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4. 8. 20. 선고 2011도468 판결, 2014. 8. 26. 선고 2012도14654 판결

Ⅰ. 서론

2011년 3월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 여부와 관련하여 선고된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11. 3. 17. 선고 2007도482 전원합의체 판결, 이하 ‘전원합의체 판결’이라고 한다)은 1990년대 형성된 단결 금지 법리의 폐지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평가받았다.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법원은 파업의 위력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해당성의 판단 기준으로 ①파업의 전격성, ② 심대한 혼란 또는 막대한 손해를 새로 내세웠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호했지만, 종전의 판례 법리, 즉 파업이 원칙적으로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주체·목적·수단과 방법 등이 모두 적법할 때에만 그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법리는 폐기되었다고 평가되었다.

그런데 2009년 철도 파업에 대해 내려진 대법원 2014. 8. 20. 선고 2011도468 판결과 대법원 2014. 8. 26. 선고 2012도14654 판결은 이러한 평가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의문을 갖게 한다. 평석 대상 판결을 보고선 떠오른 의문은 “충분히 대비한 파업이라 하더라도 예측하지 못한 경우가 있을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 아래 그 판결 요지를 살펴보고,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의와 평석 대상 판결에서 법원이 사용자의 예측가능성을 판단한 방식을 검토하도록 하겠다.

Ⅱ. 판결 요지

2009년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제1차 및 제2차 파업과 관련하여 검찰은 노동조합 위원장 등 간부들을 업무방해죄로 기소하였다. 이에 대해 항소심의 판단은 엇갈렸는데, 대법원은 모두 유죄 취지로 판결하였다. 아래에서는 대법원 2014. 8. 26. 선고 2012도14654 판결의 관련 판단을 인용한다.

“위 사실관계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임금 수준 개선 등의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볼 수는 없을지라도 그 경위나 전개 과정 등으로 미루어 위 순환파업과 전면파업은 공동투쟁본부가 정한 일정과 방침에 맞추어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 반대 등 구조조정 실시 그 자체를 저지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었음이 뚜렷이 드러나는 점, (…) 덧붙여 사업장의 특성상 업무의 대체가 용이하지 않아 한국철도공사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점 등을 종합할 때, 공중의 일상생활이나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필수공익사업을 영위하는 한국철도공사로서는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위와 같은 부당한 목적을 위하여 순환파업과 전면파업을 실제로 강행하리라고는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평가함이 타당하고, 비록 그 일정이 예고되거나 알려지고 필수유지업무 종사자가 참가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나아가 위 피고인들이 관여하여 전국적으로 진행된 순환파업과 전면파업으로 말미암아 다수의 열차 운행이 중단되어 거액의 영업수익 손실이 발생하고 열차를 이용하는 국민의 일상생활이나 기업의 경제활동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적지 않은 수의 대체인력이 계속적으로 투입될 수밖에 없는 등 큰 피해가 야기된 이상, 이로써 한국철도공사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과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결국 이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위 순환파업과 전면파업은 사용자인 한국철도공사의 사업 계속에 관한 자유의사를 제압·혼란하게 할 만한 세력으로서,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Ⅲ. 단순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 법리

전원합의체 판결은 모든 파업이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종전 판례 법리를 폐지하고 “쟁의행위로서의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전후 사정과 경위 등에 비추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 집단적 노무제공의 거부(단순 파업)가 위력에 해당하여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함으로써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을 제한할 수 있는 법리를 제시했다.

전원합의체 판결이 파업의 업무방해죄 성립 여부와 관련하여 채택한 견해는 흔히 제한적 구성요건해당설의 입장, 즉 ‘파업은 일정한 요건 하에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렇게 법원이 전격성을 요구하는 것은 사용자의 조업의 자유와의 조화를 꾀한 것이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근로자들이 파업을 한다고 하여 사용자에게 조업을 중단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는 파업 기간 중에도 여전히 조업(操業)의 자유를 갖는다. 다만, 사용자의 조업의 자유는 노동3권을 보장한 헌법 규정과 조화를 이룰 때에만 허용된다. 이와 같이 사용자의 조업의 자유와 근로자의 파업권을 조화하기 위하여 노동조합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이라 한다) 제43조 제1항은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당해 사업과 ‘관계있는’ 자를 대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세운 전격성이란 사용자에게 이러한 대체근로를 준비할 여유가 있어야 파업권의 행사가 적법하다는 뜻이다.

그 밖에도 노동조합법에는 공익과 근로자의 파업권을 조화하는 제도가 있다. 필수유지업무 제도가 그것이다. ‘필수유지업무’라 함은 필수공익사업의 업무 중 그 업무가 정지되거나 폐지되는 경우 공중의 생명·건강 또는 신체의 안전이나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업무를 말한다(노동조합법 제42조의2 제1항). 필수유지업무의 정당한 유지·운영을 정지·폐지 또는 방해하는 행위는 쟁의행위로서 이를 행할 수 없다(노동조합법 제42조의2 제2항).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내세운 전격성과 필수유지업무 제도는 그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차이가 있지만, 법익을 보호하는 방법은 같다.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국철도공사의 주요 사업인 철도사업은 노동조합법상 필수공익사업에 해당한다. 이렇게 어떤 사업이 필수공익사업에 속할 경우 아래와 같은 점 때문에 해당 기업의 조업 가능성은 높아진다.

