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작동을 멈춘 프린터를 고치려고 애쓰는 한 남성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이곳저곳 찾아다니지만 모두들 새 프린터를 구입할 것을 권한다. 고집이 센 우리의 주인공은 문제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찾아내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한다. 그리고 결국 비밀을 밝혀내고야 만다. 총 인쇄 매수가 1만 8000장에 도달하면 기계작동을 멈추도록 프로그램이 된 전자 칩이 범인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러시아의 한 천재적인 네티즌이 개발하여 올린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작동시키는데 성공한다.” 세루즈 라투슈의 『낭비사회를 넘어서』에 나오는 영화 <전구 음모 이론/The Light Bulb Conspiracy, 2010>의 줄거리다.

비록 주인공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필자는 얼마 전 영화 속 내용과 아주 비슷한 경험을 했다. 구입한지 2년 정도 되는 핸드폰의 액정이 고장 난 것이다. 대리점 이곳저곳을 찾아 다녔지만, 같은 모델의 액정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리를 거절당했다. 그 전에도 사용한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핸드폰의 자판이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새 핸드폰을 구입해야 했던 나는 번번이 이런 일을 겪게 되자 화가 났다. “혹시 2년이 되기 전에 고장이 나도록 만드는 게 아니냐?”며 애꿎은 대리점 직원을 나무랐지만, 결국 새 핸드폰을 구매하는 방법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구나 아직 2G폰을 사용하고 있는 나에게 주어진 모델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과연 지금 이 핸드폰은 2년 후에도 내 손에 있을까?

얼마 전 누군가가 3D 프린터로 플라스틱 권총을 제작하고, 그 설계도면을 인터넷상에 공개해 논란이 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리고 한 신문 기사는 맞춤형 다품종 소량 생산에 적합한 3D 프린팅으로 인해 기존의 제조방식에 일대 혁신이 일어날 것이며, 3D 프린터가 인터넷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내용을 다루었다. 더 나아가 기사는 일반인도 집에서 직접 상품을 만들어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야심찬 예측도 덧붙였다. 이미 6년 전에 고가의 3D 프린터를 구매한 필자에게는 이 모든 것이 ‘3D 프린터’라는 상품을 팔기 위해 전문가와 일반인을 겨냥한 광고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필자는 수천만원을 주고 3D 프린터를 구입했지만, 공교롭게도 무상 보증 기간이 끝나는 시기에 맞춰 잦은 오류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이후 이 기계에는 감당하기 힘든 소모품비, 유지관리비가 청구되었다. 기력을 다한 이 기계는 아직 사망진단을 받지 못한 채 사무실의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누워 있다.

대량 생산 시스템으로 인해 생산비가 절감되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싼값으로 제품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생산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소비사회의 구조 속에서, ‘약정 기간’이나 ‘무상 보증 기간’이라는 개념은 생산자의 생명력을 유지하게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발적이지 않은 이유로 핸드폰을 구매하고, 3D 프린터에 청구된 유지관리비를 보고 나서야 생산자가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기간’이라는 함정을 감지하게 되었다. 오래 전에 최고 사양의 컴퓨터와 고가의 3D 프린터를 구입할 정도로 새로운 사양의 제품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언젠가부터 이러한 변화의 속도에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다.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제대로 자리 잡지도 못한 채 어디론가 떠밀려가는 것이 비단 물건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현대사회에서 소비는 거부할 수 없는 ‘의무’가 되어버렸다. 일정한 생산을 계속 해야만 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이 생산량을 소비자라는 대상에게 떠민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새로운 욕망을 끊임없이 발생시켜야 하며, 때문에 우리는 잠들지 않는 한, 욕망을 부추기는 광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절약’이라는 정신은 ‘소비’라는 이름의 신앙에 이미 자리를 내어 주었다. 고장 난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수리하던 ‘전파상’도 이미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어린 시절 매일 아침 배달되는 유리병에 담긴 우유는 일회용 팩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면도기, 컵, 병뚜껑, 캔, 플라스틱 병 등 일회용 제품은 언젠가부터 우리의 일상을 지배해 버렸다. 우리 주변에는 편리한 상품이 넘쳐 나지만,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은 인간을 더욱 고독하게 만들고 있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난 후, 우리 주변에는 과연 무엇이 남아 있을까?

1층에 설치된 몇 개의 우편함에 가득한 광고 전단지를 수거하고, 4층 집까지 올라가는 각층 현관문에 붙여진 전단지를 떼어내는 일은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면 어느 고택의 대청마루 나무로 만들어진 100년이 넘은 나이의 평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 누우면 푹신한 침대보다 더한 시간의 포근함이 느껴진다. 철로 만들어진 묵직한 벽난로, 손때 묻은 조그만 고가구들, 오래된 피아노, 시간의 때가 묻은 책들, 정성껏 손으로 만든 모형들…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이 물건들이 조용히 나를 위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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