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된 사실관계]
(1) 원고는 2011. 3. 16. 소외 1과 사이에, 원고가 소외 1명의 계좌에 4억원을 입금하여 소외 1이 동액 상당의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하되, 그에 따른 예금계좌 개설 및 예금잔액증명서 발급 등의 업무는 모두 원고가 대리하여 처리하고, 예금잔액증명서 발급 후 원고가 직접 위 계좌에서 4억원을 인출하는 방식으로 이를 회수하기로 약정하였다. 소외 1은 이에 따라 원고에게, 4억원에 대한 차용증서와 함께 은행업무에 필요한 인감증명서, 위임장 등을 교부하는 한편, 위 예금계좌에 입금된 금원에 관하여 어떠한 권리도 없고 현금인출을 하지 아니하며 비밀번호 등 예금계좌의 모든 정보를 임의로 변경하지 아니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기재된 각서 등을 작성·교부하였다.

(2) 원고는 같은 날 15:40경 피고 2가 지점장으로 있는 피고 은행 노대동 지점에서 소외 1을 대리하여 소외 1 명의로 이 사건 예금계좌를 개설하고 4억원을 입금한 후 동액 상당의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받았다. 피고 2는 당시 원고의 부탁에 따라 다음날 아침 이 사건 예금계좌에서 4억원을 인출하여 원고 명의 계좌로 입금해 주기로 하였고, 이에 따라 원고로부터 소외 1명의 예금통장과 출금전표(원고가 이 사건 예금계좌 개설 당시 설정한 비밀번호가 기재되어 있었다), 원고 명의 입금전표 등을 교부받았다.

(3) 그런데 소외 1은 같은 날 16:20경 피고 은행 여의도문화지점에서 인터넷뱅킹을 신청하고, 그 다음날인 2011. 3. 17. 08:16경 인터넷뱅킹으로 3회에 걸쳐 임의의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비밀번호 오류입력 제한횟수를 초과시킴으로써 정당한 비밀번호에 의하더라도 예금인출을 할 수 없도록 한 후 08:40경 피고 은행 서서울농협 홍대역지점에서 예금주 자격으로 비밀번호를 변경하였다.

(4) 피고 2는 원고와의 약속에 따라 2011. 3 17. 08:30경 이 사건 예금계좌에서 4억원을 인출하려 하였으나 비밀번호 입력오류로 인출에 실패하였고, 즉시 원고에게 전화하여 이 사실을 알렸다. 원고는 피고 2에게 ‘비밀번호를 제대로 기재하였는데,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다’면서 이 사건 예금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요청하였으나, 피고 2는 ‘이 사건 예금계좌의 예금주가 소외 1이므로 원고의 요청만으로는 지급정지를 할 수 없고, 비밀번호 입력오류 발생에 대한 진상파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였다.

(5) 원고가 다시 피고 2에게 전화하여 이 사건 예금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요청하던 중 인터넷뱅킹을 이용한 계좌이체 방식으로 08:43경 소외 2명의 국민은행 계좌로 1억원이, 08:44경 소외 3명의 중소기업은행 계좌로 1억원이 각 이체되었다(이하 소외 2, 3명의 위 각 계좌를 ‘이 사건 상대예금계좌’라고 한다). 이에 피고 2는 추가적인 자금이체를 막기 위하여 08:44경 이 사건 예금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등록하였다.

(6) 원고는 같은 날 08:50경 피고 은행 노대동지점을 찾아가 위와 같이 2억원이 이체된 사실을 확인한 후 피고 2에게 이 사건 상대예금계좌는 범죄에 이용된 계좌이니 국민은행 등에 대하여 지급정지를 요청해 달라고 하였다. 피고 2는 위와 같은 자금이체가 타 금융기관에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는 사유인 금융사고 발생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다가, 같은 날 09:28경 및 09:29경 해당 은행에 전화하여 지급정지를 요청하였으나, 이 사건 상대예금계좌에 이체된 2억원은 09:07경 이미 인출된 상태였다. 원고는 그 후 소외 1로부터 변경된 비밀번호를 알아내어 2011. 3. 21. 이 사건 예금계좌에 남아 있던 잔액을 인출, 회수하였다.

(7) 피고 은행의 예금거래기본약관은 거래처로부터 통장·도장·카드 등의 분실·도난·멸실·훼손 신고가 접수되었을 경우 신고인이 거래처 본인임을 확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마친 뒤에 재발급하거나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피고 은행이 가입되어 있는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공동협약 등은 금융기관은 금융사고로 다른 금융기관에 자금이 이체된 경우 다른 금융기관에 그 이체된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금융사고의 하나로 횡령, 배임, 절도 등 범죄혐의가 있는 경우를 들고 있다.

[원고의 청구]
(1) 주위적 청구 : 이 사건 예금거래에 있어서 피고 은행과 원고 사이에서는 소외 1이 아닌 원고에게 이 사건 예금에 대한 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 예금의 거래당사자는 원고라고 할 것이므로, 피고 농협은행은 원고에게 이 사건 예금 중 아직 반환받지 못한 2억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