첫째, 필수공익사업에 해당한 경우에 노동관계 당사자는 쟁의행위 기간 동안 필수유지업무의 정당한 유지·운영을 위하여 필수유지업무의 필요 최소한의 유지·운영 수준, 대상직무 및 필요인원 등을 정한 협정(필수유지업무협정)을 서면으로 체결하여야 한다(노동조합법 제42조의3). 그리고 필수유지업무협정이 체결되지 아니하는 때에는, 노동위원회에 그와 같은 내용을 정하는 결정을 신청해야 한다(노동조합법 제42조의4). 필수유지업무 제도에서 해당 기업과 노동조합은 그 파업 전후에 걸쳐 구체적인 필수유지업무의 범위와 필요인원의 선정 등을 위한 협의를 거치곤 한다.

둘째, 필수공익사업에 대해서는 대체근로 역시 폭넓게 인정된다. 필수공익사업의 사용자는 쟁의행위 기간 중에 당해 사업과 관계있는 자뿐만 아니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있다(노동조합법 제43조 제3항). 다만, 대체근로를 무제한으로 허용할 경우 단체행동권을 실질적으로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필수공익사업에서 허용되는 대체근로는 파업 참가 근로자의 50%로 제한된다(노동조합법 제43조 제4항).

Ⅳ. 대비했지만 예측하지 못한 파업은 범죄인가

첫째, 2009년 철도 파업의 경우, 한국철도공사는 단체교섭 과정을 통해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의 시기와 방법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2009년 11월 4일자 보도자료에서 한국철도공사는 제1차 파업과 관련하여 파업 대비 비상수송대책 본부가 운영되고 열차 운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제2차 파업과 관련해서도 11월 20일경 이미 비상수송대책이 시행되고 내부 지원 인력에 대한 인사명령도 완료되어 있었다. 즉, 파업 당시 한국철도공사는 필수유지업무의 필요인원 및 대체인력을 이용해 철도를 계속 운행하기 위한 충분한 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파업 당시 한국철도공사의 대비 상황과 전격성 여부에 대한 판결의 판시 사항을 종합하면, 결국 2009년 철도 파업은 “대비됐지만 예측할 수 없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과연 이것을 어떤 사실에 대해 법관이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 해석 범위 안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일반적인 생각의 순서는 예측이 우선하고 대비가 그에 따른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그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둘째, 평석 대상 판결에서 전격성을 판단한 방식은 그동안 파업과 관련하여 법원이 보여준 태도와 상반된다. 법원은 구조조정의 실시에 반대하는 파업과 관련하여 그 목적은 실질적 기준에 입각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실질적으로’ 구조조정의 실시를 반대한다고 함은 비록 형식적으로는 민영화 등 구조조정을 수용한다고 하면서도 결과적으로 구조조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하는 요구조건을 내세움으로써 실질적으로 구조조정의 반대와 같이 볼 수 있는 경우도 포함한다는 것이다(대법원 2006. 5. 12. 선고 2002도3450 판결).

그런데 평석 대상 판결에서 법원은 사용자의 예측가능성을 평가할 때 이와 어긋나는 방식을 선택했다. 실질적 관점에서 사용자가 파업을 예측할 수 있었는지를 살피는 것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한국철도공사 관계자의 진술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관계자의 진술, 파업 전후에 한국철도공사가 생산한 문서 등 제반 자료를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평석 대상 판결에서 대법원은 한국철도공사가 이미 파업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여러 자료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근거를 제시하지 아니한 채 그 예측가능성을 부정하였다.

이렇듯 파업이라는 동일한 국면에서 근로자측과 사용자측에 대해 상반되는 태도를 취한 것은, 법원이 노사 중 어느 한쪽에 대한 선호를 가지고 있다고 추측되거나 중립성을 의심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난 9월 26일 한국노동법학회와 서울시립대 법학연구소가 ‘쟁의행위와 책임’이란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학회에 참가한 외국 노동법 학자들은 파업 근로자를 형벌의 대상으로 삼고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위기였다. 예컨대 독일의 볼프강 도이블러 교수는 “법학자들과 판사들 간에 토론이 이뤄지는 분위기인가” 등의 질문을, 영국의 키스 유잉 교수는 “학계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노동기준을 사회에 알려야 하지 않나”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 사회와 법원이 단결 금지 법리에 대해 정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평석 대상 판결이 우리나라의 단결 금지 법리의 폐지라는 역사적 순리를 거스르는 걸림돌이 되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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