니텔 상용화를 시작한 프랑스 우체국은 우리나라의 하이텔 단말기와 비슷한 모양의 단말기를 무료로 보급하고 콘텐츠 프로바이더에게 번호를 부여했다. 전화번호 검색, 금융서비스, 기차예약, 사회보장제도 이용, 공공정보를 비롯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던 미니텔의 성공 덕택에 프랑스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정보화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누렸다.

미니텔의 기술자들은 크고 비싸서 가정용으로 보급하기는 불가능했던 당시의 컴퓨터 대신에 스크린과 전화선에 연결된 전자박스형 키보드만을 가지고 대규모 데이터를 온라인에서 처리하는 기술의 미래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당시의 네트워크는 중앙집중형으로 프랑스 체신부가 유일한 통신 오퍼레이터로 등장하고 데이터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서버에 접속하면 이 서버가 액세스 프로바이더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이용자 역시 체신부에 접속한 이후에 개별 호스트 서버에 접속할 수 있었다. 이처럼 개별 서버들 간의 상호연결을 막아놓은 시스템, 그리고 접속체계의 중앙집중적 속성은 당연하게 액세스 코드를 제공하는 프랑스텔레콤의 독점적 지위, 그리고 불법적 콘텐츠를 막는다는 명목의 검열적 내용규제로 이어졌다.

당시 프랑스 정부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통신 영역에서 기술적, 문화적 독립성 확보였고 둘째는 과거 전화망 보급 실패를 만회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화적 독립성이란 미국에 대한 종속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프랑스 정부는 미니텔이 인터넷보다 더 쉽다고 주장하고 인터넷은 위험한 반면 미니텔은 안전하다는 레토릭을 구사하기도 했다. 이러한 태도는 지구적 규모의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로 성장하고 있었던 월드와이드웹 시대에 인터넷 플레이어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였고 세계 최초의 소셜네트워킹과 온라인 공론장의 형성, 그리고 전자상거래에 대한 비즈니스 모델 제시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넷의 역사 속에서 미니텔의 실패를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사실상 월드와이드웹의 완승으로 끝났기 때문에 미니텔 자체에 대한 평가가 박할 뿐 아니라 프랑스 밖에서는 그 경험을 되짚는 일조차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모든 국민이 정보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통신 보편주의에 기초했던 당시의 프랑스 통신정책은 오늘날의 보편적 접근권 개념의 기초를 제공했다. 또 공공독점을 통한 단말기 보급사업이 단시간 내에 기술적 후진성을 극복하고 국민들을 정보화의 길로 안내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신호음이 연결음으로 바뀌는 것에 환호하던 ‘접속’의 시대로부터 이십년 가까이 흐른 지금 초연결사회를 목전에 둔 세계는 이제 연결의 질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사람-사물-장소를 망라한 네트워킹의 고밀화 및 고속화는 사회의 성찰성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있으며 연결의 양과 속도에만 집중하고 연결의 질을 고려하지 않는 네트워크 만능주의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그동안 정보화를 리드해온 한국 역시 새로운 정보화의 비전을 고민하면서 더 나은 연결, 더 좋은 정보화를 통해 미래사회의 가치를 창조하는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프랑스 미니텔의 경험은 따라서 단순한 네트워크의 실패가 아닌 초연결사회로의 전환점에서 꼭 기억해야 할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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