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는 있다, 없다?
전관예우는 법조계의 뿌리깊은 고질병이다. 그 근절방안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이 문제에 대한 토론회에서 법원 관계자는 ‘전관예우는 없고 전관박대는 있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지난 7월에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관예우에 대한 설문조사결과, 설문에 응한 1101명의 변호사 중 89.5%(985명)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대답했다.

전관예우가 심하게 발생하는 영역으로는 검찰수사단계와 형사 하급심 재판이 꼽혔다. 전관예우에서 ‘예우’를 하는 곳으로 지목되는 법원이나 검찰에서는 ‘예우는 절대 없다’고 하는데도, 변호사들이 다들 ‘있다’고 하는 것은 아직은 그 말이 현장에서 제대로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일 게다.

사실, 전관예우의 존부에 대한 판단은 법조계가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 맡기는게 옳다. 시민들이 ‘전관예우는 없다’고 믿고, 그래서 아무리 절박한 사건에 직면하더라도 굳이 거금을 싸들고 ‘전관’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될 때, 비로소 이 땅에서 고질적인 전관예우는 사라졌다고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면, 법원과 검찰에서 아무리 ‘없다’고 강조해도, ‘전관예우’ 또는 ‘전관예우의 폐단’은 살아 있다고 봐야한다.

백약이 무효인 전관예우 근절책
설문조사결과 변호사들이 꼽은 ‘전관예우가 심하게 발생하는 영역’은 검찰수사단계와 형사 하급심 재판이다. 이것을 좀 더 단순화시켜 보면, ‘구속’이란 단어가 추출된다. 수사와 공판의 전 과정에서 당사자의 최대의 관심사는 바로 ‘구속’이라는 뜻이다. 인신을 구속당하는 순간, 당사자는 순식간에 그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고 싶어진다. 구속이 되면, 멀쩡히 잘 다니고 있던 직장생활이 끝장나기 십상이고, 가족들과도 생이별이다. 한마디로 날벼락을 맞는 것이다. 전관예우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이다. 어떻게든 풀려날 방도를 모색하기 위해 ‘나를 구속한 검사’, 또는 ‘나를 재판하는 판사’와 가까이 지내던 전임 검·판사였던 변호사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어디선가 나타나는 브로커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한다’는 심경에서 ‘전관’ 변호사에게 거액을 덥석 바치게 된다. 그렇게 변호사가 선임되더라도, 그가 석방될 수도 있고 석방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것이 ‘전관예우’가 작동되는 전형적인 경로다.

전관예우의 뇌관을 제거하자
‘구속’은 사람을 고립무원 상태로 빠뜨리는 것이 된다. 법률상 불구속수사·재판이 원칙이지만, 현실적으로 상당한 범죄혐의가 주어지기만 하면 ‘구속’을 걱정해야 하는 게 현실이고, 구속과 동시에 피의자는 ‘고립무원’ 상태에 빠지게 된다.

수사기관은 ‘구속해 놓아야만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다’고 믿는지, 웬만한 사건에서는 구속영장청구를 주저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일단 구속시켜 놓은 후, 범죄혐의를 자백 받으려는 경향까지 느껴진다. 구속기간이 길어질수록 피의자는 ‘일단 석방되고 보자’는 생각이 앞서게 되어 정당한 방어권행사를 포기하게 되기도 한다. 구속상태에서는 어떤 변호사를 선임하더라도 진정한 무기평등이 보장된다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과연 ‘불구속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 변호사인 나도 좀체 믿기 어렵다.

‘전관예우’에서, ‘예우’가 작동되는 곳은 바로 형사피의자의 인신구속 처리에서다. 사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이 문제를 피해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관예우를 없애려면, 바로 그 ‘예우’가 작동되는 원인 내지 뇌관이 제거되어야 한다. 웬만하면 불구속상태로 수사하고, 예외적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더라도 어떤 변호사가 변론하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사회에 미치는 위험성 때문에 도저히 석방할 수 없거나, 도주 또는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특별한 사정이 보이는 경우가 아닌 한, 곧 일정한 보석금납부를 조건으로 석방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영장재판은 지금처럼 단순히 구속이나 석방이냐를 판단하는 데서 벗어나, 필요적 보석이나 조건부 석방을 논의하는 자리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전관’이든 아니든 변호사가 개입하고 소정의 보석금을 납부하기만 하면 즉시 석방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가 자리잡기만 한다면, 굳이 석방시킬 방도를 찾기 위해 돈 보따리를 싸들고 ‘전관’을 찾아다닐 이유도 없어질 것이고, 그로써 ‘전관예우’는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전관예우의 원인이 되는 인신구속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수사기관은 고통스럽겠지만, 구속수사의 유혹을 버려야 한다. 물증을 먼저 확보하고, 자백은 나중에 받겠다는 태도로 인식을 전환하고, 제대로 과학수사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