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3. 7. 26. 선고 2013도2511 판결

1. 사실관계

가. 검사는 피고인들에 대하여 국가보안법위반(반국가단체의구성등)을 위반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하면서, 피고인들로부터 압수한 컴퓨터용 디스크, USB 그 밖에 이와 비슷한 정보저장매체(이하 ‘정보저장매체’)로부터 피고인들이 북한 「225국」으로부터 민심동향 자료 및 각종 군사 관련 자료를 입수하여 보내오는 임무를 받고 지령을 수수하였고, 「전국연합」, 「한총련」 등 각 단체의 내부 동향을 탐지·수집한 다음 「왕재산」 명의로 ‘보고서’ 제하 대북보고 문건을 작성하여 정보저장매체에 저장하는 등 그 목적수행을 위하여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한 사실 등을 확인하고 위 압수한 정보저장매체들과 그 출력 문건들을 법정에 증거로 제출하였다.

나. 이에 대해 피고인들은, 압수된 정보저장매체들에 대한 압수·수색 집행 과정을 촬영한 동영상을 검증해야만 그 저장매체들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들의 ‘무결성’이 입증되는데,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는 그와 같은 절차를 밟지 아니하였으므로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담당한 수사관들의 증언이나 당초 압수·수색 현장에 없었고 국가정보원에서 주도하는 검증절차에 참여한 공소외인들의 증언들만으로는 정보저장매체의 무결성(보관의 연속성)과 원본에 저장된 내용과 원본에서 출력한 이 사건 출력문건의 동일성이 입증되었다고 할 수 없고, 따라서 그러한 정보저장매체에 저장되어 있던 자료를 출력한 문건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원심(서울고등법원 2013. 2. 8. 선고 2012노805 판결)은,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이 공소외 1의 회사 사무실 또는 피고인들의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을 집행할 당시 피고인들 혹은 가족, 직원이 참여한 상태에서 각 정보저장매체를 압수한 다음 참여자의 서명을 받아 봉인한 점, 국가정보원 사무실에서 일부 정보저장매체에 저장된 자료를 ‘이미징’ 방식으로 복제할 때 피고인들 또는 위 전문가들로부터 서명을 받아 봉인상태 확인, 봉인 해제, 재봉인한 점, 이들은 정보저장매체 원본의 해쉬 값과 ‘이미징’ 작업을 통해 생성된 파일의 해쉬 값이 동일하다는 취지로 서명하였던 점 등을 종합하여 “공판에 증거로 제출된 출력 문건들은 압수된 정보저장매체 원본에 저장되었던 내용과 동일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정보저장매체 원본이 문건 출력 시까지 변경되지 않았다고 인정할 수 있으므로 그 출력 문건들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피고인들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라. 이에 피고인들이 항소하여 이 사건은 상고심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2. 대상판결의 요지

가. 압수물인 컴퓨터용 디스크 그 밖에 이와 비슷한 정보저장매체에 입력하여 기억된 문자정보 또는 그 출력물을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보저장매체 원본에 저장된 내용과 출력 문건의 동일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나. 이를 위해서는 정보저장매체 원본이 압수 시부터 문건 출력 시까지 변경되지 않았다는 사정, 즉 무결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다. 특히 정보저장매체 원본을 대신하여 저장매체에 저장된 자료를 ‘하드카피’ 또는 ‘이미징’한 매체로부터 출력한 문건의 경우에는 정보저장매체 원본과 ‘하드카피’ 또는 ‘이미징’한 매체 사이에 자료의 동일성도 인정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용한 컴퓨터의 기계적 정확성, 프로그램의 신뢰성, 입력·처리·출력의 각 단계에서 조작자의 전문적인 기술능력과 정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대법원 2007. 12. 13. 선고 2007도7257 판결 등 참조).

라. 이 경우 출력 문건과 정보저장매체에 저장된 자료가 동일하고 정보저장매체 원본이 문건 출력 시까지 변경되지 않았다는 점은, 피압수·수색 당사자가 정보저장매체 원본과 ‘하드카피’ 또는 ‘이미징’한 매체의 해쉬(Hash) 값이 동일하다는 취지로 서명한 확인서면을 교부받아 법원에 제출하는 방법에 의하여 증명하는 것이 원칙이다.

마. 그러나 그와 같은 방법에 의한 증명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는, 정보저장매체 원본에 대한 압수, 봉인, 봉인해제, ‘하드카피’ 또는 ‘이미징’ 등 일련의 절차에 참여한 수사관이나 전문가 등의 증언에 의해 정보저장매체 원본과 ‘하드카피’ 또는 ‘이미징’한 매체 사이의 해쉬 값이 동일하다거나 정보저장매체 원본이 최초 압수 시부터 밀봉되어 증거 제출 시까지 전혀 변경되지 않았다는 등의 사정을 증명하는 방법 또는 법원이 그 원본에 저장된 자료와 증거로 제출된 출력 문건을 대조하는 방법 등으로도 그와 같은 무결성·동일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할 것이며, 반드시 압수·수색 과정을 촬영한 영상녹화물 재생 등의 방법으로만 증명하여야 한다고 볼 것은 아니다.

