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담당판사의 공개편지와 이를 두둔하는 글을 읽고-

얼마 전 본면에서(대한변협신문에서) 원로법조인께서 개인적인 경험담을 필두로 ‘어느 영장담당판사의 공개편지’를 두둔하는 글을 보았다. 젊은 시절을 검찰에서 보낸 필자는 이 글을 읽고 검사들이 억울해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역시 개인적 경험담을 기초로 검사를 위한 변론을 해보고자 한다.

필자가 광주지검에 근무할 당시 후배검사가 현직 대통령의 고향을 관할하는 군수에 대한 뇌물수수사건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실을 방문하여 항의한 일이 있었다. 이를 두고 광주지법 판사들이 사법권의 침해라고 주장하며 집단적으로 반발하여 후배검사는 검사장과 함께 법원에 찾아가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다짐하는 곤욕을 치렀다. 당시 필자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검사로서 매우 착잡한 심정을 느끼며 우리나라 영장제도의 문제점에 대하여 고민해 본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도 이러한 일이 재현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영장제도의 후진성에 대하여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길 없다.

필자는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잘못된 영장제도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검사가 판사실을 방문하거나 전화를 하여 영장재판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것은 사법권의 독립을 위협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가 영장에 기재된 사유만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영장기각에 대하여 수사검사로서 그 취지와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여 향후 수사계획에 참고하려는 것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행 영장제도는 동일 사안에 대하여 영장을 재청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고, 법관도 국가형벌권을 적정하게 실현해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경우 영장청구서에 그 취지와 이유를 기재하여 검사에게 교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201조 제4항). 판결문과 달리 피의자는 그 대상이 아니다. 이는 검사에게 영장기각의 취지와 이유를 분명히 밝혀서 향후 수사에 참조하게 하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영장재판의 실무관행을 살펴보면 판사들은 영장기각 사유를 ‘도망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는 등으로 극히 추상적으로만 기재하고 있다. 법원 일각에는 영장기각 사유를 간결하고 추상적으로 기재하면 할수록 검사나 언론으로부터 영장기각에 대한 시비를 피해갈 수 있는 현명한 자세라고 권장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당시 뇌물군수의 영장기각 사유도 ‘자백하고 있어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취지의 간결한 문장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간결하고 추상적인 사유로 영장이 기각된 중요사건에 대하여 수사검사가 영장을 기각한 법관에게 방문 또는 전화로 그 구체적인 취지와 사유를 확인하여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에 반영하기 위한 행위를 사법권의 침해라고 단죄할 수 있는가? 오히려 그러한 기회에 영장담당판사는 검사와 달리 생각하는 이유를 투명하고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법관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막고 사법의 신뢰를 높이는 친절한 자세가 아닐까?

필자도 수사실무에 종사하던 중 유사한 사례의 부당한 영장기각을 경험한 적이 종종 있었다. 특히 대법원이 불구속 재판 원칙을 강조하면서 일선 법원의 영장기각율이 급증하게 되었는데 이에 편승하여 너무나 황당한 영장기각 사례들이 수없이 발생하였다. 검사들은 이렇게 부당한 영장기각 사례를 접하면서 영장 재청구 이외의 다른 방도가 없는 우리나라 영장제도에 대하여 절망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한번 기각된 영장은 재청구하더라도 발부될 확률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영장전담판사제도가 시행된 이후부터 재청구된 영장재판은 영장을 기각한 전담판사와 한방을 쓰는 다른 전담판사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만일 외국처럼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에도 판사의 구속영장 기각결정에 대하여 검사가 불복하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었더라면 검사가 굳이 판사실을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어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는 일이 반복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행 영장제도와 같이 법관의 영장기각에 대한 불복방법이 배제되어 있는 이상 위와 같이 영장기각을 둘러싼 검사와 판사의 불필요한 마찰은 언제든지 재발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어느 법관의 공개편지’와 이 글을 두둔하는 글에서 현행 영장제도에 대하여는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는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

