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삼승 변호사님의 ‘수상록, 우리나라가 아직 사법선진국이 아니라는 결정적 징표’라는 글과 이에 대한 김사일 변호사님의 ‘양삼승 변호사님께’라는 글, 김하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검사를 위한 변론’을 읽고, 판사와 변호사 활동을 50년 이상 한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기도 하고 또 귀찮지만 말하여야 할 의무도 있는가 하는 생각에서 필자의 견해를 간단히 적어봅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이고, 사람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법이 지배하는 법치국가입니다. 그리고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 보장을 위하여 국가 권력을 국회, 행정부, 법원(일부는 헌법재판소)에 분리시켜 행하는 점은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똑같습니다.

법원은 사법권의 담당자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할 책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헌법 제12조 동례 27조) 공동생활에는 반드시 수반되는 법적인 분쟁의 판단자인바, 법원이 법원의 책무를 엄정하고, 정의롭게 수행하게 하기 위하여는 법원의 중심에 있는 법관의 독립이 절대적이므로,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103조)고 선언하고,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헌법106조)로 신분 보장을 하여 법관의 업무에 대한 일체의 간섭, 즉 행정부를 비롯하여 일반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의 일체의 외부로부터의 간섭은 물론 법원 상사 등 내부로부터의 간섭으로부터 독립하여 심판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헌법, 정부조직법,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의 관련 조항에 보면 검사는 행정부의 하나인 법무부 산하의 검찰청 소속으로 범죄수사와 공소제기가 주 업무이고, 검사가 수사를 하면서 강제수사의 필요성에 의하여 구속과 압수수색을 하려면 반드시 사전이나 사후에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도록 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공동생활에서 발생하기 마련인 일체의 분쟁 즉 민사, 행정, 형사 사건 (형사사건도 범죄의 유무죄와 범죄의 경중에 관하여 검사와 피고인 (변호인) 사이의 분쟁으로 본다)에 관하여 규문주의가 아닌 당사자주의를 채택하여 국민의 자유 및 권리의 보장과 정의로운 판단을 기도하는 것이 근대 이후의 자유, 민주, 법치 국가의 일반적인 제도이고, 그 점에서는 대한민국도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법관의 독립성과 당사자주의에 의한 분쟁해결제도에 의하면 판사와 검사가 동일한 학교, 동일한 시험을 치른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판사는 판단을 하는 사람이고 검사는 판단을 받는 사람이라는 생각에는 필자도 50년 이상 판사와 변호사를 해오면서 한번도 의문을 가져본 사실이 없습니다.

법관도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에 대하여는 법률에 항의(이의)하는 절차가 규정되어 있으므로 같은 방법 즉 상소(항소, 상고), 항고(항고, 재항고) 등에 의하여야 할 것이고 법률에 의하지 아니한 법관의 판단에의 항의(이의)는 법관의 독립성을 해하여 검사를 포함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받고, 정의로운 분쟁해결이 방해받을 위험성이 있는 것이므로 절대로 피해야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검사와 판사는 협력 하여 형사 사법의 정의를 실현하는 순차적 관계에 있다’든지 ‘검사나 판사도 동일한 자격을 갖춘 법률전문가들로 형사 사법의 영역에 있어서는 국가징벌권의 적정한 실현이라는 공동의 책무를 갖고 있다. 특히 수사절차에서 검사를 민사 소송의 원고나 피고처럼 일방 당사자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은 시정을 요한다. 요컨대 판사와 검사는 형사 사법에 있어서 독자적 권한과 책무를 지닌 사법기관 또는 준사법기관으로서 상호 존중하며 협력해야 할 의존적 관계에 있다’ ‘진정한 최종판단자는 국민이라고 봄이 헌법 제1조의 정신에 부합되지 않겠습니까’라는 주장들은 필자의 견해로는 위에 본 법관의 독립성과 형사를 포함한 모든 분쟁 해결에 있어서 당사자주의가 채택되고 있는 현실을 묵과한 것이거나 반하는 주장이라고 생각을 하고, 우리나라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이므로 법관의 권력이나 독립성도 국민의 주권과 상치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주장은 이해되나 그렇다고 국민이 직접 재판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는 논리라 하겠습니다.

필자가 서울형사지방법원 단독판사로 재직 중이던 1971년에 발생한 소위 제1차 사법파동사건 (검사가 무제판결에 대비하여 판사와 변호사의 출장길에 형사를 미행시켜 판사가 변호사로부터 음식 접대를 받은 사실에 관한 증빙서류를 가지고 판사에게 유죄를 요구하였다가 무죄 판결이 선고되자 재판장 판사에 대하여 영장 청구를 하였고 이에 대하여 서울형사지법 판사를 비롯하여 전국의 법원의 법관 대부분이 사표를 제출하고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한 사건) 때 필자를 비롯한 단독판사 5~6명이 대법관을 만나 그동안 무죄 판결 시에 검사가 판사에게 법적인 방법 이외의 방법으로 판사를 괴롭게 한 사건들에 관하여 진상을 전달하고 같은 자리에서 필자가 검사와 판사의 위의 갈등을 해결하는 근본 처방으로 필자 등 그 당시 판사가 판사보로 강등되어도 좋으니 판사와 검사의 채용자격에 차등을 두어야 한다고 진언한 적이 있는데 이번 사건을 보면, 1971년 필자가 제시한 해결 방법이 여전히 논의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사료됩니다.

법원의 혁신 문제에 관하여

현재 우리나라 법원에는 사실심을 비롯하여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사실심은 정원에 비하여 사건이 너무 많은 것이 이유이기도 하지만 적지 않은 사건에서 사건에 대한 철저한 심리와 기록 검토가 되지 않은 판결이 있습니다.

또 사실심 법원 법관의 헌법 제103조에 따른 판사의 양심에 따른 판결의 양심에 관하여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법관 양심은 보편타당성이 있는 양심이어야 할 것인데 법관의 편협된 견해를 법관의 양심으로 판결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는 예가 있습니다.

다음 법률상으로는 모든 국민은 모든 사건에 관하여 지방법원부터 대법원까지 3번에 걸쳐 심판을 받아 볼 권리가 헌법상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보도에 보면 1년에 대법원에서 처리하는 사건이 3만건이고 따라서 12명의 대법관이 1일 평균 13건의 재판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수리나 논리상 불가능한 것이고 따라서 대법원 사건 중 대부분의 사건이 심리불속행으로 종결된다는 것입니다.

위의 대법원의 사건 폭주를 해결하기 위하여 상고 법원을 설치하자는 것이 대세인 것 같은데 이는 모든 국민의 모든 사건에 관하여 대법원까지 3심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법원의 문제점에 관하여 법관의 독립성을 해치지 않은 범위 내에서의 해결 방법에 관하여 고민하는 것이 영장청구에 관한 판사와 검사의 갈등 문제보다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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