3. 대상판결의 평석

가. 디지털 저장매체로부터 출력한 문건의 증거능력

대상판결 이전에 대법원은 ‘일심회’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디지털 저장매체로부터 출력한 문건의 증거능력에 관하여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사건은 디지털 증거에 관한 리딩 케이스라 할 수 있는데, 동 사건에서 대법원은 “압수물인 디지털 저장매체로부터 출력된 문건이 증거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디지털 저장매체 원본에 저장된 내용과 출력된 문건의 동일성이 인정되어야 할 것인데, 그 동일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저장매체 원본이 압수된 이후 문건 출력에 이르기까지 변경되지 않았음이 담보되어야 하고 특히 디지털 저장매체 원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디지털 저장매체 원본을 대신하여 디지털 저장매체에 저장된 자료를 ‘하드카피’·‘이미징’한 매체로부터 문건이 출력된 경우에는 디지털 저장매체 원본과 ‘하드카피’·‘이미징’한 매체 사이에 자료의 동일성도 인정되어야 한다. 나아가 법원 감정을 통해 디지털 저장매체 원본 혹은 ‘하드카피’·‘이미징’한 매체에 저장된 내용과 출력된 문건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용된 컴퓨터의 기계적 정확성, 프로그램의 신뢰성, 입력·처리·출력의 각 단계에서 조작자의 전문적인 기술능력과 정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07.12.13. 선고 2007도7257 판결). 위 판시 내용을 분석하면 압수물인 정보저장매체로부터 출력된 문건이 증거로 사용되기 위한 요건들이 도출된다. 그 요건으로는 첫째, 정보저장매체 원본이 압수된 이후 문건 출력에 이르기까지 변경되지 않았을 것, 둘째, 정보저장매체 원본 대신 그 저장 자료를 ‘하드카피’·‘이미징’한 매체로부터 출력한 문건의 경우, 정보저장매체 원본과 ‘하드카피’·‘이미징’한 매체 간에 자료도 동일할 것, 셋째, 정보저장매체 원본 혹은 ‘하드카피’·‘이미징’한 매체에 저장된 내용과 출력된 문건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용된 컴퓨터의 기계적 정확성, 프로그램의 신뢰성, 입력·처리·출력의 각 단계에서 조작자의 전문적인 기술능력과 정확성이 담보되어야 할 것을 각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①정보저장매체 원본과 그 이미지(파일만 논리적으로 복사한 게 아니라, 비트스트림 방식으로 저장매체의 물리적 데이터 전체를 저장한 것) 그리고 출력 문건의 동일성, ②동일성 확인에 이용된 컴퓨터의 성능, ③이미징 및 분석 프로그램의 신뢰성, ④컴퓨터 조작자의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중 하나라도 흠결하였을 경우,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이 인정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

나. 대상판결의 의의

위 ‘일심회’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보았듯이 디지털 증거 및 그것에서 출력한 문건이 증거능력을 인정받으려면 엄격한 동일성, 진정성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그렇다면 그 심사는 과연 어느 정도로까지 엄격해야 할까? 반드시 피압수·수색 당사자가 정보저장매체 원본과 ‘하드카피’ 또는 ‘이미징’한 매체의 해쉬(Hash) 값이 동일하다는 취지로 서명한 확인서면을 교부받아 법원에 제출하는 방법에 의하여야만 하는 것인가? 피압수·수색 당사자가 확인 서명을 거절하는 사례가 앞으로 점차 많아질 것임이 분명하므로 이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일심회’ 사건 판결이유에서 ㉠국가정보원에서 피고인들 혹은 가족, 직원이 입회한 상태에서 정보저장매체를 압수하고 입회자의 서명을 받아 봉인한 점, ㉡각 디지털 저장매체에 저장된 자료를 조사할 때 피고인들 입회하에 피고인들의 서명무인을 받아 봉인 상태 확인, 봉인 해제, 재봉인한 점, ㉢이러한 전 과정을 모두 녹화한 점, ㉣각 디지털 저장매체가 봉인된 상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송치된 후 피고인들이 입회한 상태에서 봉인을 풀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이미징 작업을 한 점[정보저장매체 원본의 해쉬(Hash) 값과 이미징 작업을 통해 생성된 파일의 해쉬 값이 동일한 사실 확인], ㉤제1심 법원이 피고인들 및 검사, 변호인이 입회하에 검증을 실시하여 이미징 작업을 통해 생성된 파일의 내용과 출력된 문건에 기재된 내용이 동일함을 확인한 점을 각 거시하였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위 ㉠에서 ㉤까지의 모든 절차를 빠짐없이 이행하고 준수해야만 법원으로부터 무난하게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에 따라서는 위의 절차들을 전부 이행하기 어렵거나 급박한 사유로 필요불가결하게 누락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들까지 ㉠~㉤의 절차들의 준수를 경직되게 요구할 경우 실체진실 발견이라는 대명제의 달성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실체진실 발견과 인권 보장이라는 형사소송법의 대명제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사안에 따른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위 일심회 판결의 주요요지를 인용하면서도, 한 발 더 나아가 “그와 같은 방법에 의한 증명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는, 정보저장매체 원본에 대한 압수, 봉인, 봉인해제, ‘하드카피’ 또는 ‘이미징’ 등 일련의 절차에 참여한 수사관이나 전문가 등의 증언에 의해 정보저장매체 원본과 ‘하드카피’ 또는 ‘이미징’한 매체 사이의 해쉬 값이 동일하다거나 정보저장매체 원본이 최초 압수 시부터 밀봉되어 증거 제출 시까지 전혀 변경되지 않았다는 등의 사정을 증명하는 방법 또는 법원이 그 원본에 저장된 자료와 증거로 제출된 출력 문건을 대조하는 방법 등으로도 그와 같은 무결성·동일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할 것이며, 반드시 압수·수색 과정을 촬영한 영상녹화물 재생 등의 방법으로만 증명하여야 한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하였다. 반드시 피압수·수색 당사자의 확인서면(정보저장매체 원본과 ‘하드카피’ 또는 ‘이미징’한 매체의 해쉬 값이 동일하다는 취지로 서명한 서면)을 교부받아 법원에 제출하는 방법이 아니더라도, 정보저장매체 원본에 대한 압수·수색 일련의 절차에 참여한 수사관이나 전문가 증언에 의하여서도 동일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대상판결은 이 점에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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