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7다51505 판결

I. 사실관계 및 법원의 판단

원고는 피고회사의 발행주식 3만8000주 중 6000주를 소유한 주주인바, 이사선임 등을 결의한 2005. 4. 29.자 피고회사 임시 주주총회 결의의 하자를 주장하고 있다. 이 글에 관련된 것으로 쟁점을 좁히자면, 원고는 주주총회 결의 당시 주주명부에 등재되어 있던 주주들 중 원고와 소외 2를 제외한 나머지 주주들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형식상의 주주인 바, 피고회사의 대표이사는 이러한 점을 알았고 쉽게 증명할 수 있었으므로, 위 주주총회 결의는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원심은 원고의 위 청구를 인용하였으나,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였다. 즉 “주주명부상의 주주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그 주식에 관한 의결권을 적법하게 행사할 수 없다고 인정하기 위하여는, 주주명부상의 주주가 아닌 제3자가 주식인수대금을 납입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제3자와 주주명부상의 주주 사이의 내부관계, 주식인수와 주주명부 등재에 관한 경위 및 목적, 주주명부 등재 후 주주로서의 권리행사 내용 등에 비추어, 주주명부상의 주주는 순전히 당해 주식의 인수과정에서 명의만을 대여해 준 것일 뿐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주주명부상의 주주로서 의결권 등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권한이 주어지지 아니한 형식상의 주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II. 평석

1. 신주인수시의 형식주주, 실질주주에 대한 회사의 취급

과거 주식회사의 설립이나 신주의 추가발행시 명의 분산, 실주주 명의의 은닉 등을 위하여 타인의 명의를 차용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후 주주명부에 이름이 기재된 주주가 주주총회 등에서 실질적 주주의 뜻과 달리 행동한 때 분쟁이 발생하게 되고 본 사안 또한 그 전형적 예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이 글에서 ‘형식주주’란 주주명부에 명의가 등재된 주주를 가리키고, ‘실질주주’란 아직 주주명부에 등재되지는 않았으나 실질적, 경제적으로 주주로서의 지위를 누리려고 의도하는 자를 가리킨다. 형식주주와 실질주주 간 충돌은 형식주주가 주주명부상 명의에 근거하여 스스로 의결권, 이익배당청구권 등을 행사할 때 표면화된다. 이러한 경우 회사는 누구를 주주로 취급해야 할 것인가? 아래의 표는 이 사건처럼 주주총회 결의의 효력이 문제되는 경우를 유형화한 것이다.

먼저 음영으로 표시된 부분은 ‘신주인수’에 관하여 발생하는 형식주주와 실질주주의 문제이다(‘구주거래’인 경우는 별도 항에서 검토). 이는 다시 ① 단순 명의차용에 의한 신주인수와 ② 명의신탁에 의한 신주인수로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차명에 의한 신주인수에는 다양한 사실관계가 있을 수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위 두 유형이다. 단순 명의차용이란 명의주주가 단순히 이름만을 빌려주고 주주권에 관하여 아무런 권리를 갖지 않기로 한 경우를 가리킨다. 반면 명의신탁에 의한 신주인수란 (강학상 계약명의신탁에서 보듯이) 대외적으로는 형식주주가 주주로서 행위하고 실질주주는 형식주주에 대한 관계에서만 주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형태이다. 명의신탁인 경우 위 C, D에서 보듯이 회사는 형식주주를 주주로 취급해야 한다. 명의신탁에 있어서는 대외적으로 수탁자가 권리자라고 할 것이므로(대법원 2001. 8. 21. 2000다36484), 설사 회사가 이러한 명의신탁 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하더라도 실질주주, 즉 신탁자를 주주로 취급하여 주주총회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부적법하다. 실질주주가 주주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명의신탁계약을 해지하여야 할 것이다(대법원 2013. 2. 14. 2011다109708).

반면에 단순 명의차용에 의한 경우는 그 논의가 다소 복잡한바, 위 표는 판례가 취하는 실질설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회사는 원칙적으로 실질주주를 주주로 인정해야 한다. 다만 이를 일관할 때에는 주주총회 결의의 효력 등 회사 법률관계의 안정성에 문제가 발생하므로, 회사가 형식주주를 주주로 취급한 때에도 이른바 주주명부의 면책력에 의한 안전판이 적용된다. 즉 회사가 주주명부상 주주로 하여금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면 ‘그 주주가 형식주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하였고 또한 이를 용이하게 증명하여 의결권 행사를 거절할 수 있었음에도 의결권 행사를 용인하거나 의결권을 행사하게 한 경우’가 아닌 이상 적법한 것으로 인정된다(대법원 1998. 9. 8. 96다45818).

