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2. 9. 13. 선고 2012도7461 판결

1. 기초사실
가. 피고인은 ○○광역시△구청장으로서, 피고인의 형제들인 B, C의 명의로 피해자 D 조합을 상대로 손실보상금청구소송(이하 ‘이 사건 소송’이라고 함)을 제기한 후, 사실상 승소가능성이 없는 이 사건 소송에서 임의조정 제도를 악용하여 마치 원고의 승소가능성이 높아 피고와 원만히 합의에 이른 것처럼 가장하는 방법으로 D 조합으로부터 거액을 지급받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피고인은 2010년 12월 14일 △구청장실에서 이 사건 소송의 실제 당사자가 피고인이라고 생각하고 피고인을 찾아온 D 조합의 장인 피해자 A에게 D 조합이 △구□□동 외 2필지 위에 있던 피고인 명의의 건물을 피고인 동의 없이 철거한 점을 들어 “이에 대해 구청장이 고발하면 A는 구속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겁을 주는 외에 수차례에 걸쳐 피해자 A를 공갈하여 이에 겁을 먹은 A로 하여금 그 직후 인천지방법원 1112호 조정실에서 ‘피해자 D 조합이 B, C에게 13억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으로 조정합의하도록 하였다.

나. 한편 피해자 A는 D 조합이 추진하고 있던 □□지구토지구획정리사업이 △구청으로부터 관련 공사 허가 등을 받지 못하게 되자 위 2010년 12월 14일 △구청장실로 피고인을 찾아가게 된 것인데, 피고인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으로부터 부당한 요구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미리 디지털 녹음기를 준비하여 피고인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 대화내용을 모두 디지털 녹음기로 피고인 몰래 녹음하였다. A는 디지털 녹음기의 용량에 제한이 있었던 관계로 피고인과의 대화를 녹음한 후 자신의 사무실로 바로 돌아와 디지털 녹음기에 저장된 녹음 원본파일을 컴퓨터에 복사하는 대신 디지털 녹음기의 원본파일은 삭제한 후, 다시 위 디지털 녹음기로 피고인과의 다음 대화를 녹음하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다. 이후 피고인에 대한 수사가 개시되었고, A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컴퓨터에 복사된 위 녹음 음성파일의 사본을 검찰에 제출하였다. 수사한 결과, 검사는 피고인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공갈)죄의 혐의가 있다고 보아 기소하였다.

2. 제1심과 원심의 재판 경과
가. 검사는 제1심 법원에 피고인과 A 사이의 대화를 녹음한 각 녹음 음성파일의 사본을 증거로 신청하였다. 그러자 피고인은 위 각 녹음 음성파일은 디지털 녹음기에 저장된 녹음파일 원본으로부터 컴퓨터에 복사된 사본에 불과하고, 사후에 편집되었거나 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제1심 법원(인천지방법원 2012. 2. 22. 선고 2011고합863 판결)은 위 각 녹음 음성파일 사본이 원본은 아니지만, A가 위 각 녹음 음성파일은 자신과 피고인 사이의 대화를 자신이 직접 녹음한 것을 그대로 컴퓨터에 복사한 사본이라고 진술한 점, 피고인 역시 검찰 또는 법정에서 위 각 녹음 음성파일 사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일부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진술한 대로 녹음되어 있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 대검찰청 과학수사담당관실에서 위 각 녹음 음성파일 사본에 대하여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여러 가지 분석방법으로 장기간 정밀감정한 결과 편집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판정한 점 등을 종합하여 그 복사과정에서 편집되는 등 인위적인 개작 없이 원본의 내용 그대로 복사되어 대화자들이 진술한 대로 녹음된 것으로 인정되고, 피고인의 위 진술에 허위개입의 여지가 거의 없어 모두 증거능력이 있다고 보아 피고인의 위 주장을 배척하고 유죄를 선고하였다.

나. 제1심 판결에 대해 피고인이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원심 법원(서울고등법원 2012. 6. 7. 선고 2012노747 판결)도 제1심과 마찬가지로 피고인과 A 사이의 대화가 녹음된 이 사건 녹음 음성파일 사본은 그 복사과정에서 편집되는 등 인위적인 개작 없이 원본 내용 그대로 복사되어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시하여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고 항소를 기각하였다. 이에 피고인이 다시 불복하여 이 사건은 상고심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2. 대상판결의 요지
가. 녹음테이프에 녹음된 대화 내용 중 피고인의 진술 내용은 실질적으로 형사소송법 제311조, 제312조의 규정 이외에 피고인의 진술을 기재한 서류와 다름없어, 피고인이 녹음테이프를 증거로 할 수 있음에 동의하지 않은 이상 녹음테이프에 녹음된 피고인의 진술 내용을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 단서에 따라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 작성자인 상대방의 진술에 의하여 녹음테이프에 녹음된 피고인의 진술 내용이 피고인이 진술한 대로 녹음된 것임이 증명되고 나아가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하여진 것임이 인정되어야 한다.

나. 대화 내용을 녹음한 파일 등 전자매체는 성질상 작성자나 진술자의 서명 또는 날인이 없을 뿐만 아니라, 녹음자의 의도나 특정한 기술에 의하여 내용이 편집·조작될 위험성이 있음을 고려하여, 대화 내용을 녹음한 원본이거나 원본으로부터 복사한 사본일 경우에는 복사과정에서 편집되는 등의 인위적 개작 없이 원본의 내용 그대로 복사된 사본임이 증명되어야 한다.

