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2. 5. 17. 선고 2009도6788 판결

1. 사실관계
가. 피고인 A, B는, 공소외 D가 공소외 E에게 지급해야 할 조합장선거 홍보비용에 대하여, 피고인 E 회사와 공소외 G가 ‘강북권일대 단독주택 재건축 현지조사 용역’이라는 허위의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그 대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가장한 후, 위 용역계약금 명목의 금원을 공소외 G에게, 공소외 G는 공소외 E에게 각 금원을 송금하여 공소외 D가 공소외 E에게 지급할 선거운동 홍보요원 활동비 채무를 면하게 함으로써 공소외 D로 하여금 동액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하는 방법으로 공소외 D에게 부정한 청탁에 의한 재산상 이익을 공여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되었다.

나. 검사는, 위 공소사실과 관련된 피고인 E 회사 내지 임직원의 행위에 관하여 피고인 E 회사가 공소외 K 법무법인으로부터 받은 동 법무법인 소속 공소외 I 변호사가 작성한 의견서(이하 ‘이 사건 의견서’)를 제1심 법정에 증거로 신청하였다. 그러자 피고인들과 변호인은 이 사건 의견서를 범죄인정의 자료로 제출 및 사용하는 것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여 위법하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공소외 K 법무법인 소속 I 변호사는 제1심 법정에 출석하였으나 이 사건 의견서에 관하여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지는 아니하였다.

다. 이와 관련하여 제1심 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2008. 10. 9. 선고 2007고합877 판결)은, 이 사건 의견서는 법정에서 작성자인 공소외 K 법무법인 소속 I 변호사에 의하여 성립의 진정이 인정되지 아니하였으므로 증거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변호인-의뢰인 특권에 따라 의뢰인인 피고인 5 회사가 이를 증거로 사용함에 동의한 바 없는 이상 작성자인 변호사에 의하여 성립의 진정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압수절차의 위법 여부와 관계없이 의뢰인인 피고인들에 대하여 그 범죄사실을 인정할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결국 제1심 법원은 이 사건 의견서 등을 제외한 그 밖의 증거들만으로는 위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위 공소사실에 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라. 이에 검사는, 현행법상 명문의 규정이 없는 변호인-의뢰인 특권을 근거로 이 사건 의견서의 증거능력을 부인하고 증거로 채택하지 않은 제1심 판결에는 법리를 오해하여 변호인의 변호권의 범위를 과다하게 인정한 위법이 있다는 등 이유로 위 무죄 부분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원심 법원(서울고등법원 2009. 6. 26. 선고 2008노2778 판결)은 제1심이 변호인-의뢰인 특권을 근거로 이 사건 의견서 등의 증거능력을 부인한 조처는 타당하다고 보아 검사의 이 부분 항소이유 주장을 배척하였다. 이에 검사가 다시 불복함으로써 이 부분 공소사실은 상고심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2. 대상판결의 요지
가. [다수의견] 형사소송법 제314조는 “제312조 또는 제313조의 경우에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진술을 요하는 자가 사망·질병·외국거주·소재불명,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는 그 조서 및 그 밖의 서류를 증거로 할 수 있다. 다만, 그 진술 또는 작성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한다”라고 정함으로써, 원진술자 등의 진술에 의하여 진정성립이 증명되지 아니하는 전문증거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는 사유로 ‘사망·질병·외국거주·소재불명,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를 들고 있다. 위 증거능력에 대한 예외사유로 1995. 12. 29. 법률 제5054호로 개정되기 전의 구 형사소송법 제314조가 ‘사망, 질병 기타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2007. 6. 1. 법률 제8496호로 개정되기 전의 구 형사소송법 제314조가 ‘사망, 질병, 외국거주 기타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라고 각 규정한 것에 비하여 현행 형사소송법은 그 예외사유의 범위를 더욱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직접심리주의와 공판중심주의의 요소를 강화하려는 취지가 반영된 것이다. …(중략)… 위와 같은 현행 형사소송법 제314조의 문언과 개정 취지, 증언거부권 관련 규정의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법정에 출석한 증인이 형사소송법 제148조, 제149조 등에서 정한 바에 따라 정당하게 증언거부권을 행사하여 증언을 거부한 경우는 형사소송법 제314조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대법관 안대희의 반대의견] 형사소송법 제314조는 작성자 또는 원진술자의 법정진술에 의하여 진정성립이 증명되지 아니한 서류라도 일정한 경우 증거로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규정으로서,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제한함으로써 형사소송의 지도이념인 실체적 진실발견을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데 그 목적과 취지가 있다. 따라서 위 규정의 ‘진술을 요하는 자가 사망·질병·외국거주·소재불명,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라 함은 서류의 작성자 또는 원진술자가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출석할 수 없는 경우는 물론이고 법정에 출석하더라도 그로부터 해당 서류의 진정성립에 관한 진술을 들을 수 없는 경우도 널리 포함한다고 해석하여야 한다. 증인이 사망·질병·외국거주·소재불명 등인 때와 법정에 출석한 증인이 증언거부권을 행사한 때는 모두 증거신청자인 검사의 책임 없이 해당 서류의 진정성립을 증명할 수 없게 된 경우로서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하여 전문법칙의 예외를 인정할 필요성의 정도에서 차이가 없다.