원래의 문제로 돌아와, 회사 입장에서 볼 때 주주총회의 적법한 진행을 위하여 누구에게 의결권을 인정하여야 하는가? 명의신탁인 경우 당연히 형식주주이다. 반면 단순 명의차용인 경우 형식주주 이외의 자에게 의결권을 부여한 것을 합리화시키려면(즉 B영역),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i) 해당인이 ‘실질주주’일 것, (ii) 상법 제337조 제1항의 명의개서 대항력과 관련하여, 회사는 주주명부에 나타나지 않은 실질주주이더라도 주주로 인정할 권한이 있을 것(표 1의 ‘비고’에서 보듯이 상법 제337조 제1항의 대항력 조항은 신주인수에도 유추된다고 볼 것이다). (ii)의 점은 판례상 편면적 구속설에 의해 해결되므로, 결국 (i)의 실질주주의 범위에 따라 회사가 형식주주 이외의 자를 적법하게 주주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진다. 본 판결은 그 요건을 극히 까다롭게 설정함으로써 결국 B의 적법 영역을 축소하고 있다. 한편 주주명부상 주주에게 의결권을 부여한 회사는(즉 A영역), 통상 그 판단을 합리화할 수 있고, 다만 (a) 해당 주주가 단순 명의만을 차용해 준 형식주주이고, (b) 그 점에 대하여 회사에 고의,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부적법한 행위로 인정된다. 본 판결에 따라 (a)로 인정되는 예 자체가 희소하게 됨으로써, 회사는 (b) 여부에 대하여는 큰 고민할 필요가 없이 대부분의 경우에 주주총회의 적법성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이렇듯 B의 적법 영역을 축소하는 한편 회사로 하여금 형식주주에게 의결권 등을 부여할 강력한 유인을 제공하는 이 사건 판결은 합리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판례는 주요한 논거로 주주명부의 추정력을 들고 있는바,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단순명의차용과 명의신탁의 구분은 실제로는 용이하지 않다. B의 적법 영역을 줄이면 단순 명의차용과 명의신탁의 법적용상 차이점이 줄어들게 되어 법적 불안정성을 피할 수 있다. 둘째 정책적으로 보더라도 명부상의 주주를 곧 권리자로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명의인에게 조세부담 등 불이익이 부여되는 상황이라면, 명의인을 곧 권리자로 인정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즉 실권리자가 불이익을 회피하는 것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반면 상법의 관점에서 주주로 인정된다는 것은(법인격 부인 등 극히 예외적 사안을 제외하고) 의결권, 이익배당청구권 등의 혜택을 누림을 뜻한다. 명의자를 권리자로 인정하여 이러한 혜택을 누리게 하는 해석론은 결국 실질적 경제주체로 하여금 스스로를 나타내도록 유인을 부여하게 된다. 셋째로 예금, 부동산거래에 관한 최근의 대법원 판례도 명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대법원 2009. 3. 19. 2008다45828; 대법원 2009. 9. 10. 2006다73102 등), 넷째로 상법상 주주명부에의 기재는 주주권 발생 자체와 구분되는 추가적 의미를 갖는다. 권리의 발생은 주식인수 및 주금납입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나아가 주주명부라는 별도의 제도를 마련한 것은 회사에 대한 권리행사자를 정해둔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적어도 주주총회 등 회사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주주명부에의 등재가 갖는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2. 구주거래시의 형식주주(양도인), 실질주주

(양수인)에 대한 회사의 취급

이 쟁점은 흔히 구주를 매수하여 제3자에 대하여는 주주의 지위를 취득한 양수인이 아직 명의개서를 마치지 못한 경우 회사에 대하여 어떠한 지위를 갖는지의 문제로 논의된다. 물론 구주거래인 경우에도 당사자 사이에 양도인이 명의를 계속 보유하기로 합의하면서 앞서의 신주인수와 마찬가지로 명의 단순차용, 명의신탁의 법률관계가 성립하는 경우도 상정 가능하나, 여기에서는 이러한 별도의 합의 없이 아직 명의개서가 마무리되지 않은 경우를 전제로 한다. 상법 제337조 제1항은 “…회사에 대항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으므로, 명의개서미필 양수인이 회사에 주주권을 주장할 수 없는 반면, 회사는 그를 주주로 취급할 수도 있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편면적 구속설). 편면적 구속설에 의하면 명의개서미필 양수인에게 의결권을 부여한 회사의 업무처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F영역). 명의상 주주인 양도인에게 의결권을 부여하는 경우는 어떠한가? A와 E를 비교할 때 의문이 드는 것은, 회사 쪽에서 위 양도사실에 관하여 고의, 중과실이 있는 경우 양도인에게 의결권을 부여한 것이 위법하게 되는지 여부이다. 생각건대 이 경우 회사는 고의, 중과실 여부를 불문하고 적법하게 양도인을 주주로 취급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A영역에서 고의, 중과실이 문제가 되는 것은 면책력의 한계에 관한 것이다. 본디 면책력은 권리가 없는 자에게 권리를 행사하도록 한 담당자의 책임 내지 불이익을 일정요건하에서 면제하는 것을 뜻한다. E영역은 어떠한가? 이 영역은 상법상 대항력 조항에 의하여 회사가 양수인의 자격을 부인하면서 양도인을 주주로 볼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처럼 회사 입장에서 양도인을 적법한 주주로 파악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권리가 없는 자에게 권리를 행사하게 한 경우 문제되는) 면책력의 법리가 개입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3. 맺으면서

본 판결은 명의주주에 의한 주주권 행사가 후에 부인될 가능성을 엄격하게 제한하면서 표1 중 B의 적법 영역을 매우 축소시켰다. 그 결과 신주인수시 주주결정에 관한 형식설과 실질설의 차이가 줄어들고, 단순차명에 의한 주식인수와 명의신탁에 의한 주식인수간의 간극도 좁혀졌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같은 방향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향후 입법 등을 통하여, B, D, F 영역을 일괄하여 부적법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이는 신주인수시 주주결정에 관하여 형식설을 채택하고, 구주거래의 경우 편면적 구속설을 폐기하고 쌍방적 구속설에 의함을 뜻한다. B, D 이외에 F까지 부적법한 것으로 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위 표의 ‘비고’ 란에서 나타나듯이 실질주주(구주 양수인 포함)의 지위는 B, D와 F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회사 입장에서는 주주명부에 등재된 자와 실질적 경제주체간 분리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회사법 관계의 일률적, 형식적 처리라는 전통적인 논거를 고려할 때 형식적인 판단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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