모든 재판은 불복할 수 있음이 원칙이다. 구속영장 기각결정도 일종의 재판이므로 당연히 불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판례는 이에 대한 불복을 허용하지 않는다.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수 있으므로 굳이 영장기각에 대한 불복방법을 허용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판례는 다수의 법관들로 하여금 영장재판이 구속여부에 대한 법원의 재량행위쯤으로 여기도록 조장하고 있다. 그러나 영장재판은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구속사유를 정확하게 해석해서 사례에 적용하는 재판행위이다. 영장재판은 피청구인에게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가치개념으로서 구속사유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심리하여 구속여부를 결정하는 법관의 사법적 판단작용이지 재량행위가 아니다. 영장의 재청구는 영장재판 후 새롭게 발견되거나 발생한 사정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므로 영장재판의 위법 여부에 대하여 상급심의 판단을 구하는 불복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법리에 따라 선진법치국가의 형사소송법은 영장재판에 대한 불복절차를 배제하고 있지 아니하다.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판사가 영장을 기각하려면 결정문에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검사는 이를 검토하여 잘못된 판단이 있으면 상급법원에 항고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불복절차가 마련되어 있으므로 영장담당 판사는 구속영장을 기각함에 있어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이유를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작성한다고 한다. 만일 통상적인 구속기준을 벗어나 부당하게 영장이 기각될 경우 검사는 어김없이 상급법원에 항고하여 그 시정을 구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영장기각에 대한 불복절차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례가 축적되어 영장기각에 대한 합리적이고 보편타당한 기준이 마련되어 왔다고 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 법조주변에서는 간단없이 제기되고 있는 청탁이나 전관예우에 따른 무리한 영장기각이라는 의혹이 발생할 소지가 제도적으로 예방되어 있는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여러가지 면에서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구속영장기각에 대한 불복절차가 하루속히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기왕에 현행 영장제도의 문제점을 몇 가지만 더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영장전담법관제도’는 재판의 획일성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이는 1997년 ‘영장사전심문제도’에 부수하여 도입된 것으로 극소수의 선발된 법관들만이 영장재판을 전담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영장전담법관들은 공사생활에서 모범적인 엘리트 법관이라는 자부심이 크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그늘에는 영장재판에서 배제된 수많은 보통법관들의 소외감이 존재한다. 그리고 영장전담법관들이 선민의식 속에서 공유하는 특정 가치나 문화가 영장재판에 획일적으로 반영될 위험성이 있다. 소수의 선택된 법관들이 영장재판을 전담하고 현실은 외부적 통제나 간섭을 용이하게 하여 영장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해칠 위험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영장재판도 일반재판처럼 보통법관들이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다원화된 가치가 존재하므로 이를 반영할 수 있도록 다양성을 가진 보통법관들이 영장재판을 담당해야 한다.

둘째, 우리나라 영장재판은 늘 일정비율의 기각율이 유지된다는 점이다. 전국 법원의 영장기각율은 평균 20~30% 수준으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그만큼 검찰이 영장청구를 남용하고 있거나 법원이 영장기각을 남발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영장심사도 법을 해석하여 구체적 사안에 적용하는 재판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보면 어느 쪽도 정상적인 직무수행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중앙지검 총무부장으로 근무한 경험에 따르면 검찰은 불구속 재판을 강조하는 대법원의 입장을 존중하여 구속영장청구를 획기적으로 줄여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지법의 영장기각율은 줄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은 법원이 사안의 내용에 상관없이 일정비율의 영장을 무조건 기각하는 관행을 유지하며 이를 전관예우나 검찰 길들이기 등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참고로 선진법치국가인 독일에서는 영장기각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셋째, 구속사유가 불완전하다는 점이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사안의 중대성’이나 ‘재범의 위험성’을 구속사유로 하지 않고 다만 구속여부를 판단하는데 고려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영장재판의 실무에서는 이러한 사유가 오히려 구속여부를 판단하는데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속사유로 규정하고 있지 않을 합리적 이유가 있는가? 마땅히 구속사유가 되어야 할 요건을 오직 고려사항으로만 규정해둠으로써 법관들에게 재량의 여지를 남겨두려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참고로 독일은 ‘사안의 중대성’이나 ‘재범의 위험성’을 구속사유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끝으로 법관은 상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헌법원리이다. 공개편지를 두둔하신 원로법조인께서는 재발방지책의 일환으로 사법행정의 책임자와 영장담당 법관의 관계를 ‘장수와 부하’의 관계로 설정하고 계신다. 이는 고위법관을 역임하신 원로법조인의 사법권 독립에 대한 단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더욱이 검사의 항의전화를 녹취하도록 부추기는 모습은 어른스럽지 못하다.

모름지기 검사나 판사는 동일한 자격을 갖춘 법률전문가들로 형사사법의 영역에 있어서는 국가형벌권의 적정한 실현이라는 공동의 책무를 갖고 있다. 특히 수사절차에서는 검사는 피의자와 대등한 당사자가 아니라 범인과 증거를 발견하고 확보하여 국가형벌권의 실현을 차질없이 준비해야 하는 주재자의 지위에 있다. 수사절차에서 검사를 민사소송의 원고나 피고처럼 일방당사자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은 시정을 요한다. 요컨대 판사와 검사는 형사사법에 있어서 독자적 권한과 책무를 지닌 사법기관 또는 준사법기관으로서 상호 존중하며 협력해야 할 의존적 관계에 있다. 만일 법원이 심판자의 지위를 이용하여 검찰에 군림하려 한다면 양자는 앞으로도 계속 충돌할 것이고 그로인한 폐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최근 법관의 임용성적이 검사보다 다소 높다는 이유로 법관이 검사를 얕잡아 본다면 이는 유치한 일이다. 이는 법관과 변호사 그리고 검사와 변호사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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