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2. 10. 11. 선고 2012도7455 판결

1. 사실관계

가. 검사는 피고인들이 이적단체인 ‘범민련 남측단체’에 가입하고, 상호 공모하여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통신·연락하거나, 반국가단체의 대남선전선동 활동에 동조하며 같은 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제작·반포하였다는 공소사실 등으로 피고인들을 기소하였다.

나. 검사가 기소하기 전, 수사기관은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에 설치된 공소외 OO주식회사 등의 인터넷 전용선에 대한 감청 및 착·발신지 추적(IP 추적 포함)을 통해 전기신호 형태로 흐르는 패킷을 감청(이하 ‘패킷 감청’)하였다. 검사는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수사기관이 위와 같이 패킷 감청하여 수집한 증거들을 제1심 법정에 제출하였다.

다. 이에 대해 피고인들은, ‘패킷 감청’은 감청대상자와 무관한 제3자의 통신내용이나 수사목적과 무관한 통신내용까지 무제한적으로 감청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피고인들의 통신 및 대화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패킷 감청을 통하여 수집된 증거들은 위법수집증거로서 피고인들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라.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제1심 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2011. 12. 22. 선고 2009고합731 판결)은 ① 인터넷 전용선을 통하여 흐르는 전기신호 형태의 패킷도 통신비밀보호법 제2조 제3호 소정의 ‘전기통신’에 포함되므로 통신제한조치의 요건을 구비한 경우에는 인터넷 전용선(패킷)에 대한 통신제한조치도 허용되는 점, ② 패킷감청의 경우 특정 전자우편이나 회원제정보서비스 등에 대하여 통신제한조치를 하는 것에 비하여는 다소 포괄적 집행이 이루어질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나 수사기관에서 대상자가 이용하는 전자우편을 사전에 모두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고 특히 타인 명의로 가입한 전자우편이나 외국에 서버를 둔 전자우편이나 수사기관에 비협조적인 조직의 전자우편을 사용할 경우 이에 대한 통신제한조치가 사실상 곤란하게 될 우려가 있으므로 현실적인 필요성이 인정되는 점, ③ 패킷감청의 경우 대상자와 무관한 제3자의 통신내용이나 수사목적과 무관한 통신내용도 감청될 우려가 있으나, 이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화나 팩스에 대한 감청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위와 같은 이유만으로 패킷감청 자체가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고, 위와 같은 문제는 법원이 인터넷 전용선에 대한 통신제한조치 허가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통신제한조치의 필요성과 그 소명 정도 및 그로 인하여 발생가능한 국민의 통신비밀에 대한 침해를 비교형량하여 신중한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그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이 사건에서 수사기관이 법원의 허가를 얻어 인터넷 전용선에 대한 통신제한조치를 집행한 것은 적법하다고 판시하였다. 결론적으로 피고인들의 위 주장을 배척하고 수사기관이 패킷 감청으로 수집한 증거들을 채택하였으며, 피고인들에 대하여 유죄 판결을 선고하였다.

마. 피고인들은 항소하였으나, 원심 법원(서울고등법원 2012. 6. 8. 선고 2012노82 판결)도 제1심 법원의 판결에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여 제1심의 판단을 유지하였다. 이에 피고인들이 재차 불복하여 이 사건은 상고심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2. 대상판결의 요지

가. 통신비밀보호법 제2조 제3호에 의하면 ‘전기통신’이라 함은 전화·전자우편·회원제정보서비스·모사전송·무선호출 등과 같이 유선·무선·광선 및 기타의 전자적 방식에 의하여 모든 종류의 음향·문언·부호 또는 영상을 송신하거나 수신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같은 법 제5조 제1항에 의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죄 등 일정한 범죄를 계획 또는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어려운 경우 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전기통신의 감청 등 통신제한조치를 할 수 있다. 인터넷 통신망을 통한 송·수신은 같은 법 제2조 제3호에서 정한 ‘전기통신’에 해당하므로 인터넷 통신망을 통하여 흐르는 전기신호 형태의 패킷을 중간에 확보하여 그 내용을 지득하는 이른바 ‘패킷 감청’도 같은 법 제5조 제1항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는 경우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된다고 할 것이고, 이는 패킷 감청의 특성상 수사목적과 무관한 통신내용이나 제3자의 통신내용도 감청될 우려가 있다는 것만으로 달리 볼 것이 아니다.

나.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이 사건 패킷 감청이 법원으로부터 통신제한조치 허가서를 발부받아 적법하게 집행되었으므로 위법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 나아가 이 사건 패킷 감청을 통하여 수집된 자료가 증거로 제출된 바 없음은 피고인들도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고, 원심판결 이유 및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패킷 감청을 통하여 파생된 자료가 증거로 제출되거나 원심의 유죄 인정의 증거로 채택되었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그것이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이 배제되어야 한다는 이 부분 상고이유는 어느 모로 보나 받아들일 수 없다.

