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회 한국법률문화상 수상자 최 봉 태 변호사

내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은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한지 반백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사과도 보상도 거절한 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 사이 800만명에 달하던 강제징용공 할아버지, 위안부 할머니들, 원폭피해자 1세대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이제 생존자 수는 2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길고 긴 투쟁에 15년 세월을 함께 해온 최봉태 변호사(사시 31회)가 올해 법률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상은 사실 일본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일제피해자 구제 노력에 헌신하신 일본 변호사님들에게 가는 것이 당연한데 제가 받게 돼 과분할 따름입니다.”

국무총리산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 일제피해자 공제조합 고문, 대한변협 일제피해자지원특별위원회 위원장,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지원재단 이사. 그가 변호사 생활 22년간 걸어온 길을 보면 한결같다. 분명 훌륭한 일이긴 하지만 돈이 되는 일도, 언제 끝날지 기약도 전혀 없는 이 일에 어떻게 동참하게 된 것일까.



“어린시절은 평범했습니다. 지방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왔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부모님을 보며 남들이 한번 볼 때 두번 보고, 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이니 최선을 다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한 것이 운 좋게 서울대 입학으로 이어진 것 같네요. 군대를 마치고 난 후 본격적으로 고시공부에 뛰어들었고, 사시 합격 후에는 공부보다는 다양한 사회경험을 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1992년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법무법인 삼일(3·1운동 정신을 이어받자는 의미에서)을 개소했습니다. 그러다 1994년 노동법 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됐습니다. 일본 유학 전에도 민주주의나 인권 문제에 관심은 있었지만 일제피해자문제를 직접 다룰만한 계기는 없었지요. 정신대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사법 투쟁을 하는 것을 보고나서야 이 문제가 단순히 과거사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또한 일본의 양심적인 변호사들과 인사들이 이 문제를 성심성의껏 돕는 것을 보고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미안한 마음에서 돕기 시작한 소송이었지만 승소판결을 받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일본최고재판소는 2007년 개인청구권을 인정했지만 개별소송에서는 모두 패소판결을 내렸다. 다만 한국법원에서는 전향적인 판결이 많이 나와 2004년 2월 한일협정 문서 정보공개 소송 승소를 시작으로, 2011년 8월 정부의 위안부 문제 방치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2012년 5월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의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 등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법원의 이같은 판결에도 배상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서울고법에서 손해배상판결을 받은 신일철주금은 대법원에 상고했고, 미쓰비시 역시 대법원에 재상고 했다. 미쓰비시 사건의 원고들은 소송이 수년간 진행되는 동안 모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일제피해자문제의 해법은 일본 사법부의 판결을 일본 정부나 기업이 존중하는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경우 일본에서는 1998년 4월 27일 고노담화가 나온 후 3년 안에 입법을 통해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여년이 넘도록 입법을 통한 해결을 하고 있지 않아요. 더군다나 최근 아베 정권이 발표한 고노담화 검증보고서는 한일관계를 더욱 경색시키기고 있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경우에도 일본 사법부는 일본 정부나 기업의 자발적 책임이행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일본 정부나 기업들이 자국의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해결의 지름길이겠지요.”

 

최 변호사가 생각하는 이상적 해결책은 한국정부와 청구권자금수혜기업, 그리고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이 힘을 합쳐 2+2 재단(일제강제동원피해자인권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이미 지난 6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출범됐으나 출연금이 부족해 피해자지원에는 어려움이 많다. 최근 청구권자금수혜기업인 한국도로공사, 코레일, KT 등에 각각 5억7200여만원, 17억7100여만원, 3억5100여만원을 출연기금으로 요청하는 공문을 전달했지만 주주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만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인권재단설립에 관한 특별법’을 준비해 곧 국회에 발의할 예정입니다. 이 법률안에 의하면 일본 기업이 배상금을 출연하면 법률상 화해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 일본 측이 출연을 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자금을 출연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시켰으면 임금을 주어야 하는 것은 전 세계적 규범인데 이를 준수하지 않고는 국제사회에서 존재하기 어려우니까요. 참고로 우리 법원은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약 1억원의 위자료를 인정하는 판결을 하고 있는데 이 금액을 한일협정 체결 한일간에 당시 국외강제동원 피해자로 협의한 103만명에게 적용하면 103조원이 됩니다. 이런 막대한 재원이 있어야 피해자에게 정의를 회복시키고 한일간 평화사업을 지원해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또 한일간에 침략으로 인한 상처도 치유할 수 있고요.”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야 하는 만큼 재단이 설립되기 위해서는 국민적 동의가 꼭 필요하다. 그러나 고령의 피해자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사회적 관심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최근 한 언론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4%가 ‘위안부’와 ‘근로정신대’가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며, 62.1%가 ‘고노담화 재검증 보고서’에 대해서 모른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 것일까? 최 변호사는 일제피해자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해 공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한다.

“전쟁 피해자들에게 정의를 돌려주는 것은 전쟁을 막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아울러 일제피해자문제는 남북이 동질성을 회복하는데도 더 없는 자산입니다. 통일 및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제피해자 문제의 해결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공감이 우선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 하더라도 전 세계 여성인권을 다시 생각하게 했고, 전시 중 여성인권 침해를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한데 일본은 일제피해자 문제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도의 영유권까지 주장하면서 동아시아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독도를 자기땅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정당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영토문제로 이를 풀어나갈 것이 아니라 침략 전쟁 수행 세력의 아킬레스건인 일제시대 피해자 문제로 풀어가야 합니다.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접근하자는 것이죠. 그렇게 하다보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본에서도 독도에 대해 바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한국과 일본의 이러한 민주주의 발전이 중국의 피해자들도 견인하여 중국 민주주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정착하는 것이죠. 이것이 동아시아에서 높아지는 갈등을 전쟁이 아니라 평화공동체 건설로 해결하는 지름길이라 생각합니다.”

이렇듯 일제피해자들에게는 한줄기 빛같은 존재이건만, 쉬는 날도 없이 제대로 된 수임료도 받지 않고 일하는 그는 집에서 어떤 남편 어떤 아빠일까.

“빵점 아빠 빵점남편이죠 뭐. 큰 아들은 대학원을 다니며 이과 계통의 연구를 하고 있고, 작은 애는 딸인데 현재 대학교 1학년입니다. 둘 중 하나라도 법조인이 돼서 내가 하던 일을 계승발전시키면 좋겠지만 자신들의 인생이니 전적으로 본인들 뜻에 맡길 생각입니다. 부인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많지만 항상 얘기합니다. 예전에 독립운동했으면 고문에, 투옥에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것 없이 독립군으로 활동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요. 그래도 옆에서 묵묵히 고생해준 아내가 고마워 이번 상금은 전적으로 아내에게 일임할 생각입니다(웃음).”

2014년 8월 15일 현재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 54명, 원폭피해자 2600여명, 강제동원피해자 1만1720명(2014년 정부 의료지원금 수령자 기준). 80세가 넘는 이들의 평균연령을 고려해 볼 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언제쯤 이들이 진정한 광복의 날을 맞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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