나. 원심이 이른바 변호인·의뢰인 특권에 근거하여 위 의견서의 증거능력을 부정한 것은 적절하다고 할 수 없으나, 위 의견서의 증거능력을 부정하고 나머지 증거들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결론은 정당하다.

3. 대상판결의 해설
가. 증인이 증언을 거부한 경우가 형사소송법 제314조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 해당하는지

대상판결에서 ‘이 사건 의견서’는 본질상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의 전문증거로서 ‘피고인이 아닌 자가 작성한 진술서’이다. 따라서 형사소송법 제313조만 놓고 보면, 변호사가 작성한 법률의견서로서 그 서명날인이 있는 것은 공판준비나 공판기일에서 작성자인 변호사의 진술에 의하여 성립의 진정함이 증명된 때에는 증거로 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K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I는 법정에 출석하여 이 사건 의견서의 성립진정을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따라서 이 사건 의견서는 형사소송법 제313조에 의하여서는 전문법칙의 예외로서 증거능력을 획득하지 못한다.

문제는 이 사건 의견서에 관하여 형사소송법 제314조를 적용하여 증거능력을 인정할 것인가이다. 동법 제314조는 “제312조 또는 제313조의 경우에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진술을 요하는 자가 사망·질병·외국거주·소재불명,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는 그 조서 및 그 밖의 서류를 증거로 할 수 있다. 다만, 그 진술 또는 작성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바, 원진술자나 작성자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형사소송법에 따라 정당하게 증언거부권을 행사하여 증언을 거부한 경우를 동조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 포함하여 볼 수 있느냐가 쟁점이다.

대상판결은 제314조의 개정 전 문언과 개정 후 문언이 다름에 주목하였다. 1995. 12. 29. 법률 제5054호로 개정되기 전의 구 형사소송법 제314조가 ‘사망, 질병 기타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로, 2007. 6. 1. 법률 제8496호로 개정되기 전의 구 형사소송법 제314조가 ‘사망, 질병, 외국거주 기타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라고 각 규정한 반면, 2007. 6. 1. 법률 제8496호로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원진술자 등의 진술에 의하여 진정성립이 증명되지 아니하는 전문증거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는 사유로 ‘사망·질병·외국거주·소재불명,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를 들고 있다. ‘기타 사유’라고만 규정되어 있던 문언이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라고 변경된 부분이 눈에 띈다. 죄형법정주의 원리상 형벌 관련 조문의 규정과 형식은 문언에 의해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기타 사유’라는 문언은 비교적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반면, ‘그에 준하는 사유’라는 문언은 앞에 열거한 사유들에 준하는 사유로 그 의미를 한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법칙의 예외사유를 더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향으로 개정한 것이다. 다수의견은 이 점에 주목하여 원진술자 또는 작성자가 증언을 거부한 사유는 형사소송법 제314조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 해당되지 아니하므로 이 사건 의견서는 증거능력이 없음을 확인하였다.

나. 변호인-의뢰인 특권을 인정할 것인지
원심판결까지는 변호인-의뢰인 특권을 인정하여 이 사건 의견서의 증거능력을 배척한 반면, 대상판결은 “헌법과 형사소송법 규정의 내용과 취지 등에 비추어 볼 때, 아직 수사나 공판 등 형사절차가 개시되지 아니하여 피의자 또는 피고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는 사람이 일상적 생활관계에서 변호사와 상담한 법률자문에 대하여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내용으로서 그 비밀의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의뢰인의 특권을 도출할 수 있다거나, 위 특권에 의하여 의뢰인의 동의가 없는 관련 압수물은 압수절차의 위법 여부와 관계없이 형사재판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견해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겠다”라고 판시하여 영미법계 국가에서 유래된 변호인-의뢰인 특권의 존재를 정면으로 부정하였다.

따라서 대상판결에 따르면 만일 이 사건 의견서의 작성자인 I 변호사가 법정에서 그 진정성립을 인정하였을 경우 위 의견서는 증거능력을 인정받았을 것이고, 수사기관이 이 사건 법률의견서의 내용을 확인한 후 그 작성 경위와 기재 내용에 관하여 신문한 각 검찰 조서도 증거능력이 인정되었을 것이다. 결국 대상판결에 의하면 변호인-의뢰인 특권은 입법의 재량 또는 선택의 영역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다.

4.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비록 변호인-의뢰인 특권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증인이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바에 따라 정당하게 증언거부권을 행사하여 증언을 거부한 경우 제313조에 의해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형사소송법 제314조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도 해당하지 않으므로 그 조서 및 그 밖의 서류를 증거로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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