3. 대상판결의 해설

가. 패킷도 통신비밀보호법 제2조 제3호 소정의 ‘전기통신’에 포함되는지

대상판결에서 중심이 되는 패킷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인터넷에서의 통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의 전신(前身)은 미-소 냉전시대에 핵전쟁으로 인한 파괴라는 공포를 계기로 하여 개발된 아파넷(ARPANet)이라 할 수 있다. 아파넷은 커다란 재앙이 발생하더라도 통신이 단절되지 않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였는데, 그 결과 개개 컴퓨터들이 통신회선을 통하여 중·대형의 중앙(호스트) 컴퓨터에 접속하는 통신망 구성방식(중앙집중형 네트워크 방식)보다는, 상호 접속되어 있는 개개 컴퓨터들을 호스트가 되게 하여 수많은 컴퓨터들을 그물망처럼 얽고 이로써 이용자가 어떤 곳에서도 목적하는 호스트에 접속할 수 있게 하는 통신망 구성방식(‘분산형’ 네트워크 방식)이 적합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나아가 데이터를 동일한 경로로 쭉 전달하는 방식이 아닌, 데이터를 패킷이라는 최소 단위로 쪼개어 이를 통신망의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른 경로를 통해 보낸 뒤 목적지에 다다라 다시 온전한 데이터로 재구성하는 전달 방식인 ‘패킷 전송망 방식’을 택하여 위 분산형 네트워크 방식을 뒷받침하게 하였다. 이로써 인터넷은 분산형 네트워크, 패킷 전송망 방식이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요컨대 패킷이란 인터넷에서 전송하기 쉽도록 데이터를 잘게 쪼갠 데이터의 전송단위로서 전기신호 형태로 흐르는 것을 말한다.

통신비밀보호법 제2조 제3호의 ‘전기통신’에 인터넷 통신망을 통한 데이터의 송·수신이 포함됨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데이터를 잘게 쪼갠 패킷의 송·수신도 통신비밀보호법 제2조 제3호의 ‘전기통신’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대상판결은 이 점을 명시하였다.

나. 패킷 감청을 허용할 것인지

패킷이 송·수신이 통신비밀보호법 제2조 제3호의 ‘전기통신’에 해당한다면 그것의 감청도 허용할 것인가? 위에서 보았다시피 패킷 전송망 방식은 데이터를 잘게 쪼개어 이를 각각 다른 접점으로 최종 목적지에 다다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청 대상자의 패킷만 딱 집어내어 감청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 따라서 패킷 감청은 감청 대상자와 무관한 일반인들의 통신도 감청 범위에 일부 포함되는 결과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고, 이에 패킷 감청의 적법성과 한계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상판결은 “인터넷 통신망을 통한 송·수신은 같은 법 제2조 제3호에서 정한 ‘전기통신’에 해당하므로 인터넷 통신망을 통하여 흐르는 전기신호 형태의 패킷을 중간에 확보하여 그 내용을 지득하는 이른바 ‘패킷 감청’도 같은 법 제5조 제1항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는 경우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된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여 수사기관의 패킷 감청을 허용하였다. 대상판결은 이 점을 분명히 한 데에도 그 의의가 있다.

다. 패킷 감청 허용의 한계

대상판결은 패킷 감청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지 즉 패킷 감청의 허용 한계와 관련하여 원심판결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외에 자세히 적시하지는 않고 있다. 따라서 원심판결을 살펴본바 판결이유를 보면 패킷 감청의 허용 여부와 관련하여 제1심에서 거시한 “④ 본건의 경우 피고인 2는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에서 북한공작원 공소외 1과 지속적으로 통신·연락을 주고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송수신한 이메일을 그 직후 삭제하는 등의 방식으로 증거를 인멸하여 패킷감청을 통한 증거수집의 필요성은 큰 반면, 본건 패킷감청은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에 설치된 인터넷 전용선만을 그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수사목적과 무관한 통신비밀의 침해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은 점”을 원용하여 제1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을 두고 대상판결의 취지가 패킷 감청을 일반적으로 허용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상판결과 원심판결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패킷 감청을 허용할 수는 있되 그것은 영장주의와 비례원칙에 의거하여 제한적으로 허용된다는 취지로 읽히기 때문이다. 대상판결은 피고인이 공소외인과 지속적으로 통신하면서 송·수신한 이메일을 즉시 삭제하여 인멸한다는 사정(필요성)과 패킷 감청의 대상으로 피고인의 사무실에 설치된 인터넷 전용선으로 한정하여 통신비밀의 침해가능성이 크지 않은 점(비례성)을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고 있다.

한편, 대상판결은 “나아가 이 사건 패킷 감청을 통하여 수집된 자료가 증거로 제출된 바 없음은 피고인들도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고, 원심판결 이유 및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패킷 감청을 통하여 파생된 자료가 증거로 제출되거나 원심의 유죄 인정의 증거로 채택되었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그것이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이 배제되어야 한다는 이 부분 상고이유는 어느 모로 보나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는데, 동 판시 내용을 반대해석하면 패킷 감청을 통해 수집된 자료나 그로부터 파생된 자료가 증거로 제출되었을 경우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이 배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리게 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상판결에 의할 경우 패킷 감청이 허용될지 여부는 일률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개개의 구체적인 사안에서 여러 가지 사정들을 종합하여 비례원칙에 따라 결정할 일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4.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패킷 감청’이 허용되는지, 허용된다면 어느 선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제시한 최초의 판결이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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