(2) 예비적 청구 : 원고가 소외 1 명의의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받을 목적으로 소외 1의 대리인으로서 그 명의의 예금계좌를 개설하고 위와 같이 개설된 예금계좌에 4억원을 입금한 다음, 피고 2에게 다음날 즉시 이 사건 예금계좌로부터 4억원을 인출하여 자신이 지정하는 예금계좌에 입금하여 달라는 요청을 하였고 피고 2가 이를 수락하였으므로, 피고 2로서는 만약 위 예금이 원고의 의사에 반하여 제3자에게 이체되는 경우에는 이에 대하여 즉시 지급정지조치를 취하여야 함에도, 피고 2는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였다. 또한 원고가 피고 은행의 예금거래기본약관 제14조에 따라 피고 2에게 이 사건 예금계좌에 관한 범죄사고 발생을 알리고 그 지급정지를 요청하였으므로 피고 2로서는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공동협약 등에 따라 지체없이 이 사건 예금계좌의 지급정지조치를 취하고, 국민은행 및 중소기업은행의 각 예금계좌에 대해 지급정지를 요청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 2가 즉시 지급정지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그 의무의 이행을 해태하였다. 이로써 원고는 2억원의 손해를 입었는바, 피고 2는 불법행위자로서, 피고 은행은 피고 2의 사용자로서 각자 원고에게 위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원심(광주고등법원 2012. 11. 21. 선고 2011나5089 판결)의 판단]
주위적 청구를 기각하고 예비적 청구를 인용하였다.

(1) 주위적 청구 : 원고와 피고 은행 사이에,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서면으로 이루어진 소외 1과의 예금계약을 부정하고 자금 출연자인 원고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이 사건 예금계좌의 예금주가 원고임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주위적 청구는 이유 없다.

(2) 예비적 청구 : 피고 2는 원고로부터 지급정지 등 요청을 받았을 때 즉시 필요한 조치를 취하였어야 함에도(금융사고발생의 의심이 드는 경우 일단 지급정지요청을 하고, 만약 원고와 소외 1 사이의 예금반환청구권의 소재에 관한 다툼이 있으면 업무처리절차에서 정한 바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상당하다) 뒤늦게 이 사건 예금계좌에 지급정지를 등록하고 국민은행 등에 이 사건 상대예금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요청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무단 인출의 피해가 발생하였으므로, 예비적 청구는 이유있다.

[대상판결(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3다2504 판결)의 판단]
예비적 청구에 관한 원심의 판단 부분을 아래와 같은 이유로 파기·환송하였다.
(1) 이 사건 예금계약의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소외 1이고, 원고는 소외 1이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소외 1과 사이에 체결한 금전소비대차계약 등에 따라 자금을 출연하는 한편, 소외 1의 자금 유용을 막고 이를 안전하게 회수하기 위하여 소외 1을 대리하여 이 사건 예금계약을 체결한 후 그 예금통장 등을 지배·관리하면서 입·출금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2) 원고는 예금주인 소외 1의 대리인이 아니라 예금주 본인 내지 자금 출연자의 지위에서 자신이 출연한 자금을 안전하게 회수하기 위해 피고 2에게 지급정지조치를 요청하였다고 할 것인 바, 원고가 이 사건 예금계좌의 예금주에 해당하지 아니함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은행거래기본약관에서 정한 지급정지조치는 예금주의 예금반환청구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므로, 피고 2는 자금 출연자에 불과한 원고의 지급정지 요구에 따라야 할 법적인 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

(3) 이 사건 예금계좌에 입금된 자금의 출연자이자 이를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고 있던 원고의 의사에 반하여 비밀번호가 변경되고 자금 이체가 이루어진 이상 모종의 범죄행위가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을 의심해 볼 수는 있을 것이나,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공동협약 등에서 정한 다른 금융기관에 대한 지급정지요청이 금융거래에 미칠 파장 등에 비추어 이러한 의심만으로 곧바로 지급정지요청을 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고, 원고는 어디까지나 예금주인 소외 1의 대리인에 불과하고 당시로서는 비밀번호 입력오류나 자금이체 경위 등이 불분명한 상황이므로, 피고 2로서는 원고가 주장하는 금융사고 발생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좀 더 사실관계 등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었다고 할 것인데, 피고 2가 비밀번호 입력오류를 인지한 때로부터 이 사건 상대예금계좌에서 2억 원이 인출되기까지의 37분이라는 시간은 이러한 조사, 확인을 거쳐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기에는 너무 촉박하여서 피고 2가 국민은행 등에 대한 지급정지요청을 지연하였다고 볼 것도 아니다.

(4) 원심은 피고 2가 일단 지급정지 등을 한 후 만일 원고와 소외 1 사이에 예금반환청구권의 소재에 관한 다툼이 있으면 관련 절차에 따라 처리하였어야 한다고 하고 있으나,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금융기관은 출연자가 누구이고 출연자와 예금명의자의 내부관계가 어떠한지에 구애받음이 없이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전제하여 제반 법률관계를 처리하는 것이 원칙인 점, 지급정지조치 등은 자칫 정당한 예금주의 권리행사에 불측의 장애를 안겨 줄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금융기관이 지급정지 등을 하기 전에 어느 정도 사실관계를 조사,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보아야 한다.

(5) 이러한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의 경우 피고 2가 원고의 요구에 따른 지급정지조치 등을 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하는 바람에 원고에게 2억원의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이 사건의 의의]
대상판결은 금융실명제 하에서 원칙적으로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본다는 기존 대법원 판결(대법원 2009. 3. 19. 선고 2008다45828 전원합의체 판결)의 입장을 확인하면서, 이러한 법리를 기초로 하여, 예금명의자와 출연자 등 사이에 분쟁이 있을 경우 금융기관으로서는 그들 사이의 내부관계를 알았는지에 관계없이 일단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전제하여 예금거래를 처리하면 원칙적으로 적법하다는 법리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대법원의 위 (3), (4)항의 설시에 비추어 볼 때, 구체적 사실관계 여하에 따라서는 금융기관의 지급정지 조치의 지연이 자금출연자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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