다. 이 사건의 경우 A가 디지털 녹음기로 피고인과의 대화를 녹음한 후 저장된 녹음파일 원본의 복사 과정에서 편집되는 등의 인위적 개작 없이 원본 내용 그대로 복사된 것으로 대화자들이 진술한 대로 녹음된 것이 인정되며, 녹음 경위, 대화 장소, 내용 및 대화자 사이의 관계 등에 비추어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하여진 것으로 인정된다.

3. 대상판결의 해설
가. 문제의 제기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스마트폰, 태블릿PC, 디지털 녹음기 등 디지털 기기들은 녹음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디지털 기기들이 널리 유포되기 전에는 녹음테이프에 녹음을 저장하는 아날로그 방식의 녹음 기기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아날로그식 음성녹음의 증거능력에 관하여 여러 대법원 판결들(대법원 1997.03.28 선고 96도2417 판결, 대법원 2005.12.23 선고 2005도2945 판결 등)이 축적되어 온바 녹음테이프의 증거능력 인정 요건은 어느 정도 정형화 및 정립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위에서 열거한 디지털 방식의 녹음 기기들은 아날로그 방식의 녹음 기기와는 그 작동원리에 있어 그 차이점이 크다. 아날로그(analog)는 음성을 송수신함에 있어 모든 시간대에 대하여 연속적인 값을 갖는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반면, 디지털(digital)은 음성을 송수신함에 있어 아날로그 신호를 클럭(clock)이라는 단위를 기준으로 자르는바 그 결과 불연속적인 값이 된 전기신호를 2진법의 숫자인 0과 1로 바꾸어 부호 형태로 전달한다. 자연계의 데이터를 얼마나 촘촘하게 자르느냐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디지털 정보는 불연속적이라는 점에서 연속적인 아날로그 정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문제는 형사 증거법의 시각에서, 디지털 정보의 일종인 디지털 녹음파일을 아날로그 녹음테이프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는가에 있다. 변호인 입장에서는 위에서 본 디지털 정보의 속성(불연속성)상 디지털 녹음파일의 편집 ·조작 위험성이 더 많다는 점, 따라서 아날로그적인 분석방법만으로는 원본과의 동일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주장을 제기해봄직 하다.

나. 디지털 증거로서 녹음파일의 증거능력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2005. 12. 23. 선고 2005도2945 판결, 2007. 3. 15. 선고 2006도8869 판결 등에서 디지털 증거로서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에 관하여 판시를 해왔으나, 그 판시내용들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한 녹음테이프의 증거능력에 관한 것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대상판결도 녹음파일의 증거능력과 관련하여 “대화 내용을 녹음한 파일 등의 전자매체는 그 성질상 작성자나 진술자의 서명 또는 날인이 없을 뿐만 아니라, 녹음자의 의도나 특정한 기술에 의하여 그 내용이 편집, 조작될 위험성이 있음을 고려하여, 그 대화 내용을 녹음한 원본이거나 원본으로부터 복사한 사본일 경우에는 복사과정에서 편집되는 등의 인위적 개작 없이 원본의 내용 그대로 복사된 사본임이 입증되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을 뿐, 녹음테이프의 증거능력과 디지털 증거로서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의 이동(異同)에 관하여 특별히 고민한 흔적은 나타나 있지 않다. 어쨌든 대상판결에 의하면, (피고인이 그 녹음테이프를 증거로 할 수 있음에 동의하지 않은 이상) 녹음파일에 녹음된 피고인의 진술 내용을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 단서에 따라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 그 작성자인 상대방의 진술에 의하여 녹음테이프에 녹음된 피고인의 진술 내용이 피고인이 진술한 대로 녹음된 것임이 증명되고 나아가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하여진 것임이 인정되기만 하면 증거능력은 있게 된다.

다. 디지털 증거로서 녹음파일의 무결성, 동일성 요건의 검토
한편 대법원은 “압수물인 컴퓨터용 디스크 그 밖에 이와 비슷한 정보저장매체(이하 ‘정보저장매체’라고만 한다)에 입력하여 기억된 문자정보 또는 그 출력물(이하 ‘출력 문건’이라 한다)을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보저장매체 원본에 저장된 내용과 출력 문건의 동일성이 인정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보저장매체 원본이 압수 시부터 문건 출력 시까지 변경되지 않았다는 사정, 즉 무결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특히 정보저장매체 원본을 대신하여 저장매체에 저장된 자료를 ‘하드카피’ 또는 ‘이미징’한 매체로부터 출력한 문건의 경우에는 정보저장매체 원본과 ‘하드카피’ 또는 ‘이미징’한 매체 사이에 자료의 동일성도 인정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용한 컴퓨터의 기계적 정확성, 프로그램의 신뢰성, 입력·처리·출력의 각 단계에서 조작자의 전문적인 기술능력과 정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하여 원본 매체와 이미징한 매체 그리고 출력물 간의 자료 동일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무결성’을 명시하고 있다(대법원 2013. 7. 26. 선고 2013도2511 판결).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에 따르면, 정보저장매체인 디지털 녹음기기에 저장된 녹음파일의 경우에도 디지털 녹음기 원본이 압수된 때부터 녹음파일을 재생하여 청취하는 방법으로 증거조사 할 때까지 변경되지 않았다는 사정, 즉 ‘무결성’이 담보되어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디지털 녹음기기도 정보저장매체라는 점, 그 기기에 저장된 파일이 디지털 증거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르지 않다면, 자료의 동일성을 인정하기 위한 전제로서 ‘무결성’ 요건도 똑같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추후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4.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디지털 증거로서 녹음파일도 녹음테이프와 같은 조건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판시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