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에 있어 권리와 의무 관계를 맺게 되는 당사자의 구성은 다양하다. 국제조약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2개국간 체결하는 양자조약 또는 다수의 국가들간 다자조약으로 대분류할 수 있다. 국가간에 상품과 서비스 무역의 자유화를 목적으로 하는 통상조약에 있어서도, 양자간 규범은 FTA를 통하여, 다자간 규범은 WTO 협정을 통하여 규정되고 이행되고 있다.

우루과이 라운드 결과에 따라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설립된 이후 다자통상규범의 포괄범위가 넓어졌다. 단순히 상품 교역에 따르는 관세율을 인하하는 문제만이 아닌, 서비스 분야 및 비관세장벽, 지재권 등 경제 사회 전반의 정책과 조치들에 대해서도 규율의 대상이 되었다.

현재 160개 WTO 회원국들은 세계 교역의 97%를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모든 무역거래가 협정의 대상이다. WTO 협정은 무역과 관련하여 전세계적으로 일원화된 국제규범을 제공한다. 다자규범이 가질 수 있는 강력한 장점이다.

다른 WTO 회원국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헌법 제6조에 따라 조약과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WTO에서 분쟁해결 결과에 따라서, 회원국의 조치가 철회되거나 법제도가 변경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99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와 일본은 내국세인 주세(酒稅)의 주종별로 차등부과가 내외국산 차별이라는 판정을 받아, 이를 조정한 바 있다.

한편, FTA는 당사국간에서만 권리 의무 관계를 창출한다. 예를 들어, 한·미 FTA의 규범내용은 양국간에만 적용되고, 양국간에 제3국보다 유리한 무역규범을 설정하고 이행할 수 있다. 이는 WTO 협정상 최혜국대우(MFN)의 예외규정인 GATT 제24조 및 GATS 제5조에 따라 허용되고 있다. WTO가 일반법이라면, FTA는 특별법의 위치라 하겠다. 따라서, FTA가 일반법인 WTO 규범수준보다 후퇴된 내용으로 규범을 창출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현재 12건의 FTA가 발효 또는 타결되었고, 8건의 FTA 협상이 진행 중이다.

전세계적으로 금년 6월말 현재 379개의 FTA가 발효 중이다. FTA는 교역상대국별로 맞춤형 무역규범을 창출하는데 유용하지만, 이러한 규범의 수요자인 기업들에게 복잡한 규범체계로 인식될 수도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바그와티 교수가 지적한 ‘스파게티 볼’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제3의 형태의 통상규범이 있다. 소위 복수국간 무역협정이다. 규율대상이 포괄적인 WTO 또는 FTA와는 달리 특정 분야에 한정하여 유사한 입장을 가진 국가들간에 무역규범을 창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조달협정(GPA), 정보기술협정(ITA) 등이 발효 중이다. 서비스 시장에 집중한 복수국간 서비스협정(TISA)의 협상이 한창 진행 중에 있다. 다자통상협정이 ‘일괄 타결(Single undertaking)’이라는 협상원칙으로 인해, 2001년 개시된 도하라운드(DDA) 협상이 장기간 정체 상황에 빠지면서, 복수국간 무역협정 추진의 유용성에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금년 7월 환경상품 자유화를 위한 복수국간 협상이 개시된 바도 있다.

규범 효율성 측면에서 WTO와 같은 다자통상규범이 최선이다. 하지만, 다자통상 협상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진영간 첨예한 입장 차이로 인해 WTO의 입법기능이 제기능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행히 WTO에서 2013년 12월에 무역원활화 협정에 합의하였다. 통관 절차를 간소화하고 일원화하여 기업에게 더욱 자유롭고 투명하게 상품의 국경간 이동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1995년 WTO 출범 이후로 최초로 새로운 다자규범에 합의한 성과이다. 다만, 금년 7월말 인도의 반대로 인해 동 협정의 이행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1876년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한·일간 강화도조약은 불평등 통상조약이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제무역규범의 포괄범위가 상품 관세율 인하뿐만 아니라, 건강 및 안전에 대한 기준, 투자보호, 경쟁, 노동, 환경 등 경제·사회 활동 전반으로 확장 추세이다. 특히, 선진국들이 이러한 추세에 적극적이다. 이는 복잡다기하게 진행중인 국제무역규범 논의에 우리나라가 주도면밀하게 참여하고, 우리 업계와 법조계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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