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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통신]인권 메커니즘 속 일본의 두 얼굴
오현주 주제네바 대표부 참사관  |  hjoh94@mof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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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호] 승인 2014.08.11  11: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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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2013년 9월 17일 제24차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장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mmission of Inquiry: COI) 마이클 커비 위원장은 2013년 3월 출범한 조사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인권이사회 이사국 앞 중간보고에서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 강제송환 탈북자 등 북한 인권침해의 피해사례들을 차례로 소개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일본인 납북자 가족의 호소를 소개하였다. “(북한의 최고지도자에게)당신에게도 가족이 있다면, 가족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고 있다면, 우리 딸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제 딸은 살아 있습니까? 제 딸은 행복합니까? 그게 아니라면 제 딸은 죽었습니까?”

(# 장면 2) 2014년 7월 16일 제111차 유엔 인권위원회 회의장
유엔 인권위원회(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 위원회)의 존케 마조디나 위원은 일본의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 이행 심의에서 일본 정부대표단에게 소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정면으로 제기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있었던 소위 일본군 위안부는 대표적인 성노예 사례로서 그간 수많은 국제사회의 권고가 있었음에도 일본 정부는 책임을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위안부 동원에 개입했다면, 이는 국가의 책임으로서 일본 정부가 법적·도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위안부라는 우회적인 표현 대신에 성노예라는 표현을 써야 할 것입니다. 일본정부는 그간 피해자 구제를 위해 어떤 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했습니까?”

내가 지난 1년여간 제네바 유엔 인권회의에 참석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는 두개의 장면이다. 북한인권 문제와 소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우리에게 갖는 중요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회의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은 그 회의가 인권 메커니즘의 역할과 일본의 두 얼굴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때문이었다.

전 호주 대법관 출신의 마이클 커비 북한인권 COI 위원장은 두번에 걸친 인권이사회 앞 보고를 통해 북한인권 상황을 그 누구보다 설득력 있게 국제사회에 전달하였다. 그는 공청회에서 만난 피해자의 증언에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면서 인권피해 사례를 감성적으로 전달하면서도, COI 활동이 주권 존중 원칙에 위배된다는 일부 이사국의 주장에 대해서는 ‘보편적 인권이 주권에 우선한다는 것이 확립된 유엔 정신’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와 여타 COI 위원들의 신념과 헌신에 힘입어 북한 인권 COI는 370여쪽에 달하는 북한인권 상황에 관한 가장 권위있고 기념비적인 보고서를 작성하였고, 인권이사회에서는 보고서의 권고를 이행하기 위한 결의안을 다수국의 찬성으로 채택하였다.

일본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국제규약 심의에서 소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한 남아공 국가인권위원 출신의 존케 마조디나 위원의 진심은 그날 회의를 참관하던 나에게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의 언급 속에는 소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성격과 피해자의 아픔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전제되어 있었고, 일본 측 정부 대표에게 국가의 책임과 관련하여 던진 질문은 준엄함이 배어 있었다. 7월 24일 인권위원회는 일본군 위안부를 성노예로 규정하며, 일본정부의 공개사과와 책임자 처벌, 완전한 배상을 권고하는 강력한 내용의 최종의견서를 채택했다. 과거 여느 유엔 권고보다도 강력한 어조의 최종의견서가 채택된 배경에는 소위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과 국가 책임을 지적한 그 위원의 용기와 진심이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인권위원회(Human Rights Committee)나 북한인권 COI는 모두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인권 메커니즘이다. 주로 국가간 협상과 대화에 근거한 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mmission) 및 보편적 인권정례검토와는 달리 협약기구, 특별절차 등은 인권분야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개인들이 활동하는 영역이다. 때로 보편적 인권 원칙보다는 국가간 이해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인권이사회에서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일들이 인권분야 전문가들이 활동하는 인권 메커니즘에서 가능해진다. 만일 커비 위원장이 이끄는 북한인권 COI가 아니였다면,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 작업은 어려웠을 것이며, 마조디나 남아공 위원의 지적이 없었다면, 소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유엔 내 가장 권위있는 협약기구 차원의 객관적인 평가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앞서 소개된 두 회의는 인권문제에 있어 일본의 두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은 EU와 함께 인권이사회 북한인권 결의안의 주요 제안국이기도 한데, 북한 인권 COI 위원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제기하였고, 북한 인권 COI 위원들이 동경에서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들을 수 있는 공청회를 주선하였다. 그 결과 커비 위원장은 일본인 납북자 가족의 호소를 생생히 국제사회에 전달할 수 있었고, 북한인권 COI 보고서에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비중있게 다뤄졌다.

그러나, 일본은 정작 자신이 가해자인 20여만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해서는 그간의 모든 인권 메커니즘의 권고를 거부해왔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한 유엔의 권고는 1996년 쿠마라스와미 유엔 여성폭력특별보고관의 보고서와 1998년 맥두걸 유엔 인권소위 특별보고관의 보고서에서 일본의 법적책임과, 배상, 재발방지 등을 권고한 이래 인권위원회,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규약 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고문방지위원회 등 주요한 협약기구에서 일본 심의가 있을 때마다 제기되어 왔다. 일본은 지금까지 일본군 성노예에 관한 모든 인권 메커니즘의 권고를 거부해왔다. 자국의 피해 상황에 대해서는 인권 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자국이 책임져야 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인권 메커니즘의 권고를 무시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마이클 커비 북한인권 COI 위원장과 마조디니 인권이사회 위원과 같은 인권 전문가는 인권 다자주의가 국가간 이해 관계가 아닌 보편적 인권 원칙 하에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권 메커니즘의 중요한 행위자이다. 이들 인권 전문가들의 피해자에 대한 진정어린 공감과 보편적 인권에 대한 신념이 인권이사회에 참여하는 이사국 정부 대표단의 가슴 속에도 전달되기를 기원해 본다. 이들의 진정성과 신념을 바탕으로 일본 정부 대표단이 인권이사회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하고 책임임을 인정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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